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비즈

강력한 컨트롤타워 부재가 ‘이재용 영장’ 불렀나

그룹 수뇌부 변화로 따져보니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터 ‘강력한 비서실’ 명맥 끊겨

2017.01.17(Tue) 09:40:52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위한 특검에 피의자로 출두한 이재용 부회장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지난 12월 30일 마감된 미국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10위 안에 든 기업들 주 5개가 정보기술(IT) 기업들이었다. 애플(1위), 구글의 지주사인 알파벳(2위), 마이크로소프트(3위), 아마존(6위), 페이스북(7위)이 그 주인공들이다. 

 

나머지 5개 회사를 보더라도 워런 버핏의 자산운용사 버크셔 헤서웨이(4위), 엑손모빌(5위), 제네럴일렉트릭(8위), 존슨앤존슨(9위), 웰스파고(10위) 등 금융사가 2개다. 제네럴일렉트릭(GE)은 하드웨어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아들이 ‘GE에 취업했다’고 하자 아버지가 공구를 선물로 주는 모습을 비꼰 최근 GE의 광고를 보면 소프트웨어 회사로의 변신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또한 최근 2년 사이 급격한 변신을 추구하고 있다.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자본축적 산업에서 무형의 가치를 만드는 지식산업으로의 변신이다. 그 중심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있다. 

 

# 신기술은 개발하지 않고 인수하는 데 주력

 

최근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 기업 혁신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클로즈드 이노베이션(closed innovation)’은 신기술이 기업 내부에서 철저한 보안이 유지된 상태로 개발되는 개념이다. 반면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에 필요한 신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수혈하는 것이다.

 

구글은 인공지능을 자체 개발하지 않고 딥마인드를 인수했다.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 않고 기업 인수 시장에서 스타트업을 사는 것이 최근의 신기술 트렌드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이미 미국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은 대세가 됐다. 이세돌과 승부를 겨룬 인공지능 ‘알파고’의 개발사는 알파고의 개발자 데미스 허사비스가 창업한 딥마인드다. 구글은 인공지능 기술이 필요하자 자체적으로 개발하지 않고 딥마인드를 인수했다.

 

삼성 또한 지난해 9월 미국 인공지능 플랫폼 개발사인 비브랩스를 인수했다. 비브랩스는 애플의 인공지능 서비스인 시리(Siri)의 개발자들이 창업한 회사다. 삼성이 인공지능 기술을 자체 개발하려면 인공지능 전문가를 채용하고 설비를 마련해 오랜 시간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성공 가능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대신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기업을 인수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개발 과정에서의 실패 부담을 떠안지 않아도 된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대세가 된 데는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째로 인공지능을 개발할 만큼 발군의 능력을 지닌 인재들은 이제 마이크로소프트(MS), 휴렛패커드, 삼성 같은 대기업에 취업하지 않고 창업을 한다.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은 수백억, 수천억 원에 매각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굳이 대기업 배를 불리는 데 쓰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시장에서의 기술 개발 경쟁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개발해서는 트렌드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대세인가 싶더니 어느새 인공지능이 뜨고, 또 로봇 기술이 신기술로 관심을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시대는 클로즈드 이노베이션의 시대였다. 진대제, 황창규 같은 이른바 ‘천재’ 기술자를 영입해 경쟁사와 기술격차를 벌이는 것이 시장의 성패를 갈랐다. 그러나 지금은 격차가 성패를 가르지 않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내놓는 것이 시장의 성패를 가른다. 이재용 부회장의 시대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시대인 것이다. 

