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연금이란 거주하고 있는 집을 담보로 종신 또는 일정기간 동안 매월 연금 타듯 일정액을 지급받는 것을 말한다. 국민연금·퇴직연금·연금저축(옛 개인연금)의 연금 3종 세트에 이어 새로운 노후보장 수단으로 관심을 얻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한 홍보만화 ‘아하! 주택연금’을 보면 주택연금의 장점으로 △죽을 때까지 연금이 나온다는 점 △가입자가 사망해도 배우자에게 동일하게 연금이 지급된다는 점 △연금지급액이 주택가치를 초과해도 초과비용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장점으로 홍보하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만 된다면 가입자로서는 굉장히 남는 장사다. 그러나 ‘비즈한국’이 주택연금 약정서(약관)를 꼼꼼히 뜯어본 결과, 주택연금은 가입자보다는 주택금융공사와, 대행하는 금융사에게 유리한 상품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주택연금에 대한 불편한 진실 10가지를 소개해 본다.
① 주택연금의 실체는 주택담보대출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주택연금을 국가가 보장하는 연금제도의 하나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본질은 주택을 담보로 한 주택담보대출이다. 주택연금의 약관에 해당하는 ‘주택담보노후연금보증약정서(약정서, 2016년 11월 16일 기준)’에는 주택연금을 ‘주택담보노후연금대출’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주택담보대출로 집값의 일정부분을 대출받아 생명보험사에 일시불 연금상품에 가입하더라도 다를 바가 없다. 일시불 연금상품이란 1억 원이든 10억 원이든 거액을 예치한 후 매월 연금처럼 타 쓰는 금융상품이다. 만약 주택연금을 고려하고 있다면 생보사 등의 일시불 연금상품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좋다. 다만 주택연금은 서민의 노후보장을 위해 정책적으로 도입된 것이므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 민영 보험사 상품과는 보장내용이 다르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② 총대출한도는 5억 원을 넘지 않는다
약정서의 ‘총대출한도’는 △본인(배우자 포함)이 담보주택의 가격 등을 기준으로 100세까지 연금대출로 지급받을 금액과 초기보증료(가입수수료)를 더한 금액과 △5억 원 중에서 적은 금액으로 정해진다. 이 말은 연금으로 받을 금액과 이자·수수료를 더한 금액이 5억 원을 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주택연금 가입조건은 ‘부부 합산 1주택’으로 주택가격은 ‘9억 원 이하(가입시점 기준)’여야 한다. 서민들을 위한 노후 대책수단이기 때문이다. 9억 원의 주택이라도 총대출한도는 5억 원이 최대다. 대출한도가 5억 원 이하로 설정된 것은 월 지급액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③ 집값이 하락하면 월 지급액이 재조정된다
약정서의 ‘7. 저당권 설정 및 저당권 설정 등의 제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만약 대출잔액이 근저당권 설정액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대출잔액이 근저당권 설정액의 85%가 되기 전에 공사의 요청에 따라 추가설정을 해야 주택연금을 계속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택연금 가입 시 집값이 5억 원인 경우 총대출잔액을 4억 2500만 원(5억 원의 85%)으로 설정했는데, 집값이 4억 원으로 떨어진다면 총대출잔액은 3억 4000만 원(4억 원의 85%)으로 줄어든다. 만약 가입기간을 20년으로 하고 15년 동안 주택연금을 받아왔는데, 15년째에 집값이 폭락하면 최악의 경우 남은 5년 간은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약정서에 따르면 한국주택금융공사는 근저당권 추가설정을 가입자에게 요구할 수 있고, 가입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주택연금 가입이 해제될 수 있다. 다만 이미 총지급액과 이자·수수료 총액이 주택가치를 초과했더라도 가입자가 차액을 물어내지는 않는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이 점을 주택연금의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집값이 수개월 내에 급격하게 하락하는 극단적 상황에서나 가능하다. 집값이 완만하게 하락한다면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사전에 ‘근저당권 추가설정’ 요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④ ‘종신보장’은 100세까지다
주택연금은 가입기간을 5년, 10년, 20년 등으로 한정할 수도 있고 종신보장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종신’이라고 해서 ‘오래 살수록 유리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약정서 ‘3조(보증채무의 범위)’에는 종신보장의 경우 ‘본인과 배우자 중 나이가 적은 사람이 100세가 되는 보증신청일’을 최소보증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부부 중 나이가 적은 사람이 만 100세가 되면 이후 10년마다 보증기한을 연장한다. 이때 보증금액도 재산정하게 된다. 앞서 9억 원짜리 주택이라도 총대출한도를 최대 5억 원으로 설정한 데는 이런 이유도 포함된다. 평균수명이 늘고 100세 이상 생존자가 늘어나더라도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손해를 보지 않도록 충분한 여유를 확보해 놓은 것이다.
