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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일기] 취업 준비도 아프면 올 스톱

잠깐 쉬어가야 또 다시 뛸 수 있는 법

2017.01.17(Tue) 10:00:58

독감에 걸렸다. 죽을 것 같다. 열이 펄펄 나고 목이 너무 건조하고 아프다. 그냥 감기인 줄 알고 약국에서 약을 지어다 먹었더니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 다시 아프다. 이러다가 매일 가는 학원을 하루 빼먹게 생겼다. 선생님이 내일 되게 중요한 수업 한다고 신신당부했는데. 아프면 서럽다. 

 

5일치 약을 처방 받았다. 알록달록 약들이 참 많기도 하다. 사진=이상은 제공


초기에 아플 기미가 보일 때는 괜히 꾀병 부리는 것 같고 나약해 보여서 씩씩하게 돌아다니다가 결국 진짜 아픈 꼴이 난다. 그러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게 너무 억울하다. 시험 성적이 나와도 나 아픈 걸 누가 알겠는가. 중요한 시기에 아프다는 것은 그래서 괴롭고 더 고통이다. 

 

지난해 4월쯤 급성 편도염으로 아팠는데, 이번 겨울은 따뜻해서 잘 지나가나 했더니, 결국 독감에 걸려버렸다. 언제, 어디서나 아픈 것은 외롭고 쓸쓸하다. 너무 싫다, 이 기운 없는 상태가. 꼬박 삼 일을 앓았다, 라고 쓰고 싶었지만 닷새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멀쩡하지 않다. 

 

주사까지 맞았는데 왜 차도가 없을까 병원에서 체온을 재보니 37.4도. 나는 그 생경한 숫자를 듣고 꽤나 놀랐는데, 간호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열이라 상관없다고 했다. 나는 36.5도에서 1도만 올라도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자꾸 열이 나는 것 같다. 손바닥으로 연신 이마를 짚어봐도 뜨뜻미지근한 정도인데 어디선가 열이 올라오는 기분이다. 선배, 나 열나는 거 같아, 라고 할 선배가 필요한 걸까.

 

사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픈 것은 아니다. 1월 신년회를 한다는 핑계로 일주일 내내 사람들과 저녁 약속을 잡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급히 감은 머리가 마르지 않은 채 후다닥 뛰어다녀서 그렇다. 하지만 혼자 취준을 하다보면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라는 이유로 날 달랠 겸 친구들을 만난 것이다.

 

술은 잘못이 없다. 술을 마신 내 잘못이지! 사진=이상은 제공


하루 종일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는 게 어쩔 때는 너무 우울해서 일부러 여러 사람과의 약속으로 빽빽하게 스케줄을 채울 때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은 확실하다.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부차적인 것들은 자제하고 과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기운 내려고 사람들과 마신 술이 오히려 독이 되다니, 크게 앓고 나니 당분간은 술을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멀리하고 싶다(거짓말).

 

하지만 한 번 앓고 나면 좋은 점들도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굳이 아프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직접적인 고통은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던 날들도 그 순간에는 지옥 같지만, 지나가면 그냥 앓고 끝날 ‘감기’ 같은 것이다. 

 

아픔이 금방 지나간다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나이가 들면), 힘든 일에도 좀 더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른다.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감기는 계속될 것이고, 그때마다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할 필요가 없다. 아플 때 즐겨 마시는 차라든가, 먹으면 탈나는 음식 등을 알고 나면 조금 더 쉽게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질병관리’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인생에 대한 또 하나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바로, 내가 손 내밀어야 누군가 잡아준다는 것. 혼자 끙끙 앓고 나니 이대로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 내가 먼저 연락해 나 아프다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내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처음에는 굳이 아픈 티를 내야 하나, 하다가도 점점 증상이 심각해지면 누구 하나라도 옆에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어쩌면 빨리 낫지 않게 만드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물론 누구나 아프다. 한 번쯤 다 아프지만, 아픈 것을 숨기고, 참고 무조건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어른스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프면 쉬고, 너무 아프면 병원을 가고, 아파서 죽을 것 같으면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것. 내가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거라는 이야기는 참 슬프지만, 현실이다. 이왕 아픈 거 혼자 애처롭게 잠들지 않고, 아프다고 칭얼거리고 친구들의 위로도 받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려고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유대관계를 맺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아니겠는가.

 

겨울철에는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귤이나 까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이상은 제공


돌아가는 사이클 같은 취준 일정에서 아프다는 건 어느 한 곳의 나사가 잠시 빠진 것과 같다. 잠깐 쉬어가야 또 다시 뛸 수 있는 법. 하지만 이런 핑계로 잠시 생긴 휴식시간이 너무나 달콤하면서 불안하다. 이상하게 방학은, 여유롭게 보내는 게 잘못된 행동으로 느껴진다. 두 달 빡빡하게 무언가를 얻고, 따고, 이루어내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감. 

 

학기 중에는 수업과 시험에 치여 더 방탕하게 놀아도 바쁘니까 괜찮았던 걸까. 요즘에는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줄이고 혼자 있는 날들이 많은데도 너무 노는 기분이다. 왜 이렇게 아무도 벌주지 않는 규칙 안에서 스스로 자책하고 있지? 

 

아, 아직 더 놀고 싶은데. 왠지 놀다가 아팠으면 덜 아팠을 거 같고, 금방 나을 거 같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빨리 나았음 좋겠다. 아프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다. 그렇다고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말도 못하겠다. 아직은 나를 더 혹사시켜도 되는 나이인 것 같으니!​ 

 

※필자는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 대학생으로, 거둬갈 기업 관계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이상은 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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