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물전골, 한때 많이들 먹었다. 특히 지금 사오십 대 독자들은 기억하실 것이다. 해물전골 한 냄비 시켜서 건더기 다 먹으면, 육수 더 달라고 해서 술자리를 사수(?)하던.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에게 좋은 안주였다. 이제는 해물이 비싸져서 고급 음식에 들어갈 판이다.
해물전골집이 노포에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불고기나 국수처럼 아주 오래된 전문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산에서 뜻밖에 노포를 만났다. 바로 바다집이다. ‘수중전골’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부산, 국제시장 안쪽 깊숙한 곳에 있다.
필자가 우연히 발견하고는 아껴두고 있었는데 어느날 방문해보니 줄이 엄청나지 않은가. 알고보니 백종원의 무슨 프로그램에 나와 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비집고 들어가 한 냄비 했다. 맛이 여전했다. 다 이쪽 일이 이골이 난 김유자 사장 덕인 듯하다. 손님이 늘어도 그전과 달라진 게 없다. 직접 해물을 다 손질하고 일일이 한 냄비씩 안쳐서 주문이 들어오면 상에 낸다.
이 집이 특이한 건 바로 그릇이다. 아주 특이하다. 보통 해물전골 냄비랑은 다르다. 사장님도 역사를 잘 모른다. 옛날부터 쓰던 것이라고밖에. 식당 벽에 오래된 신문기사가 한 장 붙어 있다. ‘일요신문’ 기사다. 공식 지명으로 신창동2가라고 써 있다. ‘삼천리백화점’ 일대에 10여 곳이 성업한다고 나와 있다. 이제는 전설 같은 백화점이다. 그중에 ‘바다집’이 원조격이고 이종만 씨가 1975년 처음 열어 운영했다고도 나와 있다. 그 가게를 인수한 것이 현재의 김유자 사장이다.
“예전부터 쓰던 그릇이고, 이제는 구할 수도 없어예. 수중전골에는 이거 쓰는 게 맞지예.”
사장의 말이다. 마치 갓을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 불현듯 파팍,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조선 후기의 고기 굽는 장면이다(아래 그림).
이걸 전립투라고 불렀다. 병사가 쓰는 벙거지 전투모라는 뜻이다. 그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밑에 화로를 놓고 숯을 때고 위에 벙거지 엎어놓은 것 같은 쇠로 된 냄비를 놓고 고기를 구웠다. 가운데 우묵한 곳에는 아마도 간장과 기름, 마늘 등을 넣은 양념액이 들어 있을 것이다. 고기를 구워서 거기에 찍어먹는 방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바다집’의 수중전골은 사진에 보는 것처럼, 해물 고명을 넓게 둘러넣고 가운데 육수를 채워 넣는다. 아주 비슷하다. 해물이 익으면 자연스레 육수가 진해진다. 그럼 여기에다 국수 등을 말아먹는다. 옛 그림속의 인물들도 아마 그 육수에 밥이나 국수를 넣어 먹었을 것이다.
이 해물전골은 아주 싸다. 1인분에 8000원. 제철에 싼 해물을 싱싱하게 장만해서 푸짐하게 넣는다. 그 일을 모두 김유자 사장이 직접 한다. 시쳇말로 ‘인건비 아껴서 재료에 퍼붓는’ 거다. 그러니 싸고 맛있다.
한때 이 골목에 10여 개의 수중전골집이 있었다는 것이다. 수중전골과 해물전골의 차이는 “수중전골은 해물을 다 까서 손질해서 넣는 것”이라고 한다. 새우, 개조갯살, 낙지, 오징어, 바지락, 굴 등 해물이 그득하다. 이 골목의 주 손님은 학생과 노동자였다.
“말도 마이소. 수중전골이라 카는기는 아주 싼 음식입니더.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이 마이 왔어예. 난리가 나지예. 엄청나게 먹고 술 마시고. 참 힘들었어예.”
동아대, 부산대, 수산대 등 부산의 대학생들이 많이 찾았다.
수중전골은 먹는 법이 있다. 가운데 깊게 파여 있는 홈에는 육수가 가득 부어진다. 매운 고춧가루 양념은 기본이다. 팔팔 끓인다. 냄비 바깥에 놓인 해물의 즙이 안쪽의 홈으로 모여든다. 일단 해산물은 빨리 익으니 건져 먹는다. 국물은 조금 기다린다. 졸아붙고 농도가 나와야 맛있다. 해산물을 얼추 건져먹고 국물을 한 술 떠본다. 달착지근하고 감칠맛 도는 국물이 완성되어 있다. 진하고 맵다. 얼얼하게 퍼먹는다. 우동 사리나 밥을 넣어 마무리한다.
이 냄비를 근처 그릇도매시장에 가서 물어보니, 팔지 않는다고 한다. 10여 년 전에는 많이 팔았다는데, 이제는 귀하다. 주인이 창고를 뒤지더니 몇 개 남았다고 한다. 두 개를 샀다. 개당 만 원.
전설적인 부산의 해물전골집.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그 전골냄비도 함께.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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