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구가 실질적으로 안고 있는 부채 부담이 아시아 주요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 금리가 상승할 경우 한국 경제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가 제기되고 있다.
영국 민간 경제연구기관인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오늘(17일) ‘아시아: 아시아·태평양 주요 도시 주택 가격 평가’ 제목의 보고서에서 2016년 기준으로 한국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170.0%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우리나라 가구가 소득 중 세금이나 공과금 등을 제외하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을 100만 원으로 잡을 경우, 갚아야 할 부채는 170만 원이라는 의미다. 그만큼 실제로 안고 있는 부채 부담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채비율은 중국이나 일본, 말레이시아, 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일본의 경우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141.4%였고, 중국은 71.2%에 그쳤다. 말레이시아는 156.1%, 태국은 141.2%였다.
특히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한국의 부채비율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2007년 미국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미국은 집값 고공행진에 빚을 내서 집을 사려는 이들이 은행에 몰리면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가 급격하게 늘었다. 집값 상승세가 멈추자 서브프라임모기지가 붕괴하기 시작했고, 이는 다시 집값 하락과 금융 위기 확대라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이러한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미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33.6이었다.
미국은 금융위기 해소를 위한 각종 정책을 펼치면서 부채비율이 2011년 115.6%, 2016년에 105.2%로 떨어졌다. 반면 한국의 경우 부채비율이 2007년에 133.5%에서 2011년 151.9%, 2016년 170.0%로 상승일로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저금리 등) 양적 완화 정책이 아시아 지역의 주택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며 “이로 인해 주택 담보 대출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한국 등의 부채비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보다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앞으로 주택 가격은 하락세로 접어들고, 이자는 상승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향후 아시아에서 주택 시장에 대한 하향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대출 상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 정부도 최근 주택 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대책을 쏟아냈으며 이후 주택 가격은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씨티그룹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부동산 관련 규제 강화와 대출금리 인상, 공급 물량 증가로 올해 한국 주택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경기 부진까지 예상되고 있어 자칫 집값보다 빚이 더 많은 ‘깡통주택’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특히 한국은 고성장 시대가 끝났고, 인구도 감소세라는 점에서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아시아 저개발 국가의 많은 도시들은 성장률 개선과 인구 증가 등이 주택 가격을 떠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하지만 한국의 서울에는 이러한 요인이 없다”고 밝혔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가계부채가 위기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끊임없이 나왔음에도 박근혜 정부가 부채를 이용해 경제를 부양하는 손쉬운 정책을 펼치느라 가계부채 문제에 눈을 감아왔다”며 “구조조정이나 미래 먹거리 산업은 만들지 않고 부동산에 의존해 부채가 늘리다 보니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되어 버렸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세 차례 올릴 것이라고 말한 만큼 외국인 자금 유출 문제마저도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제는 가계 부채 때문에 한국은행은 연준 기준금리 결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능력마저 잃어버렸다”고 덧붙였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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