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전기차 1만 대 시대’다.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올해 국내 출시를 앞두고 성황리에 예약 판매를 완료했다. 이처럼 전기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는 배경에는 자동차 기업과 환경부에서 자신 있게 발표하는 전기차 충전소 인프라 구축 계획이 있다.
‘비즈한국’은 앞서 서울 시청 인근에 있는 공영주차장 7곳에 설치되어 있는 전기차 충전소를 방문하며 여러 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관련기사-서울 도심 전기차 충전소 가보니 ‘보물찾기’가 따로 없네) 그렇다면 직접 전기차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운영하는 전기차 충전소는 그보다 잘 운영되고 있을까?
‘비즈한국’이 서울시 내에 위치한 현대기아차가 운영하는 전기차 충전소 13곳을 모두 직접 방문해 확인해 본 결과 그 실태는 입에 꺼내기가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전기차 판매가 늘기 위해서는 충전 인프라가 확충돼야 하는데, 전기차만 팔고 충전소 구축에는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 이는 전기차 판매와 동시에 충전소 구축에 나서고 있는 BMW, 테슬라와 대비된다.
가장 먼저 금천구에 있는 기아시흥서비스센터를 찾았다. 기아자동차가 운영하는 이 충전소에는 전기차 1대를 충전할 수 있는 급속충전기가 마련되어 있었다. 주차면에 전기차 자리임을 표시하는 도색은 따로 되어 있지 않았지만, 주차금지 표지판 때문인지 일반차량이 주차되어 있지는 않았다.
다음으로는 인근 현대자동차 블루핸즈 성원모터스를 방문했다. 이곳엔 앞서와 달리 완속충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차량 배터리 용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급속충전기가 완전충전까지 15~30분 걸리는 반면 완속충전기는 5시간가량이 소요된다.
시간적인 면에서 굳이 충전소에 갈 이유가 없어서인지 완속충전기가 설치된 충전소는 대체로 관리가 부실했다. 또 완속충전기는 크기가 작고 기기를 둘러싼 보호시설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충전기를 찾기 위해서는 직원에게 문의하는 것이 필수였다. 이곳 충전소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전기차 주차공간에 세워진 회사 차량이었다. 사무실 바로 앞이라 업무 편의를 위해 차를 세워뒀겠지만, 충전을 하러 온 고객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역시나 주차면에 전기차 자리임을 표시하는 도색이 되어있지는 않았다.
다음으로는 구로구에 있는 현대자동차 블루핸즈 대광자동차공업에 갔다. 이곳은 입구 바로 옆에 완속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주차선 자체가 없어 빈 자리에 기기만 가져다 놓은 것처럼 보였다.
전기차 충전소가 얼마나 ‘보여주기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는 네 번째로 찾아간 영등포구의 현대자동차 블루핸즈 롯데칠성음료신협학원 분점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도무지 전기차 충전소가 보이지 않아 지나가는 수리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런 건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충전기는 입구에 놓인 빈 부스와 수리 중인 경찰버스에 가려져 있었다. 역시나 완속 충전기였다. 주차선 자체가 없는 데다 기기를 둘러싸고 사다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철재 등이 어지럽게 놓여있어 매일 출근하는 직원도 충전기의 존재를 모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심지어 주차면에는 주차선조차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다섯 번째로 방문한 기아강서서비스센터의 전기충전소에는 센터 내 공사로 인해 올해 2월 28일까지 이용이 불가하다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해당 자리에 트럭 한 대가 주차되어 있다는 점이 이상했다. 인근에서 공사 중이더라도 충전기와 충전자리가 확보되어 있다면 굳이 이용을 제한할 이유가 없다. 공사가 진행되는 4개월 동안 이곳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는 고객들이 이해할만한 설명이 필요해 보였다.
