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년 전 오늘, 2014년 1월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현대건설은 “당사의 주요종속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엠코와의 합병을 검토 중이나,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공시했다.
현대건설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2014년 4월 현대자동차그룹 소속 건설회사인 현대엠코를 흡수합병했다. 당시 현대건설은 “플랜트 전문업체인 현대엔지니어링과 건축·주택 건설 전문업체인 현대엠코는 주력 사업이 달라 합병 시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합병 후 현대건설은 합병법인의 지분 38.6%를 가지며 최대 주주가, 현대엠코의 최대주주였던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2대 주주가 되었다. 현대엠코의 지분 24.96%를 소유한 현대글로비스 역시 정 부회장과 같은 지분을 갖게 되었다.
합병을 두고 재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짜놓은 ‘경영승계 시나리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얘기인즉슨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엠코의 지분을 가진 정 부회장이 합병을 통해 현대엠코의 가치를 높이고 이렇게 얻은 이익을 핵심 순환출자 고리인 현대모비스 지분 확대에 사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발생한 수익을 경영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왔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합병 직후인 2014년, 건설사 순위 척도인 시공능력평가에서 국내 10위권에 진입에 성공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엠코를 흡수하며 시작한 주택·건축 사업이 특히 큰 빛을 발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4년 처음 분양한 서울 서초구 힐스테이트를 시작으로 서울 마곡지구, 세종시, 경기 광교신도시 등에서 완판 행진을 이어나갔다.
‘그 공시’ 후 2년이 지났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에서 7위로 엔지니어링 업체 중 유일하게 2단계 약진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해외 수주 실적악화로 극도로 침체된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토목, 건설, 플랜트 등 다양한 사업구조를 갖춘 부분이 큰 강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순항에도 불구하고 정의선 부회장의 승계가 녹록하지만은 않다고 예측한다. 정 부회장은 합병 당시 나왔던 예측과는 달리 핵심 순환출자 고리인 현대모비스의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아버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 6.96%와 현대차 지분 5.17%를 이용한 순환출자 지배구조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과 차이가 있다.
정 부회장은 현재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현대차, 기아차, 현대글로비스, 이노션, 서림개발,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오토에버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일단 몸집을 키워서 팔고자 하는 현대엔지니어링과 주력 계열사인 현대차, 기아차를 제외하면 급하게 현금화할 수 있는 계열사는 현대글로비스, 이노션, 현대오토에버 정도다. 이미 이노션 등 일부 계열사에 대한 매각이 진행되었지만, 승계자금을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으로 알려졌다.
경영능력 검증도 정 부회장에게 남은 무거운 과제다. 정 부회장은 기아차 사장으로 있을 당시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K7’과 경차 ‘모닝’ 등을 성공적으로 론칭시키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러나 형제·내부 경쟁이 없었다는 점, 건재한 정몽구 회장의 그늘에 여전히 가려져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당장 통과해야 할 핵심 관문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해외공략이다. 재작년에 론칭한 제네시스는 국내에서는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미국에서의 판매량은 목표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올해부터 상품성을 개선한 G80과 신모델 G70을 선보이며 미국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 성공적일 경우 경영능력 입증은 물론 계획 중인 유럽시장 공략에도 큰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현대차는 2020년까지 제네시스 라인업을 총 6종으로 확대할 계획으로, 이미 상품팀 구성이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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