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대통령) 측에서 그렇게 좋아하시는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안 되는 겁니다.”
어제(23일) 탄핵심판 8차 변론이 진행된 헌법재판소. 강일원 재판관의 목소리에서는 답답함이 가득했다. 박 대통령이 증거 채택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자 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단에게 면박을 준 것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어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30명이 넘는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했다. 또 다시 ‘지연전략’을 꺼내든 셈인데 법조계 내에서는 “이미 결론이 나온 듯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박 대통령 측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소추 사유 전반과 관련이 있고, 우병우 전 청와대 수석은 롯데 수사 의혹과 관련이 있다며 둘을 포함, 모두 39명의 증인 채택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증인신청 취지를 검토해 증인 채택 여부는 다음 기일인 25일 판단하기로 했다. 이를 놓고 박 대통령 측이 무더기 증인 신청으로 변론기일 횟수를 늘려 탄핵심판 심리 속도를 늦추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헌재의 선고가 늦어질수록 박 대통령으로서는 헌법상 불소추 특권을 오래 유지할 수 있어서 유리한 상황을 끌고 갈 수 있지 않느냐”며 “부르려는 증인들 역시 이번 국정농단 사건에서 다 처벌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서 박 대통령에게 불리할 증언을 할 사람들은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시간을 끌면서, 유리한 주장만 할 사람들을 선택했다는 것.
하지만 헌법 전문가들은 재판부가 대통령 측 증인을 모두 채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미 참고인 진술조서 등 채택된 서증으로 불필요한 신문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 실제 재판부는 대통령 측에 “증인 신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만일 헌재가 추가 증인 채택을 소규모로 마무리할 경우 설 연휴 이후인 2월 초중반까지 두세 차례 기일을 더 열고 변론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를 살펴보면, 헌재는 당시 변론을 끝내고 2주간 평결과 결정문 작성을 거쳐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비춰볼 때 박 대통령 탄핵 심판도 2주가량 평의와 결정문 작성 시간을 가진 뒤 2월 말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헌법재판 흐름에 밝은 법조인은 “정말 늦어도 3월 초에는 결론을 낸다는 게 헌재의 내부 분위기라고 들었다”며 “임기가 1월 말 끝나는 박한철 소장이나, 3월에 끝나는 이정미 재판관 등은 첫 평의에만 참석해도 결정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지 않느냐. 어떤 결정이든 헌재의 결정에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평의를 최대한 빨리 열고 결론을 빠르게 내는 분위기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일 헌재가 2월 중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릴 경우 박 대통령의 신병이 특검에 확보되는 그림이 펼쳐질 수 있다. 특검은 공언한 대로 2월 초 박 대통령을 대면 조사한 뒤 2월 말 활동 기간 종료 전까지 박 대통령에 대해서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까지 청구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이에 대해 특검은 “답변할 만한 내용은 아니”라며 헌재의 결정 시점을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헌재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 지원을 지시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김 전 차관은 2015년 1월 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정유라 같은 선수들을 위해 영재프로그램을 잘 만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특히 김 전 차관은 당시 박 대통령이 “정유라에 대해 정치권에서 ‘공주 승마’라는 얘기가 나온다”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인데 부정적인 얘기가 나와 안타깝다”고 언급했다. “정유라 같이 끼가 있고,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선수들을 위해 영재프로그램 같은 것을 잘 만들라”고까지 지시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김 전 차관은 대통령 면담 전 이미 정 씨가 최순실·정윤회의 딸인 사실을 알고 있던 상황. 김 전 차관은 “대통령이 정유라를 직접 언급해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고 헌재에서 당시 심정을 토로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 재판관들의 발언과 태도 등을 볼 때 이미 결론이 나온 것 같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헌재 심리를 지켜본 법조계 관계자는 “결국 지금 헌재 분위기는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기운 듯하다”며 “결과가 뒤집히기보다는 몇 대 몇으로 결과를 나오는지를 점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남윤하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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