⑤ 배우자가 신용불량자인 경우 승계가 불가능하다
주택연금은 가입자 사망 후 배우자에게도 동일한 연금액이 가입기간 동안 지급된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유족연금은 가입자 생존 시보다 감액되는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배우자가 주택연금을 그대로 승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우선 배우자가 신용불량자가 아니어야 한다. ‘주택연금 설명서 및 체크리스트(명서)’의 ‘5. 변제시기 및 방법’에는 ‘귀하가 사망한 후 채무인수 시점에 배우자가 신용관리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 채무가 인수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가입하러 온 고객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언어를 순화했지만, ‘신용관리정보를 보유’한다는 말은 쉽게 말해 신용불량이라는 뜻이다.
⑥ 자녀상속분 및 상속세 못 내면 배우자 몫은 없다
또한 약정서의 ‘배우자의 채무인수에 관한 사항’에는 ‘연금계약 유지를 위해서는 피보증인 사망 후 6개월 이내에 담보주택 소유권 전부 및 근저당권 설정을 본인 앞으로 이전등기를 마치고 채권자와의 금전채무 인수를 완료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국민연금처럼 자동으로 배우자에게 연금이 지급되는 것으로 알고 대비를 하지 않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입자 사망 후 주택 상속 시 자녀가 있다면 배우자에게 주택이 100% 상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녀 상속분 및 상속세를 고려해야 한다. 이 부분은 약정서 가장 마지막에 짧게 서명하도록 되어 있어 놓치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⑦ 대출이자를 매월 납입해야 한다
앞서 설명했듯 주택연금은 주택담보대출이다. 주택을 담보로 주택가격의 일정액을 대출해 매월 연금식으로 지급하는 금융상품이다. 따라서 대출에 대한 이자를 납입해야 한다. 다만 주택연금 실무를 대행하는 금융사(은행 등)가 이자를 먼저 떼고 가입자 통장에 연금액을 입금하기 때문에 실제로 가입자가 이자를 납입하는 행위를 할 필요는 없다. 이자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고 가입자는 이자의 존재를 잊고 지내게 된다.
주택연금의 이자율은 시중 주택담보대출보다는 다소 저렴한 편이다. 주택연금 적용금리는 △3개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산금리(1.1%) 또는 △신규취급액기준 COFIX(코픽스)금리+가산금리(0.85%) 중에서 하나가 적용된다. 한국주택금융공사 홈페이지에는 ‘2016년 1월 현재 주택연금 적용금리는 2.57% 수준으로, 은행권에서 우량고객에게 제시하는 주택담보대출금리보다 낮음’이라고 씌어 있다.
⑧ 집값의 1.5%인 초기보증료가 복병
대출을 해 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모든 대출에는 수수료가 있다. 주택연금은 주택담보대출이기는 하나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운영 및 관리에 대한 보증료(수수료)를 받는다. 가입자가 부담하는 금액 중 이자는 대행사인 금융사가, 보증료는 한국주택금융공사가 가지는 것이다.
