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밀리터리 매니아와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국방부의 한 용역보고서가 화제가 되었다. ‘민·군 협업을 통한 게임형 Train-ment(가칭) 개발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국내 한 대학교에서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작성된 보고서였다. 그 보고서의 목차가 그야말로 군대 FPS 게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총체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FPS 게임이란, 1인칭 슈팅 게임의 약자인데, 현실 속에서 총을 들고 사격을 할 때의 시점 그대로 적과 전투를 하는 게임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히어로즈 오브 스톰’, ‘리그 오브 레전드’,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 공간을 위에서 관망하는 시점의 게임인 3인칭 쿼터 뷰가 인기를 얻고 흥행했다.
FPS도 게임 마니아들을 매료시키는 장르로 10년째 인기 순위 상위권에 올라있는 ‘서든 어택’이 대표적인 게임이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블리자드의 ‘오버워치’가 발매 된 후, 한국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장르로 자리 잡았다.
FPS 게임이 다른 게임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몇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몰입감’이다. 시공의 폭풍 속 전사들이나 소환사(게이머)를 내려다보는 것과, 내가 직접 ‘캡틴 프라이스’나 ‘둠 가이’되는 것은 게임 화면에서의 느낌 차이가 상당하다. 그래서 같은 연출에도 유저에게 훨씬 강렬하게 닿는다.
FPS 게임은 전쟁과 군사를 소재로 한 게임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밀리터리와 가장 친한 게임 장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인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경우 2차 세계대전부터 냉전 시기 비밀작전, 월남전을 거쳐 현대전을 지나 미래의 우주 전투까지 표현했다. 경쟁 작인 EA의 ‘배틀필드’ 시리즈의 경우 최근에는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삼아 호평을 받아냈다.
많은 전쟁 게임이 FPS라는 장르를 선택하는 것에는 역시 실감나는 전쟁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FPS 게임이 가진 흥행성 역시 게임회사가 FPS 장르를 선택하는 큰 요소다. 방금 언급한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경우 ‘GTA’ 시리즈와 함께 가장 성공한 비디오 게임으로서 그 매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콜 오브 듀티’의 지적 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CEO(최고경영자) 바비 코틱(Bobby Kotick)은 지난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콜 오브 듀티’가 총 110억 달러, 그러니까 13조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발표했다. 그 뒤로도 두 편의 ‘콜 오브 듀티’가 나왔으니 추정 매출은 14조 원을 가볍게 넘긴 셈이다.
14조 원이라는 돈은 우리 공군의 차기전투기 F-35를 100대 가까이 사거나, 혹은 차기 잠수함인 장보고-3를 15척 구매할 수 있는 돈이다. 가히 그 규모가 가공할 만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국방부가 FPS 게임을 활용해서 훈련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는 매우 칭찬할 만하다. 해당 보고서의 전문은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제안서의 내용을 보면 추측이 가능하다.
보고서는 외국의 군 홍보 및 훈련용 게임에 대한 연구, 민군 협업에 의한 게임 개발 투자 및 임무, 비용 분담 방안, 개발 이후 활용 방안, 국내 FPS 게임 조사 및 개발 방안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 듯하다. 즉 민군 협력 사업을 추진하기 전 기본적으로 파악해야 할 내용들이 거의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특히 연구 결과 평가서에서 훈련소 모드를 적용하여 신병훈련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점을 중시한 점도 높이 평가할만하다. 국방부는 민군협력 FPS 게임으로 홍보는 물론 훈련효과까지 얻는 일거양득의 방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이 분야의 전설, 아메리칸스 아미(AA·America's Army)가 이미 상당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AA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서비스되고 있는, 미 국방부가 발주하여 무료로 공개 중인 FPS 게임이다. 모병제 국가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많은 병력이 필요하게 된 미국이 비디오 게임으로 모병자원을 끌어 모으자고 만들어진 게임이다.
