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글로벌

고무 손잡이 단 감자칼로 주방을 혁신하다

주방용품기업 옥소(OXO)의 유니버셜 디자인과 수평적 기업문화

2017.01.28(Sat) 21:10:51

‘주방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

미국 주방용품 시장의 선두주자인 옥소(OXO)의 기업 철학이다. 주방 안에서는 나이가 많건 적건, 장애가 있건 없건, 혹은 솜씨가 있건 없건 누구나 편리하게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고, 또 너무도 뻔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27년 전만 해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방용품들이야 다 거기서 거기고, 잘 만들어봤자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저 누가 더 값싼 제품을 대량 생산하느냐가 관건이었을 뿐, 편리함과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뉴욕의 사업가였던 샘 파버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생각이 바뀐 것은 결정적으로 아내 때문이었다. 성공한 가정용품 제조사인 ‘코프코(Copco)’의 설립자였던 그는 1982년 회사를 매각한 후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아내인 벳시와 함께 두 달 동안 프랑스 여행을 하던 어느 날, 그는 렌트 하우스 주방에서 힘들게 사과를 깎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봤다.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던 아내에게 손잡이 부분이 얇은 금속 재질로 되어 있는 필러는 더없이 불편한 것이었다. 

 

옥소의 대표적인 제품인 감자칼. 아내가 힘들게 사과를 깎는 것은 본 샘 파버가 개발했다. 사진=옥소


순간 파버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주방 도구는 없는 걸까?’ 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주방 도구가 시중에 없다는 생각을 한 파버는 곧 주방용품 시장의 틈새를 읽어냈다. 그가 주목한 점은 아내와 같은 관절염 환자뿐만 아니라 힘이 약한 노인들, 혹은 요리 초보자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주방도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파버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곧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1990년, 옥소가 탄생했다. 수백 개의 모델과 수십 개의 디자인을 만들어보는 등 광범위한 연구 끝에 탄생한 옥소의 첫 번째 제품 라인은 모두 15개였다. 여기에는 오늘날 옥소의 상징처럼 된 감자칼을 포함해 깡통 따개, 오렌지 필러 등이 었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였을 때만 해도 바이어들은 옥소 제품의 경쟁력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엇보다도 가격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랬다. 당시 시중에서 2달러 정도면 살 수 있었던 감자칼을 옥소에서는 세 배 더 비싼 6달러에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옥소 제품의 진가를 알아본 것은 바로 고객들이었다. 출시 후 점차 판매량이 증가하더니 곧 주방용품 시장의 본보기가 된 것. 그렇다면 무엇이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걸까. 오늘날 감자칼을 비롯해 주방가위, 뒤집개, 계량컵, 야채 탈수기 등 1000개가 넘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옥소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굿그립(Good Grip)’, 즉 손잡이 부분에 있다. 

 

옥소의 다양한 감자칼. 손잡이가 고무로 되어 있는 데다 굵어서 초보자는 물론 관절염 환자들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사진=옥소


자전거 손잡이에서 영감을 얻은 이 손잡이는 고무로 되어 있으며, 덕분에 편안하고 폭신한 그립감을 제공한다. 또한 두께가 굵기 때문에 손목 힘이 덜 들어가며, 따라서 손목의 피로감이 적다. 이는 무엇보다도 관절염 환자들에게 이상적인 디자인이다. 여기에는 ‘관절염 환자에게 편하면 당연히 일반인에게도 편할 수밖에 없다’는 파버의 이념이 녹아 있다.

 

뿐만이 아니다. 손잡이 부분에 머리빗 모양을 만들어 놓은 것도 작지만 사려 깊은 디자인이다. 이를 통해 마찰력이 증가하고, 제품의 무게가 가벼워져 사용자의 편의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옥소의 제품은 다소 투박하긴 하지만 오로지 제품의 기능적 측면에만 집중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그리고 옥소의 핵심적인 성공 요인 역시 바로 여기에 있었다. ‘고객이 항상 우선’이라는 확고한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유니버셜 디자인’이야말로 옥소의 핵심 가치인 것이다. 유니버셜 디자인이란 보편적 디자인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연령, 성별, 장애 유무에 상관 없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심지어 옥소라는 브랜드 명칭도 이런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OXO라는 이름은 수평적으로, 수직적으로 같으며, 뒤집거나 거꾸로 읽어도 늘 똑같다. 이런 점에서 옥소는 광고를 통해 고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강요가 아닌, 당신이 잡고 싶은 대로 잡으세요.”

