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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소송을 이렇게 할 수 있는가

내가 탄핵심판 대통령 측 소송대리인이라면

2017.01.13(Fri) 16:33:20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4차 변론이 진행되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나는 이 글에서 지금 대통령 측 대리인들에게 왜 이런 사건을 맡았느냐고 말하지 않겠다. 나는 그저 법률가로서 대리인이 소송을 이렇게 수행하면 되겠느냐고 약간의 항의, 약간의 질책을 하고자 한다.

현재 탄핵사유별로 탄핵심판이 심리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과 관련된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심리 중이다. 그런데 대통령 측 증인들 상당수는 도망 다니거나 심판정에 나와도 대부분 모른다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하면 대통령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혹시 이게 대통령 측 소송대리인의 소송전략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길 바라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이 이렇게 오산하는 이유는, 탄핵심판이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니 국회 측이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서, 모름지기 재판부에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대통령의 직무태만을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현재 대통령의 탄핵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형사상 범죄행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범죄행위와 관련 없는 헌법 위반(생명권보호의무 위반)이다. 전자는 범죄행위 성립여부에 의해 탄핵사유 여부가 결정되니 당연히 형사소송법이 준용될 분야지만, 후자는 법리상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민사소송법이 준용되어야 한다. 

헌재는 탄핵사유의 전제사실인 대통령의 직무태만에 대해 민사소송법적 관점에서 사실여부를 판단하고, 그것이 헌법 위반인지를 판단하면 된다. 이 부분은 헌재가 직무유기 형사책임 여부를 판단하는 게 아니다.

즉, 국회 측은 세월호 7시간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입증책임이 있지만 그 입증의 정도는 형사소송에서 필요한 입증정도(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가 아니라, 민사소송에서 필요한 입증정도(보통 사람 입장에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을 정도)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 측 증인들 상당수가 도망 다니거나 심판정에 나와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대통령 측 소송대리인의 전략이라면 큰 오산이다. 지난 10일 3차 공개 변론에 나온 대통령 측 대리인단. 사진=고성준 기자


자, 이렇게 볼 때 현재 상황을 점검해 보자. 국회 측이 입증한 것과 대통령 측이 주장하는 것을 종합할 때, 사실관계를 아무리 보수적으로 본다고 해도 다음 사실이 확인되었다.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청와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있었다.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세월호 관련 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을 인지한 것은 오전 10시다.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상황을 TV를 통해 보지 않았다. 단 한 번 보았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보았다.
―안보실장은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부하직원으로 하여금 집무실과 관저에 서면보고한 적이 있다.
―대통령은 오전과 오후 두 번 머리 손질을 했다.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세월호가 아닌 다른 보고서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대통령은 중대본에 나타나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어려운가요?’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지난 3년간 세월호 7시간 문제에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부인만 했을 뿐, 한 번도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그 이상의 사실관계도 말할 수 있지만 여기까지만 말하자. 이 정도라면 대통령의 직무태만에 대해 국회 측이 완전히 입증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일응(일단) 대통령으로서 제대로 직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은 입증했다고 할 수 있다. 평균적인 우리 국민은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참담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대통령이 관저에 있으면서 태연히 다른 일 하고, 두 번이나 머리 손질하고, 밥을 먹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든가?”

상황이 이러면, 민사소송법적으론 국회 측이 세월호 7시간과 관련된 직무태만을 더 이상 주장 입증할 필요가 없고, 대통령 측으로 입증책임이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공은 대통령 측에 넘어갔다. 대통령 소송대리인은 국회 측에 입증부족을 말할 것이 아니라, 당시 대통령이 적절한 직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그에 맞는 적극적 입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증인을 대고, 당시 통화자료를 내고, 대통령의 구체적 지시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증거로 제출해야 한다(입증책임이 전환되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 상황은 대통령 측에서 적극적으로 반대사실을 제시하여 직무태만하지 않았음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지난 12일 4차 변론에 증인으로 나온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은 답변을 거부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상황이 이러한데, 대통령의 당일 행적을 말해 줄 수 있는 증인들이 도망 다닌다? 핵심증인들이 나와 모른다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건 완전히 소송 망치는 행위인 거다. 재판부가 그것을 어떻게 보겠는가. 민사소송에서 재판부의 전가의 보도 모르는가. 이런 식으로 소송수행을 하면 재판부는 ‘변론의 전 취지에 비추어’ 대통령에게 불리한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측 소송대리인이 이런 정도의 소송법 지식을 몰라서 소송수행을 이렇게 하는 것일까?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송을 수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실 자체를 대통령이 변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이 떳떳하게 그날 직무를 수행했다면 얼마나 많은 자료가 있겠는가. 수많은 비서관, 경호요원 등이 나서서 그날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이 비록 회의는 열지 않았지만 나름 열심히 일했다고 증언할 것이 아닌가. 지금 그게 없으니까 말을 못하는 것 아닌가.

아, 정말 딱하다. 말도 되지 않는 사건 맡아 고생하는 대리인들 생각하니. 나 같으면 이런 사건 맡지도 않겠지만 혹시 실수로 맡았다 해도 당장 때려치우겠다.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라도 흑을 백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런 시도를 해서도 안 된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그 나라의 사법은 이미 망한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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