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의 발단이 된 한 문서가 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캠프에서 정책홍보특보를 지냈던 임현규 씨가 작성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관련 ‘검증 요청서’다. 이 검증요청서를 입수한 ‘비즈한국’은 작성자인 임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성 경위 및 배경, MB(이명박 전 대통령) 배후설에 대한 의혹을 들어봤다. 또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검증 청문회’(2007년 7월 19일)에서 공개되지 않은 검증요청서의 주요 질의사항 다섯 개를 공개한다.
2007년 6월 17일 당시 한나라당 당원이었던 김해호 목사는 임 씨가 작성한 검증요청서를 토대로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 목사 일가와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최초로 폭로했다. 이에 최 목사의 딸인 최순실 씨는 고인이 된 아버지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김 목사를 형사고발했고, 김 목사뿐만 아니라 김 목사가 작성한 검증요청서를 수정해준 임 씨도 명예훼손 및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긴급 체포됐다. 재판에 넘겨진 두 사람은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근의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이후 임 씨가 작성한 검증요청서와 김 목사의 폭로 내용이 재조명되고 있다. 2007년 당시에는 네거티브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던 내용이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로써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찾게 된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23일 서울고등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제출했다. 이들의 변호를 맡은 전종원 변호사(법무법인 정률)는 지난 12월 말 박영수특별검사팀(특검팀)의 특별수사관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임 씨가 작성한 검증요청서는 특검에서 수사 참고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진다. 임 씨는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은 20~30년 전부터 이어져 왔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의혹과 근거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 특검 수사의 전반적인 이해 습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배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그 근거로 임 씨가 작성한 검증요청서가 거론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박 대통령과 최 목사 일가의 관계에 대해 10년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묵인해 왔다는 의혹이 핵심 내용이다. 특히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검증요청서로 협박 내지 회유함으로써 대선 후보로 나선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임 씨는 ‘비즈한국’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한나라당의 분위기를 몰라서 하는 얘기”라면서 MB 배후설의 근거로 검증요청서가 거론되는 게 불편하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을 돌아보면, 후보였던 이명박 서울시장과 박근혜 의원 간의 경쟁은 같은 당 소속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했다. 이명박 후보캠프 측에서는 최태민 목사 일가와의 관계 등으로, 박근혜 후보캠프 측에서는 BBK 사건 등으로 상대 후보를 공격했다. 만약 이 후보 측에서 검증요청서로 박 후보에게 협박 내지 회유를 시도했다면 되레 약점이 잡혔을 것이라는 게 임 씨의 설명이다.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검증 청문회’가 개최된 점도 임 씨의 주장을 보충한다. 당시 한나라당 내에서는 경선 후보 간의 팽팽한 기 싸움으로 정권 교체마저 불가능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이에 한나라당이 정권 교체를 위한 사태 수습 차원에서 검증청문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임 씨는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상대 후보에 대한 온갖 얘기가 다 나왔다”며 “결국 한나라당은 공정한 위원회를 설치해서 검증을 거치기로 결정했다”고 당시 청문회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청문회를 앞두고 검증위원단이 구성됐고, 검증위원단은 2007년 6월 1일부터 4주간 두 경선 후보와 관련된 검증요청 내용을 제보 받았다. 당시 박근혜 후보 측에 접수된 제보는 모두 21건, 여기에 이명박 후보캠프 측에서 전달한 임 씨가 작성한 검증요청서도 포함됐다. 일부 언론을 통해 임 씨와 김 목사가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발돼 검증요청서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반영이 됐다는 게 임 씨의 설명이다.