 

옥소의 또 다른 특징은 간결함에 있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절제미를 강조하는 디자인과 흑백으로만 이뤄진 색감이 대표적이다. 이런 흑백의 색감은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는 한편, 선반에서 눈에 잘 띄는 효과도 있다. 

 

이처럼 인체공학적인 옥소의 세련된 디자인은 세대를 초월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년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옥소의 제품을 사용해본 사람들은 옥소의 제품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들어졌는지 금세 알게 된다. 이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는지,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화려한 수상 경력에서도 드러난다. 옥소의 굿그립 제품은 지금까지 관절염 협회를 비롯해 ‘디자인 첸트룸’, ‘굿 하우스키핑’ ‘메트로폴리탄 홈’ ‘IDEA 어워즈’ 등 수많은 분야에서 수상한 바 있다. 또 뉴욕현대미술관(MoMA), 쿠퍼-휴이트 국립디자인박물관 등 전 세계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스스로 ‘옥소니언(OXOnian)’이라고 부르는 옥소의 직원들은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한다’는 사명감 아래 수평적 관계에서 자유롭게 일한다. 사진=옥소


오늘날 주방용품 산업의 새로운 기준이 된 옥소의 기업 문화 역시 주목할 만하다. 스스로를 가리켜 ‘옥소니언(OXOnian)’이라고 부를 만큼 소속감과 자부심이 강한 직원들은 모두 수평적 관계에서 일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직원들이 한데 어울려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와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의견들이 교환되며, 누구나 언제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개진할 수 있다. 

 

더욱 특별한 것은 직원들의 이력이 상당히 다양하고 독특하다는 점이다. 옥소니언 가운데는 시인도 있고, 사교댄스 챔피언도 있으며, 미스터빈과 함께 M&M 광고에 출연했던 배우도 있다. 저마다 배경도 국적도 다르지만, 이들은 한 가지 공통된 사명감으로 뭉쳐 있다. 바로 ‘모든 사람들이 더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이 일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버는 1992년 ‘제너럴 하우스 코퍼레이션’에 회사를 매각한 후 두 번째 은퇴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아내와 함께 전 세계를 돌면서 유니버셜 디자인의 콘셉트를 홍보하거나 강연 무대에 올라 옥소 제품의 철학을 전 세계에 알렸다. 2000년까지 옥소의 연간 성장률은 무려 37%에 달했으며, 연매출은 6000만 달러(약 694억 원)였다. 현재는 비달사순, 레블론 등을 소유하고 있는 ‘헬렌 오브 트로이’ 사가 소유하고 있다. 

 

옥소의 설립자 샘 파버(왼쪽)와 그에게 영감을 준 아내 벳시 파버. 사진=옥소


현재 옥소는 주방도구뿐만 아니라 정원도구, 사무용품, 욕실용품, 청소용품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상태다. 영유아 전문용품 브랜드인 ‘옥소 토트(OXO Tot)’ 역시 시장에서 빅히트를 쳤으며, 제약회사인 UCB와의 협업으로 탄생시킨 관절염 환자들을 위한 가정용 주사기인 ‘심지아(Cimzia)’도 혁신적이긴 마찬가지였다. 

 

모회사는 바뀌었지만 옥소의 철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회장인 알렉스 리는 “옥소의 이념은 연령과 능숙함 정도에 상관 없이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옥소의 핵심 가치는 고객, 그리고 유니버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김민주 외신프리랜서


[핫클릭]

· 기적의 토스터와 선풍기로 ‘체험을 팝니다’
· 바보야,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열정’이야
· 스타벅스 그 이상의 스페셜 커피, ‘블루보틀’
· 일본 최고 매상 올리는 편의점의 7가지 비밀
· 고흐에서 해리포터까지…시대 초월한 몰스킨 매력
· 티파니 블루, 미니언 옐로… 색으로 돈 버는 기업 ‘팬톤’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