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과 국내 경제연구소 등 국내외 경제 분석 기관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이 한국 경제에 상당히 큰 부정적 여파를 줄 것이라고 잇따라 보고서를 내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에 무역전쟁이 붙을 경우 한국이 입을 피해가 주요국 중에서 가장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틀만인 22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선언한 데 이어 하루 뒤인 23일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기간 내세웠던 보호무역주의가 본격화되면서 국내외 경제 분석기관들은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아시아 생산에 미칠 영향 가능성’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 규모의 수입 규제 조치를 취하면 한국은 GDP 대비 0.3%의 직접적 생산 감소와 0.4%의 간접적 생산 감소 등 총 GDP 대비 0.7% 규모의 생산 감소가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2015년 GDP가 1558조 5916억 원임을 감안하면 피해액이 10조 9101억 원에 달한다.
경제에 가해지는 타격은 트럼프 대통령이 고관세 부과 대상으로 꼽은 중국에 비해 큰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GDP 대비 1%의 수입 규제 조치 이행 시 중국의 생산 감소는 GDP의 0.6% 정도가 될 것으로 골드만삭스는 내다봤다.
한국 산업 중에서는 의류와 자동차 전자제품 등이 미국 보호무역조치에 따른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됐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이 자동차 수입을 1000달러 정도 줄일 경우 한국 국내 자동차 업계는 890달러의 생산 감소 피해를 입게 된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철강과 전자 기계 등 자동차 생산과 연관된 다른 산업의 생산도 840달러가 줄면서 총 피해액은 1730달러에 이를 것을 내다봤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고관세 부과에 대한 보복에 나설 경우 한국 경제는 더욱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이 미 무역장벽 강화에 반발해 역시 GDP 대비 1% 규모의 수입 제한에 들어가면 한국의 생산은 GDP 대비 1.1% 감소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중국과 경제 관계가 밀접한 대만(1.8%) 다음으로 높은 피해규모다. 한국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되는 셈이다.
씨티그룹도 ‘트럼프의 무역·관세 정책-아시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국경세 조정(수입품 관세부과·수출품 보조금 지급)과 중국을 겨냥한 무역 장벽 강화 조치는 한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역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올해 국내 기업의 가장 큰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경제연구원 ‘2017년 기업 경영환경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100개 기업 대상으로 2017년 대외 불안 요인을 조사(복수응답)한 결과, 기업의 28.8%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다. 지난해 최고 위험요인으로 꼽혔던 ‘중국 경기부진’은 올해 응답률이 17.5%에 그치면서 ‘미국 금리 정상화(23.8%)’에 이어 3번째로 밀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불똥이 뛰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는 이르면 내년 미국산 셰일가스 100만 톤을 수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가 미국 일자리를 빼앗는 나쁜 협정이라며 재협상 의사를 밝혀왔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233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겨냥한 조치를 취하기 전에 미국산 셰일가스를 수입해 이러한 무역흑자 폭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2018년에 100만 톤 규모의 브루나이 산 천연가스 수입 계약이 끝난다.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이 수입선을 미국으로 돌리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 결정을 해놓으면 향후 한미 FTA 재협상 시 미국 측 압박 강도가 줄어들 수 있고, 또 국제 원유 시장에서 협상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우리에게 나쁘지 않은 수”라고 말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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