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윤형선은 동양화가로 불린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도 ‘동양화 전공’이라는 이름으로 회화를 공부했다. 동양화 재료와 기법으로 동양적 소재를 다룬다. 우리 미술계가 홀대해왔고 금세기 들어서는 아예 외면해버려 맥이 끊길 위기에 놓인 동양화란 우리에게 무엇일까. 그런 그림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작가에게 동양화는 또 어떤 의미일까.
‘동양화’는 우리의 그림을 일컫는 말로서 먹이나 색채, 붓과 종이를 재료로 하는 전통 회화다. 동양 고유 회화 양식으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녔고, 중국 당나라 때 정립되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동양화라 부르지 않고 국화(나라 그림)라 한다. 자기네가 만들었으니 이렇게 칭하는 것은 당연하겠지. 우리나라에도 동양화라는 말은 없었다. 재료에 따라 ‘수묵’ ‘채색’으로, 그림 주제로 나누어 ‘산수’ ‘화훼’ ‘영모’ 등으로 불렀다.
동양화는 동양의 회화라는 말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전체를 동양으로 부르니까, 동양화는 국적이 불분명한 아시아 전체의 그림을 말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말이 어떻게 우리 그림을 지칭하게 됐을까. 이 말은 일본이 우리 문화와 정신을 말살하려는 일제강점기 문화 정책에 따라 붙인 것이다. 서양에서 들어온 회화를 ‘서양화’라 하고 그에 대응하는 의미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수치스러운 이름을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여전히 쓰고 있다.
그런 이름으로 아직도 불리며 현대미술이라는 테두리에서 폄하돼온 그림으로 우뚝 서 있는 작가가 윤형선이다. 기법이나 소재도 전통의 범주를 지키며 분명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우리 그림에 눈 밝은 이들에게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전혀 새로운 그림이 아닌데도 미술 시장에서 사랑받는 작가가 되었다.
윤형선의 그림은 미술의 본모습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예쁘게 보이는 요소는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동양적 사유가 그의 그림의 주제다. 윤형선 회화에 등장하는 잉어나 나비, 곤충 그리고 꽃이나 물, 나무 등은 자연의 모습을 따르고 있지만, 동양적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 어떤 세계관일까.
동양적 사유에서는 세상 모든 일이 날줄과 씨줄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라보는 세계가 유일하다고 믿지 않고, 드러난 현상 뒤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상이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도 전후좌우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세상만물이 서로 주고받는 작은 힘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윤형선 회화는 바로 이런 생각의 결과들이다. 잉어와 꽃과 같은 개별 생명체로 표현됐지만 회화적 구성에 의해 배치되며, 그 조화를 통해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세상만물이 서로 연결된 관계에 순응하는 일, 즉 자연의 순리가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을 그려낸 것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