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결국 분당이라는 파국을 맞이하게 됐다. 늘 이합집산을 거듭해온 진보 진영과 달리 보수 진영의 분당은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새삼스럽고 놀라운 일은 아니다. 분당의 파열음은 제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부터 들려왔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마치 누군가의 일방적 지시라도 받은 것처럼 무리한 공천을 강행했다. 당시 당 대표인 김무성 의원이 소위 옥새를 들고 부산으로 도주하는 사건까지 일어났으니, 사실상 분당은 그때부터 기정사실화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결정적 명분이었다. 지난 12월 27일 탈당할 것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비주류는 여러 명분 앞에서 몸을 사렸다. 결과적으로 총선 패배를 야기한 공천 파동을 보고도 몸을 사렸고, 소장파 김용태 의원이 혁신위원장에 내정된 것을 친박계가 일방적으로 무마시킨 전국위 사건도 유야무야 넘어갔다.
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정국에서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내려가고, 파면 팔수록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이 드러나도 비주류는 무거운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줄기차게 탈당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당 내 주도권 다툼을 위한 카드로 활용했을 따름이다.
참다 못 한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용태 의원, 원외 위원장 등 10여 명이 먼저 탈당을 해도 비주류는 끝까지 눈치를 봤었다. 남 지사와 김 의원은 선제 탈당자를 늘리기 위해 D-데이인 11월 22일의 2주 전부터 백방으로 전화를 돌리고 미팅을 잡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친박 비판에 앞장섰던 비주류 의원들은 우유부단하게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더러는 전화 자체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야 하지만, 비주류가 새누리당 안에서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끄는 사이 보수 진영을 지지하던 국민들은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비주류가 선택한 최후의 명분은 원내대표 경선 패배였다. 친박계의 온갖 비민주적 행태에도 끝내 탈당하지 않던 비주류 의원들이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배하자 드디어 분당을 결심한 것이다. 나경원 의원을 앞세워 원내대표 경선에 응했지만 패배했고, 이후에는 유승민 비대위원장 카드를 내밀었으나 역시 친박계에 거절을 당했다. 이만한 명분은 총선 이전부터 차고 넘치도록 흔했다.
국민들은 이제와 뒤늦게 새누리당에 안녕을 고한 비주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유승민 의원의 말처럼 당 개혁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고 평가할까, 아니면 우물쭈물 눈치 보기 바쁜 새가슴들이라고 평가할까. 사실상 친박계는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분당 과정에서 비주류가 보여준 모습은 그 옛날 친박연대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하게 된 개혁보수신당은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 친박계를 배제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새누리당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부의 적 역할을 할 것이다. 촛불 민심은 야당의 기세를 한껏 올려놓았고 보수 진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길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이 열릴 확률이 높지만 비주류가 내세우는 후보들은 여전히 5% 미만의 지지를 받는데 그치고 있다.
이처럼 개혁보수신당은 지난하게 첫 걸음을 내딛었고, 앞으로도 가시밭길 위를 걸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샴페인을 터트리려는 조짐이 보인다. 개혁보수신당의 잠재적 대선 후보로 꼽히는 유승민 의원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향해 ‘외교만 하신 분’, ‘신당 문 열려있지만 치열하게 토론해야’ 등과 같은 견제성 발언을 계속 하고 있다. ‘유엔 일만 했는데 국내 문제 해법 갖고 있나’라는 도발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미 모병제 전환을 놓고 유승민 의원과 설전을 벌인 바 있다. 원외위원장 신분으로 탈당을 결심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대선후보스러운 발언을 쏟아내기 위해 시동을 거는 중이다. 물론 건강한 정당은 가능한 많은 대선 후보를 배출해야 하고, 생산적인 토론으로 자체 검증을 이뤄내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새누리당 비주류가, 개혁보수신당이 벌써부터 감히 대권의 꿈을 꿀 때인가.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다시 국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최순실 게이트와 여당 분열로 인한 국정 혼란을 수습하는데 전력을 쏟아야 하는 시점이다. 동시에 탈당을 한다손 치더라도 새누리당과 정부의 책임으로부터 비주류 역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철저한 반성이 요구된다.
탈당과 분당, 창당이 복잡하게 얽히는 시기. 국민들은 누가 더 진심으로 반성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2~3% 지지율의, 고만고만한 대선 후보들이 서로 견제구를 날리며 여전히 집권 여당 소속인 듯 착각에 빠져있다면,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뿌리째 흔든 민심은 언제든지 개혁보수신당을 휩쓸고 지나갈 수 있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내실을 다지는 것, 그것만이 개혁보수신당과 보수 진영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창당도 하기 전부터 대선 후보들의 정치공학적 노선 다툼이 이어진다면, 신당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보수 진영에 희망은 없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예찬 자유미디어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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