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을 지나가는 하얀 입김과, 폐 속까지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의 촉감이 느껴지는 것이 겨울 스포츠의 매력이다. 추위와 싸우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온 겨울 스포츠의 매력은 무엇보다 그 룩에 있다.
스키와 스노보드를 잘 하지도 못하지만, 타지 않은 이유를 물으면 ‘예쁜 옷이 없어서’라 답한다. 겨울 스포츠 중 가장 멋내기에 전념할 수 있는 종목이 이것이고, 그리하여 스키장엔 실력보단 스타일로 승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스키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스키는 꽤나 귀족적인 스포츠였기 때문에, 그 시작부터 착용했던 옷들은 매우 고급스러웠다. 물론 스키와 스노보드는 절실한 삶의 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저 멀리 기원전 3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눈이 많이 내린 산악지방에 살던 고대 사람들이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눈신 모양의 것을 발에 걸고 다닌 것이 원류인 셈이다.
노르웨이의 신화에는 스키를 타고 수렵하는 ‘울’이라는 남자신과 순백색 옷을 입고 반짝이는 얼음 헬멧을 쓴 ‘스카디’라는 여신이 나온다. 스키의 어원은 ‘얇은 판자’라는 스칸디나비안어다. 추운 지방의 사냥과 이동, 운반 등에 필수 불가결한 교통수단이었으나, 생활양식의 변화는 스키의 쇠퇴를 가져왔고 1860년대에 이르러 노르웨이 왕실이 스키대회를 열어 우승자에게 상을 주면서 스포츠로 정착된다.
1920년대 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되며 대중화되었으나, 스키복은 여전히 귀족들 사이 유행하던 클래식한 스타일을 보인다. 니트톱과 니커보커스를 입고 호스를 신은 모습 말이다. 여성들은 튜닉 톱과 치마를 입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키복 소재는 코튼 플란넬을 덧댄 무거운 울을 사용했고, 1940년대 들어 개버딘이 발명되면서 본격적인 스키복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스키복 브랜드인 클라우스 오베르메이어는 최초로 1949년 단열기능이 뛰어난 퀼팅 파카를 제작하면서 스키복에 신소재 적용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에밀리오 푸치는 이 시절 스키복을 만들면서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을 정도로 스키복은 소재뿐 아니라 디자인적으로도 놀라운 성장을 시작하게 된다.
50년대와 60년대에는 따뜻하면서도 가벼운 소재가 지속적으로 개발되면서 엘레쎄, 보그너, 피닉스, 데상트 등의 브랜드들이 런칭과 동시에 활황기를 걷는다. 엘레쎄는 스키 부츠 안으로 넣어 입던 기존의 바짓단을 부츠길이에 맞춰 자른 ‘젯 팬츠’를 내놓으면서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고, 보그너는 옷단의 가장자리에 등자모양을 새겨넣은 신축성 있는 바지로 유명해진다.
스키복은 이후 1980년대를 지나며 점점 화려한 색감을 이용해 점점 몸에 핏되는 점프수트 형태로 발전하였으나, 큰 변화기를 겪게 된다. 바로 스노보드의 대중화 때문. 1960년대 개발된 스노보드 데크로 인해 1990년대 초 인기를 끌기 시작한 스노보드는 손이 자유로운 동작의 특성상, 보드복까지도 루스한 핏의 것들이 개발되며 스키복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몸에 딱 맞던 스키복 또한 점점 통이 넓어졌고, 점프 수트 형태의 모양은 상하의가 나뉘는 보드복의 모양새를 좇아가게 되었다.
이런 변화를 겪어오긴 했으나 스키와 스노보드복은 등산복처럼 잘 갖추어 입어야만 하거나, 특수기능들이 필수요소는 아니다. 이건 단지 즐기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유니폼이란 개념보다는, 헬멧, 보호대 등 위험요소로부터의 보호기능만 적절하다면 자유롭게 패션 감각을 뽐낼 수 있는 분야인 것이다.
스키복을 잘 입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여유 있는 핏보단 몸에 꼭 맞는 실루엣과 흰 눈 위에서 돋보일 색감을 고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흰색 바탕에 원색 계열의 포인트가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상하의 색을 너무 대조되지 않게 매칭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검은색 상하 매칭 등 너무 무채색이거나 몸보다 벙벙한 사이즈를 고른다면 마치 스키장에서 대여한 옷을 입은 것 같은 인상을 줄 터이니 피하는 것이 좋겠다.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스키복 고르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노르웨이의 극지 탐험가 프르쵸프 난센이 스키로 그린랜드 횡단을 성공하며 기행문에 ‘스키는 모든 스포츠의 왕자다’라는 명문을 남겼다고 한다. 맞다. 스키는 모든 스포츠룩의 왕자다.
정소영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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