여섯 번째로 은평구에 있는 현대자동차 블루핸즈 녹번서부점에 갔다. 이곳은 특이하게 주차공간이 아닌 매장 내에 완속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충전기 바로 앞에 차량 한 대가 수리 중이었는데 만약 전기차가 충전 중이라면 수리를 마친 차량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였다. 사실상 영업 중에는 전기차 충전기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직원은 “수리 중일 때는 이용할 수 없다. 어차피 쓰는 사람도 거의 없고 급속이 아니라 집에서 충전할 때와 속도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일곱 번째로 방문한 곳은 성동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동부서비스센터. 이곳에는 현대자동차가 운영하는 다른 충전소와 달리 급속, 완속 충전이 모두 가능한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보호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비교적 찾기가 쉬웠다.
여덟 번째로 찾아간 현대자동차 블루핸즈 장안점의 전기 충전기는 쓰레기통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고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보였다. 황당하게도 주차면에 전기차 충전 자리임을 표시하는 도색 대신 장애인 주차 공간 표시가 되어 있었다. 본래 있던 주차공간에 충전기만 가져다 놓은 채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블루핸즈 장안점의 한 직원은 “사용 못 한다고 보면 된다. 어차피 매장문 닫을 때는 야외 주차공간까지 다 폐쇄한다”고 말했다. 퇴근 후 차를 충전하고자 하는 고객들은 이용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다.
아홉 번째로 찾은 도봉구의 현대자동차 북부서비스센터도 동부서비스센터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곳에는 주차공간에 ‘전기차 충전소’라 표지판도 세워져 있어 일반차가 주차할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비교적 우수한 관리 상태를 보인 북부서비스센터와 동부서비스센터는 자사가 선정한 우수서비스센터 명단에도 올라있었다.
열 번째로 방문한 전기차 충전소는 인근 기아도봉서비스센터. 충전시설 상태는 비교적 양호했으나 주차 자리에는 승용차 한 대가 서 있다가 잠시 뒤 자리를 떠났다. 전기차 충전소 자체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만큼 도색, 표지판 등을 통해 일반차는 주차할 수 없는 공간임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어 보였다.
열한 번째로는 강동구에 있는 현대자동차 블루핸즈 강일현대서비스에 방문했다. 완속 충전기라 기계 자체도 작은 데다 실내 주차장 구석에 있어 찾기가 어려웠다. 이곳에도 충전하고 있지 않은 흰색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열두 번째로 찾아간 강동구의 현대자동차 성내사옥에는 완속·급속 충전이 모두 가능한 전기차 충전기가 있었지만 역시나 충전하고 있지 않은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서초구에 있는 현대강남자동차서비스를 찾았다. 위로 쌓아 놓은 폐타이어 옆에 불투명한 천막을 충전기를 씌어놔 직원에게 묻기 전까진 도무지 충전기를 찾을 수 없었다. 주차선조차 표시되어 있지 않은 전기차 충전공간엔 심지어 일반 경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지나가는 직원에게 문의하자 그는 “고객센터에 물어보면 조처를 해줄 것”이라고 답했다. 충전 한 번 하기 위해 고객들은 고객센터 문의부터 충전기 정비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상 서울시 내에 위치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운영하는 전기충전소 13곳을 돌아본 결과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전기차 충전소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실제 전기차를 구매한 고객이 전기를 충전하러 왔다면 분통을 터뜨리고 발길을 돌려야 했을 것이다. 개별 충전소의 실태도 문제지만, 충전소마다 거의 한 대씩밖에 없는 충전기가 사용 중인지, 사용 가능한지 알려주는 정보 시스템이 부재한 것도 문제다. 기껏 충전하러 왔는데, 다른 전기차가 충전 중이라면 낭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차 전기차 충전소를 관리하는 담당 서비스센터 관계자 대다수는 관리 의지가 부족해 보였다. 기자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유를 물어보자, ‘여기서 뭐 하러 충전하느냐?’, ‘영업 때문에 충전하면 안 된다’며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직원들의 충전소가 서비스센터에 위치하다 보니 자동차 수리로 내부가 혼잡한 경우 충전을 하러 온 고객들은 비싼 전기차를 구매하고도 눈치를 보며 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현대기아차는 2016년 판매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소비자들 사이에 늘어나는 추세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자동차 제조업체라고 하기엔 그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최근 많이 보이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친환경, 자율주행 등 첨단기술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전기차의 생산부터 판매까지 담당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현대기아차는 판매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충전소 인프라 구축 및 관리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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