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왕좌의 게임’이 한창이다. 민간은행은 물론 금융공기업 수장들의 임기가 속속 만료되면서 새 수장을 선임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박근혜 정부 들어 두드러진 충청권 출신 인사들의 약진이 계속될지 여부와 2010년을 전후해 일종의 트렌드처럼 금융권에 자리 잡은 내부 출신의 강세가 이어질 것이냐다.
우리은행은 25일 임원추천회의 면접을 실시하고 ‘민선 1기’ 행장을 선임한다. 후보자는 이광구 현 행장과 김승규 전 우리금융지주 부사장, 이동건 영업지원그룹장, 세 명이다. 유력 후보로 꼽혔던 정화영 중국법인장은 신청서를 넣지 않았다.
일단 세 후보 모두 승진으로 올라온 경우라 내부 출신 행장은 확실해졌다. 눈길이 가는 지점은 ‘합병 전 출신’이다.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병해 출범한 우리은행은 출신 은행에 따라 행 내 계파가 형성돼 갈등이 극심하다. 이 때문에 각 행 출신들이 행장을 맡아오던 관행이 있었다.
그런데 2015년 상업은행 출신인 이광구 당시 부행장이 행장에 오르자 내부적으로 논란이 들끓었다. 이종휘(한일은행)·이순우(상업은행) 전 행장의 출신을 고려하면 한일은행 출신이 확실시 됐기 때문이다. 특히 영남계 주류가 득세하고 있던 터라 비주류인 충남 천안 출신인 이 행장의 발탁에 의아해 하는 눈길이 적지 않았다.
이번에 이 행장과 자웅을 겨루는 김 전 부사장과 이 그룹장의 고향은 각각 경북 안동·경주며 두 사람 모두 한일은행 출신이다. 행 내 주류다. 이 때문에 이번 행장 선임에서 충청권·상업은행의 반란이 이어질지, 주류의 귀환이 될지 주목받고 있다.
지난 19일 신한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조용병 회장도 ‘비주류의 반란’으로 통한다. 순혈주의가 강한 신한은행에서 조 회장은 보기 드물게 고속 승진한 케이스다. 고 서진원 행장이 와병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2015년 행장에 취임한 이후로 내부 조직 관리에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대전 출신인 조 행장이 취임한 이후 충청권 출신들이 인사를 장악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행 내 신망이 두텁고 신한금융의 세대교체를 이끌 인사로 꼽힌다.
조 회장이 회장직을 두고 경쟁한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을 끌어안을지도 관심사다. 위 사장은 회장추천위원회 막판 후보직을 사퇴했으며, 현재 행장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 사장은 대표적인 ‘라응찬계’ 인물로 중립지대를 형성한 조 회장으로서는 끌어안아야 할 필요가 있다. 라 전 회장은 여전히 일본 측 주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조 회장이 만약 위 사장과 선을 긋는다면 외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3월 말로 임기가 끝나는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연임도 관심사다. 함 행장 역시 충청(부여) 출신으로 충남북지역본부장·대전영업본부장·충청사업본부장을 찍고 행장으로 직행했다. 현재는 외환은행 합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연임 쪽으로 기울고 있다.
특히 1월 인사에서 4명의 부행장 중 3명을 1960년대생으로 교체해 1956년생인 자신과 나이차를 벌려뒀고, 퇴직했던 지점장을 다시 불러들였다. 주변을 정리함으로써 장기집권을 위한 정지작업을 벌인 셈이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내년 3월까지라 더 높은 고지도 노려볼 만하다.
올해 말 임기가 끝나는 김용환 NH농협지주 회장과 임기가 2년 남은 박종복 SC제일은행장 등 충청 출신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가 연임에 성공할지도 관심이 모인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12월 조준희-권선주에 이어 김도진 행장을 선임했다. 세 번 연속 내부출신 행장을 배출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 역시 정치권-관료 출신인사를 배제하고 내부출신 행장을 선임하는 게 관행으로 굳어졌다. 금융권에 모피아의 낙하산 인사가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2014년 KB사태 이후 외부 인사의 부작용을 뼈저리게 느낀 KB금융지주·국민은행 역시 차기 회장 겸 행장으로 내부 출신을 선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우세하다. 11월 임기가 끝나는 윤종규 회장 겸 행장도 내부 출신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의 알력 다툼이 있어 재정부가 과거처럼 밀어붙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모피아 출신이 금융기관 수장으로 가는데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늘었다”며 “장관-차관-국장-유관기관장 인사가 순차적으로 일어나야 하는데 최순실 사태 이후로 인사가 올스톱된 점도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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