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우브(STAUB), 르크루제(LE CREUSET), WMF, 실리트(SILIT), 휘슬러(Fissler) 등과 친숙하다면 꽤나 매력적인 남자일 가능성이 크다. 요리를 좀 아는 남자일 테니까.
이 브랜드들은 모두 프리미엄 주방도구다. 그것도 프랑스와 독일의 전통 있는 브랜드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고, 서툰 목수가 연장 탓을 한다지만, 솔직히 좋은 도구도 실력에 일조한다. 미슐랭 스타급 요리사가 되면 주방도구와 상관없이 언제든 만족스런 요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셰프가 직업이 아닌 우리들로선 집에서 요리할 때 좋은 도구가 필요하다. 도구에 따라 맛이 좌우되곤 하니 말이다.
실제로 어떤 주방도구를 쓰냐에 따라 요리 실력에 확실히 차이가 생긴다. 심지어 요리만 수십 년 해온 셰프들도 주방도구의 영향을 꽤 받는다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냄비나 후라이팬 등 가장 기본이 되는 주방도구에 돈을 쓰는 건 합리적이다. 한 번 사면 꽤 오래 쓰는 데다, 매일 쓰는 도구다 보니 비싼 값을 치렀어도 비용 대비 만족도는 뛰어나다.
어떤 것에 돈을 쓰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성향, 취향, 그리고 라이프스타일도 알 수 있다. 적어도 주방도구에 돈을 쓸 줄 아는 남자는 저녁이 있는 삶에 관심도 있고, 가족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에 투자도 할 줄 아는 남자일 가능성이 크다. 어머니 손맛 타령만 하면서, 옛날 어머니는 값싼 양은냄비에도 요리만 잘하셨다며 주방도구에 돈 쓰는 데 인색한 남자만큼 구시대적인 남자도 없다.
“냄비가 무거우면 삶은 가벼워진다.”
이 말은 고가의 무거운 주물냄비를 사달라면서 그녀가 내게 던진 한 마디였다. 대개 비싼 주방도구들은 다들 묵직한 데서 비롯된 얘기인데, 그렇게 해서 르크루제와 스타우브가 우리집 주방에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여전히 주방을 지키는 건 내 몫이다. 그녀는 전통 있는 브랜드의 주방도구들을 보는 자체에 만족하는 것이었지, 그걸 가지고 요리를 하는 데서 즐거움을 누리는 타입이 아니라는 걸 간과했다. 덕분에 내 요리실력이 늘어나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요즘엔 남자가 요리 잘하는 게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다. 워낙 잘하는 이들도 많고, 이제 남자에게 요리가 기본이 되다시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방도구를 잘 다루고 맛있게 요리하는 남자는 경쟁력이 있긴 하다.
과거엔 2030 싱글남들이 주로 요리를 배웠다. 멋진 요리로 여자친구에게 점수를 따겠다는 것이었는데, 주로 파스타, 스테이크 같은 요리부터 배운다. 멋지고 로맨틱한 저녁식사를 준비해서 여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와인을 곁들이고 음악까지 세련되게 선곡하면 금상첨화다. 이렇듯 요리는 구애의 수단이기도 하다.
요즘은 3040 유부남들도 요리에 관심이 크다. 싱글남과는 이유가 다른데, 바로 가족과의 관계를 위해서다. 바쁜 아빠들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떡볶이, 김밥, 미역국 같은 걸 먼저 배운다. 유부남들에겐 가장 효과적인 요리들이다. 적어도 아내 생일에 미역국 끓여주는 것만 잘해도 점수를 크게 딴다. 아울러 애들이 있다면 간식으로 김밥과 떡볶이를 잘하는 게 좋은 무기다.
나아가 5060들도 요리에 관심이 커졌다. 이들에게 요리는 생존 수단이다. 언제 혼자 될지 모르고, 또 집에 가서 밥 차려달란 말을 호기롭게 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자기가 먹을 것만큼은 최소한 배워두겠다는 것. 주로 김치찌개를 비롯한 각종 찌개, 반찬류를 배운다고 한다. 요리를 배우는 남자의 진화 단계를 보는 것 같다. 더불어 연령과 상관없이 모든 남자가 요리와 가까워졌다는 것이 이젠 트렌드를 넘어 문화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요리 잘하는 남자는 명절에도 빛을 발한다. 음식준비 앞에서 결코 뒷짐지고 방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절 후에 이혼소송이 급격히 늘어나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대개가 평소에 쌓은 갈등이 전 부치다가 폭발하는 식이다. 중요한 건 이제 남자에게 요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좋은 자동차를 타면 삶이 가벼워질까? 좋은 수트를 입으면 삶이 가벼워질까? 이 질문에 예스 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좋은 냄비를 사는 데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집에서 주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다. 외식도 많이 하고, 아침도 안 먹는 시대다 보니 집에서 주방의 공간 활용도는 낮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방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단지 밥을 해먹을 공간이라서가 아니라, 가족이 한데 모여서 밥을 먹으며 어울릴 공간이라서다.
밥 먹는 입이라는 ‘식구(食口)’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젠 그냥 밥 먹는 입만이 아니라, 함께 요리하고 함께 밥 먹으며 함께 수다 떠는 게 진짜 식구다. 우리의 현실이자 일상에서 가장 결핍된 것 중 하나가 이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이런 환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은 과감히 써도 결코 낭비가 아니다. 냄비가 무겁든 가볍든, 프라이팬이 무겁든 가볍든, 적어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것이 삶의 윤택함이자, 지금 시대의 클라스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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