 

이 부회장은 IT 분야에서 뼈아픈 기억이 있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IT 붐이 불었을 때 자신이 맡은 ‘e삼성’ 등 신기술 분야에서 실패한 것이 낙인처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e삼성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미국의 IT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삼성전자에 변화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 부친 쓰러진 후 미국 스타트업 대거 인수 나서

 

삼성전자는 2014년 8월 미국 사물인터넷 플랫폼 기업 스마트싱스를 시작으로 모바일 결제 솔루션 루프페이(2015년 2월),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인 조이언트(2016년 6월), 캐나다 디지털광고 플랫폼 스타트업인 애드기어(2016년 6월), 미국 고급 빌트인 가전업체인 데이코(21016년 8월), 인공지능 플랫폼 개발기업 비브랩스(2016년 9월)를 연이어 인수했다. 루프페이가 보유한 모바일 결제 솔루션은 곧바로 삼성페이로 상용화됐다. 지난해 말에는 미국 자동차 전장기업 하만 인수를 발표했다. 필요한 기술이 있으면 기업 인수 시장에서 사면 되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필요한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대신 미국 IT 기업들을 인수하는 데 주력했다. 사진은 삼성전자가 2016년 8월 인수한 미국 고급 빌트인 가전업체인 빌트인.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2014년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탈레스, 삼성테크윈을 한화그룹에 매각한 것도 이런 흐름 중의 하나다. 화학과 방산 사업은 삼성그룹이 할 만한 사업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들 회사를 매각한 자금은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자금으로 활용됐다. 

 

이런 산업구조 개편은 이재용 체제를 만들어 가는 데도 안성맞춤이었다. 이른바 이건희 회장의 사람들은 ‘올드 인더스트리’를 이끌던 사람들이다. 전통산업 매각과 동시에 묵은 피를 내보내고 신기술을 도입하면서 젊은 피를 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량생산을 직접 하지 않는 애플, 구글, MS와 달리 삼성전자는 휴대폰, 가전, 반도체를 직접생산한다. 따라서 대량생산의 경험과 노하우를 지닌 전문경영인을 필요로 한다. 즉 이재용 부회장은 실리콘 밸리식 신경영을 추구하면서도 전통 제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두 가지 책임을 맡고 있다. 미국 벤처기업 M&A는 자신이 주도하고 휴대폰사업은 신종균 부회장, 가전사업은 윤부근 사장, 반도체사업은 권오현 부회장이 맡는 체제다. 

 

변화무쌍하게 돌아가는 IT 업계는 경영인으로서는 매력적인 분야다. 돈과 인력이 있는 삼성으로서는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곳이다. 반면 ‘관리’가 기본인 전통 제조업은 지루하고 재미없어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 부회장은 재미난 것은 자신이 하고, 귀찮은 것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셈이다.

 

# 강력한 비서실 명맥 끊긴 것이 혼란의 원인?

 

이런 삼성의 변화 과정에서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비서실 기능의 퇴화다. 과거 삼성은 ‘관리의 삼성’으로 불렸다. 효율성을 최고로 여기는 제조업에서는 관리가 중요했고, 이는 강력한 컨트롤 타워를 필요로 했다. 1959년 고 이병철 전 회장이 처음 설치한 비서실은 1970년 확대 개편되며 1998년 구조조정본부로 대체될 때까지 막강한 권한을 유지했다. 이병철 회장을 보필한 송세창 실장(1970~1977년), 소병해 실장(1978~1990년)은 그룹의 실질적 2인자 역할을 하면서 계열사 사장의 명줄을 쥐락펴락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87년 이병철 회장 유고 후 그룹 회장에 오른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 3년상을 치른 셈이 되는1990년 소병해 실장을 삼성생명 부회장으로 전출시키면서 비서실장에서 물러나게 했다. 3년 뒤인 1993년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하게 된다. 

 

이건희 회장은 1997년 이학수 전 부회장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데 이어 1998년 출범한 구조조정본부 본부장을 맡기게 된다. 구조조정본부는 2006년 전략기획실로 축소됐는데, 이때도 이학수 전 부회장이 실장을 맡았다. 전략기획실은 2008년 7월 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한 특검수사를 계기로 해체에 이르게 되고, 이학수 부회장은 미래전략실장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삼성은 이후 컨트롤타워 조직 없이 계열사 자율경영 체제로 들어갔으나, 애플 아이폰으로 시작된 스마트폰 혁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보이기도 했다. 2008년 비자금 사건으로 현역에서 물러난 이건희 회장은 2010년 복귀하면서 미래전략실을 신설하게 된다. 초대 미래전략실장은 역시 비서실 출신의 김순택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컨트롤타워의 실질적 책임자는 비서실에서 잔뼈가 굵은 임원이 맡았다.

