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부터 천재소리를 들으며 이른 나이에 검사가 돼 승승장구하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 혐의를 받고 벼랑 끝에 몰린 인물들이다.
필자는 대다수의 검사들이 본분에 충실한 법조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검사는 형벌을 다루고 기소 독점권이란 막강한 무기로 공정성에 대한 시비와 함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악용할 경우 심한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는 자리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노력한다고 아무나 될 수 없는 자리인 검사를 다룬 영화는 정의냐, 비리냐를 떠나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비즈한국’은 검찰을 다룬 영화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정치검찰의 소재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 ‘더 킹’이 개봉했다. 더 킹은 누구에게 권력이 가는지를 귀신같이 알아내 줄을 서고 부귀영화를 꾀하는 정치검찰의 민낯을 그려내고 있다.
이런 정치검찰들의 세계에선 여도 야도 없다. 오로지 내 입맛에 맞는 사람이 대통령 되면 그만이다. 더 킹에서 한강식(정우성 분)과 박태수(조인성 분)가 속한 검찰 특수부는 15대 대통령선거에선 이회창 후보 대신 김대중 후보 쪽에 줄을 섰지만 16대 대통령선거에선 노무현 후보 대신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다. 줄을 갈아탄 배경은 노무현 후보가 검찰 개혁 카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정치검찰들이 개표 방송을 보면서 노골적으로 “제발 노무현만 되지 마라”고 기원한다든가 무당을 찾아 굿판을 벌이고 점을 보는 장면에선 관객들에게 쓴 웃음을 유발한다.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을 때 정치검찰들의 행동방식도 나온다. 한강식은 이회창 후보 당선을 위해 노무현 후보 쪽 비리 관련 정보를 건네지만 결국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정보를 받은 이회창 후보 쪽 인사를 구속시켜 뒤탈을 막고 자리를 보전한다.
‘더 킹’은 권선징악 구조의 결말과 나라의 왕은 국민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내부자들’(2015)에서 그려낸 픽션의 세계는 곧 현실세계에서 섬뜩하리만치 유사한 형태로 터지면서, 이 영화가 미래를 예지한 다큐멘터리 아니냐는 평가마저 받게 하고 있다.
‘내부자들’은 정치깡패 출신의 지하세계 거물 안상구(이병헌 분)와 지방대학을 졸업한 경찰 출신 열혈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이 협력해 부패 권력을 응징한다는 내용이다.
가상의 유력 언론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 이강희와 대학 동창으로 국회의원으로 여당 유력 대선후보 장필우(이경영 분), 장필우와 이강희의 스폰서 재벌 미래자동차그룹 회장 오현수(김홍파 분)가 각각 부패 기득권 세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어차피 대중은 개, 돼지입니다. 뭐 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는 이강희의 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다.
지난해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는 영화 속 대사를 직접 거론하는 부적절한 언행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뉴스타파’를 통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성매매 의혹 동영상이 소개되자, 내부자들에서 그려진 부적절한 성접대 파티가 세인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영화에서 재벌과 공생하는 언론인 이강희는 워크아웃 기업으로부터 초호화 해외여행을 제공받은 국내 한 유력 일간지 주필 사례와 대비됐다. 이 모든 사례가 이 영화 개봉 후 1년도 되지 않아 발생한 일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국회의원 장필우는 우장훈과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장필우는 검사로 활동하던 시절 권력형 비리사건을 수사해 선배 검사들의 옷을 줄줄이 벗긴 인물이다. 때가 묻기 전 장필우는 정의감에 불타는 우장훈의 모습이었으리라. 장필우는 이강희의 도움으로 정치계에 몸을 담으면서 닳아빠진 정치꾼으로 변모한다.
영화에서 빈약한 학벌로 검찰 내 족보 없는 비주류인 우장훈도 출세의 욕망을 가진 인물이다. 우장훈도 대형 사건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여의도 정치권으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보고 장필우처럼 되라꼬?”
‘넘버 3’(1997)는 한국 조폭코미디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현직 검사 마동팔(최민식 분)이 한 조직폭력배 서태주(한석규 분)의 도움을 받아 도강파 조직을 일망타진한다는 내용이다.
