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소갈비를 좋아했을까. 아마도 육식이 크게 성행하기 시작한 고려시대에 이미 갈비구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 소고기를 꽤 먹었으니까. 소고기에 사족을 못 쓰던 조선시대에는 인기가 더 높았을 것 같다.
1948년도 신문광고에 아주 흥미로운 게 있다. 해방 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는데, ‘만나관’이라는 갈빗집이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 지금 서린빌딩 자리인 서린동 89번지다. 이 집에서 “晝間 原始的(주간 원시적) 갈비찜 定食 開始(정식 개시)”라고 신문광고를 하고 있다.
60년대 무렵부터 소갈비가 좀 더 광범위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소갈비 전문점이 생기던 시점이기도 했다. 당시 신문에 소갈빗집을 선전하는 광고가 실렸다. 70년대에 ‘선데이서울’ 잡지에 서울시내의 갈빗집 광고가 실렸던 기억이 있다.
“맞습니다. 저희 집이 64년에 해운대에서 창업했고, 친척이 서울 분점을 열었지요. 신문 잡지에 광고를 했습니다.”
‘해운대 소문난 암소갈비’의 주인 윤성원 씨의 증언이다. 그는 서울서 대기업에 다니다가 부친의 장고로 낙향, 이 갈빗집을 맡았다. 그가 운영권을 맡은 이후 크게 성장했다. 필자가 들른 날도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요즘 어디나 소갈비가 흔하지만, 이 집은 유서 깊은 역사가 있어서 노포(老鋪) 소리를 듣는다.
부산은 원래 소갈비를 많이 먹는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평양, 부산 순으로 소를 많이 잡았다. 이 집의 창업주 윤석호 옹(26년생, 작고)은 원래 동래 온천장의 유명한 요리사였다고 한다. 갈비에 다이아몬드칼집을 넣는 기술을 선보인 것도 그로 알려져 있다. 온천장에서 ‘조선요리’를 배웠고, 해방 후 여러 요릿집에서 일했다. 해운대에 갈빗집을 창업, 오늘에 이른다.
해운대 갈비가 히트 친 건 운도 따랐다.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이 영향을 준 것이다. 서울발 ‘그레이하운드’가 부산까지 달렸다. 해운대에서 피서하는 것이 서울사람들의 꿈이 됐다. 아무나 왔을 리 없다. 서울에서도 꽤 사는 이들이 해운대를 찾았고, 그때 윤 씨의 갈빗집이 눈에 들었다.
이 집은 지금의 자리에서 방 3개로 시작해서 금세 소문이 났다. 60년대 후반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80년대 외식이 폭발적 성장하던 시기에 힘을 냈다. 지금 가게는 옆에 부속건물이 있고, 크게 확장했다. 주차장도 넓다. 그러나 양념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갈비는 본디 갈비 전문집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요리의 한 품목이었다. 그러다가 일제하 요릿집(조선요리옥)이 성행하면서 즐겨 다루는 안주가 되었다. 이문구의 소설 ‘장한몽’에는 돼지갈비를 막걸리집에서 먹는 장면이 나오고, 1965년도 신문에는 대폿집에서 갈비를 뜯다가 싸움이 난 기사가 실려 있다. 갈빗집이 성행하게 된 것은 80년대 이후 외식의 활황기가 자극이 되었다. 강남에 ‘가든’이라고 붙은 대형 갈빗집의 득세도 이 시기의 일이다.
갈비는 좀 복잡한 해부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근육이 갈비 안에서도 위치별로 다 다르다. 흔히 제1갈비뼈~제5갈비뼈를 본갈비, 제6갈비뼈~제8갈비뼈를 꽃갈비, 제9갈비뼈~제13갈비뼈를 참갈비라고 부른다. 꽃갈비가 아주 부드러워 최적의 구이용으로 보고, 참갈비는 구이용으로 적합하지 않아 대개 갈비탕으로 팔린다. 이 집은 5~8번 갈비를 쓴다. 이 부위로는 생갈비를 낸다. 양념갈비는 다른 부위가 나간다.
이 집의 양념 비법은 가능한 짧게 숙성하는 것이다. 간장도 많이 넣지 않는다. 그날그날 팔 수 있는 양을 가늠해서 살짝 숙성한다. 그래서 고기 자체의 맛이 살아 있다. ○○간장이라는 오래된 브랜드의 진간장을 아버지 대부터 여전히 쓴다.
이 집 고기가 맛있는 이유는 윤 사장과 직원들이 모두 소갈비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근속연수가 보통 20년이 넘는다. 고기를 오래 다룬 노하우가 있다. 이를테면 5월부터 더워지면 수소나 거세우의 누린내가 올라가서 이 집에서는 암소만 쓴다고 한다. 암소도 처녀 소가 아니라 새끼를 여러 번 낳은 걸 쓴다. ‘경산우’라고 부르는 고기다. 씹는 맛도 있고 고기도 연하며 감칠맛도 좋다고 한다. 소고기의 기호는 지역별로 좀 다르다. 부·울·경남지역은 암소를 좋아하고, 북쪽의 다른 지역은 거세우를 선호한다고 한다. 거세우가 덩치가 커서 ‘살밥’이 좋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부산에 들른다면, 한번 가서 옛 갈비구이를 맛보는 것도 좋겠다.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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