이 게임은 멀티플레이에서 미군의 무장을 가지고 적들을 사살하는 액션 요소와 함께, 응급처치나 무전 사용 등도 강조했다. 다른 FPS 게임에서는 간략하게 표시된 요소를 상당히 사실적으료 표현하면서 교육효과도 높여, 군사 홍보 게임의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방부의 발표를 두고 게이머들과 국민들의 여론은 좋지 않다. 이 뉴스를 보도한 페이스북 유저들의 댓글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찾긴 쉽지 않다. “이번에는 얼마를 떼먹을까”, “여러분의 세금이 터지고 있습니다!”, “선임에게 욕먹는 거 구현하면 인정합니다” 등이 주된 여론이다.
국방부가 홍보나 군 이미지 개선을 하려면 게임을 만들어서 홍보하는 것보다 방산비리에 대한 철저한 수사, 병영 내 가혹행위 사건 등 병영부조리 사건 방지, 병사들의 월급, 급식, 숙식 처우 개선이 더 우선이라는 평범하지만 진리에 가까운 생각이 시민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2년간 군복무를 한 입장에서, 의무 복무를 했을 때의 여러 어렵고 부조리한 기억이 군대와 국방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든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영부조리나 사병 처우 개선과 함께 국방 FPS 게임은 주의 깊으면서 굳건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첫 번째 이유는 FPS 기술의 발전으로 비용 대비 훈련효과가 높은 플랫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시로 든 AA의 경우 실제 지혈 절차를 객관식 시험을 치르거나, 야전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는 방법 등을 게임 속에서 가르치려고 했다. 결국 이 절차는 마우스와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훈련효과는 지극히 낮았다. 하지만 최근 유행하는 VR(가상현실) 기술은 시각을 실감나게 전달하는 것은 물론 실제 몸의 움직임을 읽어내서 게임에 적용하는 수준으로 발전되었다.
최근 발매되는 VR 기기인 ‘오큘러스 리프트’나 ‘HTC 바이브’ 같은 경우 손과 상체의 움직임으로 총을 들고 사격하고 조작을 하는 상당 부분까지 재현되었다. 물론, 현재도 VR을 활용한 전투 시뮬레이션은 UDT/SEAL의 ‘특수전 가상현실 훈련체계’나 미국 레이시온 사의 ‘virtsim’ 등이 실용화돼 있다. 반면 가격은 민간 게임용 VR 기기보다 수배에서 수십 배 비싸면서 그래픽과 효과는 훨씬 부족한 실정이다.
만약 민군겸용 FPS를 제작하여 동일한 3D 리소스를 활용하여 민간과 군이 공유한다면, 기존 장비보다 훨씬 싸면서도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 민간은 60만 군 장병을 잠재 고객으로 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국내 밀리터리 FPS 게임의 위축으로 민군협력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게임 대국으로, 특히 온라인 게임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졌으나 모바일 게임 산업의 흥행, 중국 시장의 부상으로 그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국내에서 활발히 서비스되고 있는 FPS 게임들은 해외 콘솔 FPS 게임과 다르다. 우리나라의 FPS 게임은 비록 매출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중국 등 저사양 PC에서 즐기는 낮은 그래픽과 단순한 게임성 때문에 비평적 부분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민군협력 FPS 게임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면, 이런 상황에 전기를 가져다주고 현실감 넘치는 게임의 리얼리티로 주는 재미와 높은 퀼리티를 둘 다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재 한국 FPS 업계는 신규 개발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있다. 기존 유명한 FPS 게임들도 해외 경쟁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리거나 경영 사정의 문제로 밀리터리 FPS라는 장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반전을 노려야 한다.
현재 이 국방 FPS 게임 보고서는 작성과 보고가 모두 완료되었고, 담당 부서는 우리 국방부의 창조국방 TF로 옮겨간 것으로 알고 있다. 국방부의 담당 부서의 주의 깊은 정책 결정을 통해 민군 협력 FPS 게임이 군 이미지 개선은 물론 대한민국 FPS 게임을 재평가 할 수 있는 성공의 디딤돌이 되길 기대해 본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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