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봉한 영화 ‘조이’는 걸레질을 좀 더 쉽고 편리하게 해 주는 아이디어 상품 ‘미라클 몹’을 발명한 싱글맘 조이 망가노의 성공 신화를 다뤘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매우 흡사한 성공 신화를 가진 주부가 있다. 바로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 대표다. 한 대표가 처음 개발한 것이 청소용품이라는 점과 TV홈쇼핑에 대박이 났다는 점 그리고 아이디어 하나로 회사를 일군 점이 완벽히 일치한다.
그런데 결말은 좀 달라질 듯하다. 한경희생활과학(현 미래사이언스)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12월 28일 워크아웃 절차에 돌입했다.
한때는 연 매출 1000억 원을 기록하며 여성벤처 신화를 써내려 간 한경희생활과학.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결정적 장면을 되짚어봤다.
# 2014년: 가정용 탄산수 사업만 안했더라면…
자금난을 겪은 표면적 이유는 투자 실패다. 미국 탄산수 제조 기업인 스파클링 드링크 시스템이노베이션(SDS)에 약 130억 원을 투자했다가 한푼도 못 건졌다. 무리한 미국 사업 진출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였다.
SDS는 가정용 탄산수 제조기 업체다. 캡슐커피 머신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물과 탄산을 주입하는 교체용 카트리지 그리고 맛과 향을 내는 ‘플레버’를 넣어 다양한 맛의 탄산수를 제조할 수 있다.
탄산수 사업이 최초로 거론됐을 때 사내 반응은 별로 좋지 못했다. 시장성은 둘째치고서라도 소비자 입장에서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탄산 카트리지와 플레버 구입비용보다 시중에서 파는 각종 탄산음료 가격이 더 저렴했다. 물론 직접 만드는 과정을 통해 건강한 마실거리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애당초 탄산 자체가 건강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렸다.
# 2007년: 미국 진출만 안했더라면…
그럼에도 한경희 대표가 가정용 탄산수 제조기 사업을 밀어붙인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 사업 진출에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절박함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경희생활과학은 2007년 미국 법인을 설립한다. 2007년은 기업과 한 대표 모두 정점을 찍은 해였다. 그 이듬해 한 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주목할 만한 여성 기업인 50인에 선정될 정도로 주목받았다.
한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시장 진출을 통해 2013년까지 매출 5000억 원 달성을 자신했다.
그러나 재무제표를 보면 매출은 제자리인 반면 부채는 계속 늘었다. 미국 홈쇼핑은 대부분 투자 개념에 가까운 인포머셜(정보성 광고)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실패했을 때 손해도 막대하다. 즉, 판매가 되든 안 되든 판매자가 방송 시간을 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반품, 환불까지도 모조리 판매자 책임이다.
결국 미국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 도전하기에 만만한 시장이 아니었고, 무리한 해외 진출보다는 내실이 더욱 중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뒤늦게 나왔다. 무엇보다 스팀청소기 성공 이후 이를 뒷받침할만한 후속타가 없었다. 2006년에 선보인 스팀다리미가 그나마 선전했지만, 스팀청소기와 같은 폭발적인 반응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R&D(연구·개발)에 집중해야 할 총알을 미국 진출에 허비한 셈이 됐다.
# 2007~2014년: 무리한 사업 확장만 안했더라면…
미국 사업과는 별도로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다. ‘키친 사이언스’라는 주방용품 브랜드를 만들어 포스코와 손잡고 천연 마그네슘 프라이팬을 선보였지만 실패했다. 인체에 무해한 마그네슘을 쓴 것까지는 좋았는데, 수율이 낮아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것이 요인이었다.
화장품 사업은 아예 ‘한경희 뷰티’라는 별도 법인까지 만들어 야심차게 추진했다. 시작은 괜찮았다. 기술력을 접목한 진동파운데이션은 출시 5개월 만에 1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욕심을 너무 부렸다. 독자 브랜드까지 만들어 기초화장품 시장까지 무리하게 뛰어들었다가 결국 실패하고 사업 철수에 이른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경희생활과학은 식기세척기도 개발했다. 일반적인 워터분사 방식이 아닌 물리적 방식의 신개념 식기세척기다. 부드러운 스펀지 소재의 큰 핫도그와 작은 핫도그 모양의 세척 솔을 모터로 회전시킨 다음, 사용자가 직접 그릇을 갖다 대는 원리다. 한 대표가 직접 낸 아이디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내 반대가 심각해 결국 출시하지 못했다.
한경희 생활과학이 제품 개발에 소홀했다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다양한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분 기술력 확보보다는 일시적인 아이디어나 주부를 타깃으로 하는 사업 확장에만 의존한 것이 문제였다. 기술력이 없다는 건 그만큼 누군가 베끼기도 쉽다는 이야기다. 또 무리한 사업 확장 역시 실패할 확률도 높다.
# 2017년: 워크아웃, 한경희 빼고 간다? 이름만!
워크아웃 결정이 있었던 지난 12월 한경희생활과학은 사명에서 한경희를 뺀다고 밝혔다. 앞으로 한경희 대표의 후광효과에 기대기보다 내실경영에 치중할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그러나 사명과 상관없이 여전히 회사 경영은 한경희 대표가 맡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은 언감생심이지만 회사가 잘나가던 시절에도 한 대표는 기업공개(IPO·상장)에 부정적이거나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퇴사자는 한 대표가 상장으로 발생하는 주주들의 경영간섭을 극도로 경계했다고 전했다.
오너 기업은 상당 부분 오너의 역량에 따라 회사의 명운이 결정된다. 장점도 많고 단점도 많은 구조다. 그간 만들어온 스팀청소기를 비롯한 몇몇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으며 이익을 내고 있다. 물론 많은 시행착오가 실수가 있었지만 핵심 경쟁력까지 잃었다고 보긴 어렵다. 한 대표 역시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약속했다.
한경희 대표는 ‘비즈한국’에 “스팀 기술의 강점을 살린 신제품 개발 및 주방제품 업그레이드를 추진하고 유통망 다각화를 통해 재도약을 해낼 것”이라며 “초심으로 돌아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밝혔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핫클릭]
·
기적의 토스터와 선풍기로 ‘체험을 팝니다’
·
[CES 2017 3대 트렌드#3] 반도체 전성시대
·
[CES 2017 3대 트렌드#2] 가전, ‘말’이 통하는 진화
·
[CES 2017 3대 트렌드#1] IT를 집어삼킨 자동차의 변신
·
CES ‘중국 IT 굴기’에 포위당한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