검사 마동팔 캐릭터는 파격적이다. 그는 정의의 검사지만 각종 대중문화물에서 정형화된 검사 캐릭터와 달리 입에 쌍욕을 달고 살며 ‘핵폭탄’이란 별명처럼 부임하는 곳마다 조직을 초토화한다.
영화는 한국 사회의 천민자본주의, 권위와 폭력으로 약자를 뭉개는 갑질 등을 3류로 규정하고 지금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어두운 현실을 신랄하게 일갈하고 있다.
영화의 주제의식은 마동팔의 대사를 통해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마동팔은 서태주와 ‘맞짱’을 뜬 후 “니들만이 깡패XX 아니야. 뇌물받는 XX, 주는 XX, 비자금 만드는 XX, 애비 믿고 설쳐대는 애XX, 그애XX 믿고 설쳐대는 개XX, 땀흘려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 모든 개XX들이 진짜 깡패XX들이야” 라고 일갈한다. 마동팔은 “나도 3류(인생)”라고 토로한다.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송강호다. 당시 무명이었던 송강호는 이름도 매우 삼류건달에 부합하는 조필 역을 맡았다. 조필이 영화에서 부하들에게 설명하는 ‘헝그리’와 ‘무대뽀’정신은 한동안 남성들에게 그의 대사 톤, 몸짓까지 따라하게 만드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공공의 적 2’(2005)는 작품 속에서 표현된 검사들의 모습이 너무나 이상주의적인 모습이어서 현실과 동떨어진 검찰 홍보 영화라는 평가를 피하지 못하는 작품이다. 불량 형사지만 공공의 적을 잡는다는 전편의 성공에 힘입어 설경구는 이 영화에서 정의의 검사 강철중으로 나온다.
영화의 줄거리는 고등학교 시절 강철중이 출발선부터 다르다는 현실을 깨닫게 하고 검사의 자리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 됐던 학원재벌 한상우(정준호 분)를 잡는다는 내용이다. 한상우는 재단 설립자인 아버지와 형까지 살해하고 재단을 불법 매각해 그 재산을 외국에 밀반출 하려하는 공공의 적이다.
검찰 미화의 극치는 뇌물의 힘으로 정치권까지 쥐락펴락하는 한상우로 인해 수사에 강력한 외압이 들어오자 강철중에 이어 부장검사, 검사장까지 윗선에 할 말을 하면서 옷을 벗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다. 결국 강철중 캐릭터는 후속작인 ‘강철중: 공공의 적 1-1’(2008)에서 불량 형사로 되돌아갔다. 후속작이니 만큼 ‘공공의 적 3’으로 해야 했지만 검사 강철중 캐릭터와 결별을 위한 영화 제목이었다.
스폰을 받는 검사와 비리경찰을 다룬 영화로는 ‘부당거래’(2010)가 있다. 검사 주양(류승범 분)과 광역수사대 반장 최철기(황정민 분) 외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단 한 명도 정의로운 사람이 없어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영화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각자의 이익에 따라 움직일 뿐 정의나 신념 따위를 찾아볼 수 없다.
어린이 토막 살해사건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경찰은 가짜 범인을 만들어 수사를 종결짓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다. 최철기는 승진을 약속받는 조건으로 이 사건 처리를 담당한다. 주양은 자신의 스폰서 회장을 최철기가 수사하자 스폰서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철기와 파워게임을 벌이고 결국 검사의 우월한 지위로 범인을 조작하려 했던 최철기를 굴복시킨다.
최철기는 증거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후배 형사인 마대호(마동석 분)를 살해하고 승진한다. 정의로운 인물로 보였던 형사 마대호(마동석 분)도 평소에 뇌물을 받는 비리경찰이었으며 마대호의 복수를 하겠다는 동료 형사들은 최철기를 재판에 넘기지 않고 사살한다. 영화는 한국에서 부당거래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암울한 메시지를 던지며 씁쓸한 결말로 치닫는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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