임 씨는 “검증요청서에는 당시 박 후보가 대통령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과 도덕성을 지적한 내용이 담겨 있다”며 “공중파방송을 통해 청문회가 생중계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음해성 의혹은 모두 배제했다. 검증위원단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검증요청서를 상당 부분 반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씨는 청문회 검증위원단이 한나라당 의원 및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추천받은 이들로 구성돼 박 후보를 둘러싼 의혹이 제대로 검증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도 당시 부실검증의 연장선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그는 “적당히 흉내만 낸 청문회로 보였다”며 “검증위원의 질문에 대한 박 후보의 해명도 적절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실례로 ‘최태민 목사를 아느냐’가 아닌 ‘왜 최태민 목사를 옆에 두느냐’는 식의 질문이 됐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임 씨는 “검증요청서 전문에도 밝혔지만 자료를 취합하면서 박근혜 당시 후보가 대통령이 될 만한 자질과 도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며 “한 기업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았든, 수백만 원을 받았든 그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라면 1000원이라도 받아선 안 된다. 청문회에서 제대로 검증만 됐다면 지금의 ‘국정농단’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한편 ‘비즈한국’은 임 씨가 작성한 A4 용지 56페이지 분량의 검증요청서를 입수해 정밀 분석해 봤다. △최태민과의 관계(질문 수 30) △영남대학교재단(23) △육영재단제(2) △재산형성(13)의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된 검증요청서에는 총 68개의 질문이 게재돼 있었다. 또 질문사항 표기에 앞서 ‘검증요청의 이유’가 상세히 설명돼 있었으며, 이 후보 캠프 측에서 조사하지 못한 열두 가지 의혹은 ‘조사 요망사항’으로 따로 기재돼 있다.
검증청문회에서 질의되지 않은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10·26 이후 정국을 장악한 전두환은 김재규의 증언도 있고 여성계의 여론도 고려하여 최태민에 대한 수사를 이학봉 수사국장에게 지시했다. 최태민은 합동수사본부 수사를 받은 후 봉사단에서 손을 떼고 강원도 인제로 보내졌는데, 이때 박 전 대표가 전두환을 직접 만나 ‘모함이니 풀어달라’고 간청하는 바람에 최태민이 풀려났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전두환을 상대로 최태민의 석방운동을 했나. 당시 최태민이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박 전 대표가 10·26 직후 발견된 9억 5000만 원 중 3억 5000만 원을 전두환에게 나눠주었던 것처럼 박 전 대표가 관리하던 박 대통령(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전두환에게 나누어 주기로 하였기 때문이라는 의혹이 있는데, 최태민의 구명을 위해 전두환과 모종의 뒷거래를 했던 것 아닌가.
2. ‘매일신문’ 청와대 출입기자는 박 전 대표의 혼인 및 박 대통령의 재혼 문제와 관련해 최태민이 박 전 대표가 혼인을 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라고 했다. 즉 박 전 대표가 결혼을 하면 퍼스트레이디 역할이 끝나고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표의 권위를 등에 업은 자신의 역할도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은 국가 및 국민과 결혼한 것이라고 하지만 최태민과의 만남을 통한 그의 영향으로 인해 독신생활을 선택하게 된 것 아닌가.
3. 새마음봉사단은 회원이 200만~300만 명에 이르렀던 거대한 조직이었는데, 10·26 이후 혼란한 정국에서 해체됐던 것으로 보인다. 해체 후 새마음봉사단의 재산은 총재로서 어떻게 정리했나. 시중에는 해체된 새마음봉사단 재산이 대부분 최태민 일가에 넘어가, 최태민 일가는 현재 엄청난 부동산 재벌이 됐다고 한다. 차제에 명확한 해명을 해주기 바란다.
4. 육영재단 간부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최태민이 심어 놓은 간부직원들이 이사장에게 결재를 올릴 서류들을 최태민에게 먼저 보고하고 그 중 최태민이 OK하는 서류만 박근혜 이사장에게 결재를 올렸다’고 한다. 당시 박 전 대표는 육영재단의 운영과 관련해 어떠한 방식으로 결재 서류를 받고 결재를 했나.
5.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절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실에 높이 1m20cm, 폭 1m의 철제 금고가 있고, 1층 대통령 집무실에도 소형 금고가 있었다. 10·26 다음날 합동수사본부에서 수사2국장 우경윤 대령과 수사간부인 중령 한 사람이 와서 보좌관실에 있던 금고의 내용물을 확인했는데, 돈 9억 5000만 원과 안보기밀문서 몇 장, 방위성금 기부자 명단 및 박 대통령이 세 자녀 앞으로 만들어 놓은 적금통장 3개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인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돈) 당시 6억 원이라는 돈은 지금 시가로는 400억~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 이 돈의 지출내역은 어떠한가. 박 대통령이 보좌관실 금고에서 돈을 꺼내 위 소형금고에 놓곤 했다는 증언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적지 않은 비자금이 남아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10·26 당시 박 대통령의 양복 주머니에 있던 집무실 금고 열쇠가 박 전 대표에게 넘겨져 박 전 대표가 집무실 금고의 내용물을 챙겼다고 하는데, 집무실 금고의 내용물은 무엇이고 그 내용물은 어떻게 처분했나.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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