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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클린 슬레이트, ‘백지법’을 아시나요

캣우먼이 갈망한 것, 어이없이 한국이 선진국인 이유

2017.01.13(Fri) 08:43:43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캣우먼은 살아남기 위해 범죄를 시작했지만 전과 기록 때문에 또 다시 범죄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그녀는 ‘클린 슬레이트’를 간절히 바란다. 범죄 영화에 자주 나오는 클린 슬레이트는 범죄 기록으로 사회활동이나 경제활동이 제한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기록을 삭제해주는 것을 뜻한다.

 

영화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 스틸컷.


미국의 경우 몇몇 주에서 도입을 하고 있다. 경미한 범죄기록으로 사회활동이나 경제활동이 제한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기록을 자동으로 삭제하는 일명 ‘백지법’을 발의하고 있다. 최근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클린 슬레이트 입법이 논의되고 있어 미국에서도 점차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수사기관에서 알아서 관리하고 있고 특별하게 삭제요청하거나 관리하는 법체계를 두고 있지 않다. 

 

선진국에서 입법적인 필요성을 느껴 뒤늦게 형실효법(처벌 효력을 잃게 하는 법) 등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이유는 늘어나는 성범죄, 강력범죄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개인정보 등을 확인하는 절차 등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성범죄, 강력범죄 전과자가 공적인 일에 취업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어 전과조회, 범죄경력조회 사례가 늘고 있다. 전력자, 전과자들은 “자신들도 보호받을 수 있는” 백지법을 만들어달라고 청원했고 이에 따라 법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법이 있다. ‘형의 실효등에 관한 법률’이다. 형벌의 효력이 다했을 때 범죄경력 또는 수사경력의 삭제가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정적인 조건 하에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기록이 삭제될 수 있게 돼있다. 이때 삭제되는 기록은 전과라고 불리는 범죄경력뿐만 아니라 수사경력도 포함 된다. 범죄경력이나 수사 자료가 적절하게 삭제 폐기되도록 하는 이 법은 1980년 제정됐다.

 

우리나라가 클린 슬레이트 선진국이 된 이유는 추정컨대 후진적인 취업문화를 그 배경으로 꼽는 시각도 있다. 흔히 국내 기업들은 제출받는 이력서에 부모님 직업, 키, 몸무게 등 불필요한 내용을 적는 경우가 있다. 전과를 확인하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우리나라는 여러 법률 등에서 전과자의 취업이나 임용을 제한하는 것이 많다. 이때 오래전 처벌받은 기록으로 인해 취업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만든 법이라는 것이다.

 

1980년 제정된 형 실효법의 제정취지에도 “매년 누증되고 있는 전과자중 재범을 하지 않는 자에 대하여는 일정기간이 경과하면 자동적으로 형이 실효되게 함으로써 이들의 정상적인 사회복귀를 보장한다”는 부분이 포함돼 있다. ​ 

 

이 법을 언뜻 보면 ‘범죄자 옹호법이 아닌가?’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법에서의 기록삭제 대상은 ‘불기소처분’을 받은 경우, ‘법원의 무죄, 면소, 공소기각’된 경우 등에만 한한다. 기록삭제 되는 기간도 다르다. 즉시 삭제가 가능한 벌금형의 경우에도 기소유예를 받게 되면 5년 간 그 기록을 보존한다. 이 얘긴 언제든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선과 악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담은 영화 다크나이트. 이 영화에서 우리는 형벌이 존재하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과연 우리가 통상적으로 ‘범죄자’라고 부르는 전과자의 기준을 어떻게 봐야할까. 사회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최소한 우리나라의 클린 슬레이트가 규정하는 범위는 충분히 수용 가능하지 않을까.  

김태현 기자

to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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