보증료는 크게 두 가지로 가입 시점에 한 번 내는 ‘초기보증료’와 가입기간 동안 매월 납부하는 ‘연보증료’가 있다. 초기보증료는 주택가격의 1.5%로, 9억 원 가격의 주택인 경우 1350만 원이다. 초기보증료가 발생하는 이유는 대출은 은행과 같은 금융사가 하고,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이에 대한 지급보증을 서는 것이 주택연금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홍보하는 주택연금의 좋은 점만을 보고 가입상담을 하러 왔다가 보증료에 놀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초기보증료는 가입시점에 가입자가 직접 납부해야 하므로 체감상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연보증료는 월 지급액의 0.75%를 매월 납부하는 것이다. 월 300만 원을 지급받는다면 월 2만 2500원이다. 소득활동을 왕성하게 할 때라면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소득활동이 거의 없는 은퇴 이후에는 크게 느껴질 수도 있는 금액이다. 연보증료는 이자와 동일하게 월지급액에서 미리 떼기 때문에 가입자의 체감 부담은 크지 않다.
연보증료에 대해 가입자에게 불합리한 점은, 주택연금 실무를 대행하는 금융사(은행 등)가 연보증료를 대신 낸 뒤 그에 대한 이자를 챙긴다는 점이다. 가입자로서는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이자를 내면서 연보증료에 대한 이자도 물어야 한다.
⑨ 중도 해지 시 초기보증료는 상환되지 않는다
초기보증료는 주택가격의 1.5%로 제법 큰 금액이다. 그러나 중도해지를 하더라도 초기보증료는 반환되지 않는다. 주택연금 약정서에 따르면 주택연금 철회 기간은 ‘최초 월 지급액(연금수령액)을 받은 날로부터 30일(30일째가 휴일인 경우 다음 업무일)’이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면, 9억 원짜리 주택으로 주택연금에 가입한 뒤 월 지급액을 받고 31일째에 가입을 철회하더라도 초기보증료 1350만 원은 돌려받지 못한다. 이를테면 가입자가 월 지급액 1회 수령 후 사망하고 상속 다툼이 벌어져 6개월 이내에 배우자 명의로 이전등기가 되지 않은 경우 주택연금이 해지될 수 있다. 이 경우 초기보증료는 돌려받지 못한다.
초기보증료를 환급하는 유일한 조항은 천재지변 또는 화재에 의한 주택 멸실의 경우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전액이 아닌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별도로 정한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별도로 정한 금액’에 대한 기준은 약정서 또는 설명서에 나와 있지 않다.
초기보증료에 대해 불합리한 부분은 주택의 변경 때 발생한다. 주택연금은 1가구 1주택을 유지하는 경우 집을 팔고 새로 사더라도 승계할 수 있다. 대신 싼 집을 팔고 비싼 집을 사는 경우 초기보증료를 재산정해 차액을 내야 한다. 3억 원짜리 주택으로 주택연금을 가입할 때 초기보증료로 450만 원을 낸 뒤, 6억 원짜리 집으로 갈아탄 경우 초기보증료로 900만 원이 산정되면 이미 낸 450만 원을 뺀 차액 450만 원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반대로 비싼 집에서 싼 집으로 갈아탈 때는 초기보증료 차액을 돌려주지는 않는다.
⑩ 보증인을 요구할 수도 있다
담보로 잡힌 집에서 평생 살고 또한 배우자에게 상속도 잘 되었다면 주택연금으로 노후를 보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을 매매하기도 하고, 재건축·재개발이 될 수도 있고, 주택 관련 법적 다툼에 휘말릴 수도 있다. 주택연금 설명서에는 ‘공사나 채권자가 보증기한 연장, 보증금액 증액, 연대보증인 입보 등 조건변경신청을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는 경우 주택연금의 지급정지사유가 된다’고 되어 있다.
이는 주택가치에 변동이 생긴 경우 보증기한 연장, 보증금액 증액 등이 불가한 경우 연대보증인을 요구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보증인을 세우는 상황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가입자 사망 후 배우자가 집을 온전히 상속하지 못하더라도, 배우자가 그 집에서 계속 살도록 자녀들이 보증인이 될 수 있다.
주택연금 약정서 또는 설명서에는 보증인을 지정하는 조건이나 절차가 설명되어 있지는 않다. 대신 주택가치 변동 시에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요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 중 하나로 언급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가입 상담 시 문의하면 될 것이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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