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일주일 만에 본색을 드러냈다.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고 각계각층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현지시각) 테러 위협이 높다고 판단한 중동 및 아프리카 7개국(이라크, 이란,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리비아, 예멘) 국적자의 미국 비자 발급 및 입국을 90일 동안 일시 금지하는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테러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번 행정조치로 인해 미국인들의 안보 위협이 줄어들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당장 미국 IT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 에어비엔비 등 미국 글로벌 IT 기업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반이민 행정조치를 비판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사 직원들은 물론 나아가 미국의 혁신에 상처를 주고 있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애당초 대부분 미국 IT업계 주요인사들은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선거 전부터 그의 IT산업 정책이 미스터리하며 더 나아가 혁신의 적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왔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미국 IT업계를 흔들어놓는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그간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발달한 미국 IT산업은 전 세계 고급 IT 인력들이 모여들며 끊임없는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이곳 실리콘밸리에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10만 달러(약 1억 1670만 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유연한 노동 시간을 가지며 최고급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수많은 꿈의 직장들이 집결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 IT산업도 이러한 고급 인력을 흡수하기 위해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펼쳐왔다. ‘H-1B’ 비자가 바로 그것이다. H-1B 비자는 간호사를 제외한 전문직 취업 비자다. 미국 기업이 고용을 보장하고 비자 수속 비용도 대신 내는 경우에 발급된다. 최장 6년까지 미국에 안정적으로, 자녀 및 배우자도 함께 체류가 가능한 점이 특징이다.
미국 내 주요 IT 기업들은 더 많은 고급인력 유치를 위해 H-1B 비자 발급 확대를 주장해왔다. 현재 미국 정부는 H-1B 비자 발급 건수를 연간 6만 5000건으로 제한하고 있다. 신청자가 너무 많아 뽑기 형태로 비자를 발급해 줄 정도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이러한 H-1B 비자 발급을 오히려 더욱 엄격하게 해야하며, 발급 건수도 더욱 줄여한다고 한다고 주장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간단하다. 미국 기업은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에서 배출하는 인력만으로는 실리콘밸리가 필요로 하는 고급 인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데 있다. 미국 IT업계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고급 인력 채용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으니 트럼프 당선을 반대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가 발동한 긴급 행정명령은 H-1B 비자를 소지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7개국 출신이라면 입국이 불허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IT 기업 리더들이 즉각적으로 입장을 발표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이들은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의 깊은 유감을 표시하면서, 현재 해외에 있는 해당 국가 직원들에게 즉각 미국으로 돌아올 것을 당부했다. 현재까지 전해진 반 이민 정책 적용 국적자는 구글에 최소 187명, 마이크로소프트에는 76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만약 이러한 반이민 행정조치가 7개국을 넘어 이슬람 문화권 전체로 확대된다면 당장 미국 IT업계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는 비단 고용문제를 넘어 전 세계 이슬람 시장에서 미국 기업이 매우 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실리콘밸리 지역사회는 술렁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7개 국가 이외의 고객들에게도 당분간 출국하지 말 것을 권유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IT 기업들도 외국인 직원들의 해외 출장 업무 등을 두고 갈등하고 있다.
이번 반이민 행정명령은 90일 한시 적용된다. 어떤 테러 위협 첩보가 입수돼 트럼프 정부가 이러한 초강수를 두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적어도 이번 행정조치가 끝이 아닐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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