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관세청의 특허 남발과 업체들의 과당경쟁,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방문 감소 등 악재가 겹치며 면세점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계륵’으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국내 첫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의 대주주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은 지난 1월 31일 경영권 매각 의사를 밝혔다. 2015년 6곳, 2016년 9곳으로 증가한 서울시내 면세점이 올해 13곳으로 대폭 늘어나면서 면세점 사업의 전망이 어둡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973년 문을 연 동화면세점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막내 여동생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에게 사업권을 넘겨준 곳으로 김 대표는 신 사장의 남편이다. 김 대표의 지분은 41.66%, 신정희 사장 21.58%, 아들 김한성 공동대표가 7.92%를 소유하고 있다. 김 대표는 롯데관광개발 지분 43.55%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하며,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82.86%에 달한다.
동화면세점이 가진 일차적인 문제는 자금난이다. 용산재개발 사업에 차질이 생겨 돈이 필요했던 김 대표는 지난 2013년 호텔신라에 지분 19.9%를 600억 원에 매각했다. 당시 김 대표는 호텔신라에 향후 동화면세점 지분을 되팔 수 있는 풋옵션(매도청구권)도 줬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6월 풋옵션을 행사했지만, 빌린 돈 600억 원과 이자 115억 원을 마련하지 못한 김 대표는 1차 시한인 지난해 12월 19일에 돈을 갚지 못했다. 자금난 탓에 2차 시한인 오는 23일까지도 채무 정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23일에는 10%의 가산율을 적용해 총 788억 원을 갚아야 한다.
이에 김 회장은 호텔신라에 동화면세점 지분 30.2%(57만6000주)를 양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호텔신라로서는 담보로 잡은 19.9%의 지분을 합치면 50.1%의 지분을 보유하게 돼 경영권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거절했다. 호텔신라는 “빌려준 자금을 돌려받는 게 회사의 방침이며, 동화면세점의 경영권 인수 의사도 없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최종 데드라인을 7월 23일로 잡은 상태다.
먼저 동화면세점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점이 김 대표의 경영권 포기 의사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동화면세점은 2015년 영업이익이 15억 원에 불과할 정도로 수익성이 바닥난 상태다. 인근에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신라면세점 장충점 등 거목들이 버티고 있다. 또 여의도·동대문·강남 등지에 면세점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적지 않은 고객을 뺏겼다.
동화면세점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817억 원으로 전기(869억 원)대비 50억 원 이상 감소했다. 수익성이 떨어지자 동화면세점은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몸값 높은 루이비통·구찌·몽블랑 등 명품 브랜드가 잇따라 철수했다. 이들 명품 브랜드는 동화면세점을 버리고 관세청 특허를 신규로 취득한 면세점에 새 둥지를 틀었다.
업계의 출혈경쟁 심화도 타격을 줬다. 면세점이 관광객을 끌어오는 여행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는 2015년까지만 해도 매출액 대비 8%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0%대로 올라서는 등 모객 경쟁이 치열하다. 신규 면세점은 30%를 챙겨주는 곳도 있다. 상대적으로 규모와 자금력이 열악한 중소 면세점으로서는 경쟁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특히 호텔신라가 중소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을 인수할 경우 특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관세법은 중소 면세점에게는 특허 5년과 1회 연장을, 대기업 면세점은 특허 5년 이후 재입찰 규정을 두고 있다. 기업 규모에 따라 특허가 달라 애초에 호텔신라는 동화면세점을 인수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동화면세점이 경영권 매각을 위해 현대백화점과도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런 이유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중소 면세점의 수난은 비단 동화면세점의 얘기만은 아니다. SM면세점 일 평균 매출이 4억 원에 그치는 등 ‘고난의 행군’ 중이다. 지난해 1~3분기 208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4분기 66억 원 안팎의 영업손실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대기업 계열 면세점 관계자는 “정부(관세청)가 2015년부터 특허를 마구 풀어준 것이 과당경쟁을 부추겼다. 중소·중견 업체가 살 수 없는 생태계를 만들었다”며 “면세점 전반적인 구조조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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