 

# 최지성 부회장은 콘트롤 타워 아닌 야전 사령관 출신

 

2012년 최지성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을 맡으면서 비서실의 전통은 맥이 끊어지게 된다. 최지성 부회장은 입사 이래 반도체사업부에서 일했고, 1998년부터는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일했다. 컨트롤타워보다는 현장 지휘에 어울리는 야전 사령관이었다. 이후 삼성은 계열사별 자율경영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리게 된다. 이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2012년 비서실 출신이 아닌 사업부 출신의 최지성 부회장이 삼성 미래전략실장을 맡으면서 삼성의 강력한 비서실 명맥은 끊어지게 된다. 사진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위한 특검에 출두하는 최지성 부회장. 사진=고성준 기자


이재용 체제의 약점은 과거 강력한 비서실 시절 존재했던 기억력과 분석력이 뛰어난 ‘2인자’가 없다는 점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구하는데 강력한 미래전략실장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소속된 곳은 미국이 아니고 대한민국이다. 정치와 경영이 비교적 분리된 미국과 달리 한국은 정권과 기업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커 온 곳이다. 경험 많은 노련한 컨트롤타워의 수장 없이 이재용 부회장 홀로 정치권을 상대하기에는 벅찬 곳이다. 

 

강력한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이재용 부회장의 위기를 불러온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사진은 헌법재판소에 증인으로 나선 최순실 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그룹 승계 작업을 빨리 완수해야 하는 짐도 져야 했다. 비서실에서의 경험과 노련함을 갖춘 미래전략실장의 부재가 승계 작업에 치밀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도 가능하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당시 치밀한 사전 정지작업 없이 급하게 진행하다 보니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격을 예상치 못하게 받았고 국민연금에 기대야 하는 상황에까지 내몰린 것이 특검 수사에까지 이른 원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강력한 리더십이 없다는 점은 제품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현재 삼성의 경영진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사내정치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직원들이 제품 개발과 연구에 매진해야 할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임원들의 연임을 위한 일에 쏟고 있다는 전언도 있다. ‘갤럭시 노트7’의 제품 결함도 이런 결과로 나온 것 아니겠냐는 내부의 목소리가 크다. 한 삼성전자 직원은 “직원들이 제품 개발 및 테스트에 매진하지 못하고 임원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데 업무의 절반을 할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력한 콘트롤 타워의 부재로 임원들이 각자 생존을 위해  사내정치에 내몰리게 되면서 직원들이 연구개발에 매진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라는 얘기가 사내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상관없이 삼성은 갤럭시 시리즈 스마트폰을 꾸준히 팔 것이고, 다른 사업 부문들도 각자 역할을 다할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공언했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미래전략실의 도움 없이 앞으로 남은 승계작업, 해외 기업의 M&A를 통한 삼성의 체질 변화, 갤럭시 노트7의 실수를 만회하는 신제품 개발 등 많은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능력 검증은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 

우종국 기자

xyz@bizhankook.com

[핫클릭]

· 이재용 영장 청구 후폭풍…승계 시나리오 다시 쓰나
· 이재용 잡아야 박근혜도 잡기에…‘독박 작전’
· [특검은 지금] 이재용 영장, ‘양날의 검’
· 구속 갈림길 이재용 ‘위증죄’가 결정타 되나
· ‘안 불면 독박’ 특검 소환 최지성·장충기의 선택은?
· 특검 칼날 앞 이재용과 삼성, 벌써 ‘희생양’ 찾나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