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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 사과 믿어야 할지…

이랜드 알바 경험기…정의롭지 않은 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 눈물겹다

2017.01.08(Sun) 15:38:41

이랜드계열인 아울렛에서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다. 새벽 7시부터 출근체크를 하고 지하로 배달된 ‘빠레트’를 분류해 농산물을 거대한 냉장고에 빼곡히 정리했다. 그리곤 상품진열대에 풍성히 상품을 진열하고, 수시로 빈물건을 채우고 냉장고를 깔끔히 정리하면 되었다.

 


이따금씩 재고가 될 것 같은 물건은 마이크를 붙잡고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나는 판매에 나서면 무조건 완판을 해서 팀장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런 연유로 난 알바들 사이에서 일종의 발언력을 갖춘 사람이 되었다. 당시 층 전체로 확대하진 못했지만 우리 파트의 불만사항을 전달할 알바노조를 결성하기도 했다.

 

보통 아울렛은 층마다 층장이 있고, 층에서 다시 각종의 파트로 나뉘는 파트 팀장이 있다. 그리고 그 하부에 검수와 매장관리를 위한 담당 두셋이 존재한다. 이들은 정규직이다. 팀장의 쪼임을 당하면서도 새벽시간부터 나와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간다.

 

당시 신혼이었던 팀장 형님은 형수와 다투는 일이 잦았다. 육아 문제에서 조금도 참여할 수 없었고, 심신이 지치니 만사를 제치고 싶었을 게다. 맨날 쪼임당해가며 버는 돈은, 말로만 대기업인 이랜드 직원치고는 다른 대기업 하청의 월급보다 안 되는 수준인 것으로 기억한다.

 

월급이 너무나도 짠 기업으로 유명한 이랜드는 착취의 강도도 극심했다. 우리끼리 결성한 알바노조에서도 여러 불만이 터져나왔는데, 손님의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숙여야 하는 일이나, 손님의 부주의로 파손된 상품들에 대한 책임을 알바생들에게 돌리는 일 등이었다.

 

당시엔 각 상품의 판매를 독려하기 위해 시식코너가 있는 상품들이 있었고, 그곳마다 서 계시는 엄마 판매원들이 있었다. 주로 판매부진으로 동생뻘인 팀장에게 쪼임을 당했는데, 냉장고에 몰래 들어와 눈물짓는 일이 잦았다.

 

엄마들은 냉장고가 있는 창고에서 진열상품을 준비했는데, 때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주말에 딸의 상견례가 예정돼 있고, 기생오라비 같은 놈에게 시집 간다며, 딸자랑을 늘어 놓았다. 난 특유의 넉살로 ‘장모님, 딸을 주십시오’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다른 엄마들은 상견례 초보자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해댔다.

 

지난 6일 이랜드는 그룹 홈페이지에 ‘사죄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리고 다음날이었던가. 팀장의 부름에 시식코너를 하는 엄마들이 창고로 모였다. 팀장은 이번주 일요일 매장의 배치를 전면적으로 바꿀 테니, 모두 출근하라는 말을 던졌다. 그리고 나오지 않는 사람은 휴가에서 깔 테니 알아서 하라는 말과 함께.

 

기독교기업을 표방하는지라 채용도 기독교인 중심이었고, 주일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일요일은 아울렛 문을 열지 않는 것이 방침이었다. 휴일수당이 적용돼야 했지만 기대난망이었고, 쉬는 날로 맞춰진 상견례 엄마의 깊은 한숨은 냉장고의 공기보다 차가웠다. 결국 엄마는 일요일에 상견례장을 택했고, 일요일에 나와서 일한 엄마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팀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죄책감 같은 걸 느꼈어야 했다. 

 

난 이게 참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마트의 시식코너는 수시로 먹을 것을 제공한다. 그에 따라 판매도 많이 돼야 하는데, 먹고만 빠지는 손님이 부지기수라, 표정을 이쁘게만 지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마트에서의 일은 감정노동과 함께 박봉에 착취의 연속이지만, 울며 겨자 먹기의 심정으로 일한다. 선택지가 뻔한 엄마들의 일터. 박봉의 대기업을 관두면 또 어디로 가나 막막한 정규직의 청년들. 알바인 내가 봐도, 참….

 

이래도 저래도 기업은 돈을 벌고, 그 돈은 위로만 가는 정의롭지 않은 그 구조가 여태껏 지속되고 있었던 현실에 참 눈물겹다. 이 사과를 믿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동학 다준다 청년정치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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