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가 30년 장기 가스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의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27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과 러시아 가스프롬은 2018년부터 30년간 연간 38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아시아 에너지 가격 하락 예상
에너지경제 연구원 관계자는 “중-러의 이번 계약으로 극동지역의 가스개발이 활발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가스가격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아가 유럽이나 미국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있는 아시아지역의 천연가스 가격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번 계약으로 러시아 가스 수출 물량 중 상당 부분이 중국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수출시장 다변화를 위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지역으로의 수출도 확대할 것이므로 한국 산업의 경쟁력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간 파이프라인이 구축된다면 중국을 통과해 서해를 거쳐 한국까지 가스관을 부설하는 것에 대한 논의 역시 다시 본격화 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반면 석유화학업계 등에서는 중국이 천연가스를 산업용으로 쓰게 되면 원가를 절감할 수 있어 한국 제품의 대중 경쟁력이 약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러, 中에 싸게 공급할 이유 없어
이에 대해 삼성증권 투자컨설팅팀 김범준 차장은 “가스 공급의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가 굳이 중국에 싼 값으로 가스를 공급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장기 공급 계약을 했더라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현재 가스 등의 에너지 가격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국제사회가 에너지 가격을 우려했지만 예상보다 변동 폭은 적었다. 이는 이라크 전쟁 때와 비교해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현재의 에너지 가격은 특정 사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설령 러시아가 중국과 대규모로 장기계약을 맺었다고 해도 러시아가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계약으로 우리나라가 직접적 영향을 받진 않을 것으로 본다. 결국 에너지 가격 변화에 따른 2차적 영향을 받을 텐데. 이것은 지금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러시아의 금리가 올라가고, 주가가 떨어져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다. 또 얼마 전 미국이 원유수출을 재개하겠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보이기도 했다. 이에 러시아는 우리에게도 또 다른 카드가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며 결국 정치적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다.
가속화되고 있는 북-러 협력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박병인 교수는 “이번 중·러 간 가스계약은 러시아의 동진 정책이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러시아는 중국뿐만 아니라 북한과도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이 두드러진다. 러시아 관세청과 대한무역투진흥공사(KOTRA) 모스크바 무역관 통계를 살펴보면 러시아는 지난해 3689만 달러(한화 약 377억 원) 규모의 석유를 북한에 수출했다. 이는 전년의 약 2328만 달러보다 58.5% 증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북·러 간 협력은 상호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와 협력해 중국 일변도의 석유자원 의존구조를 탈피해 중국을 통한 대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크림 공화국 합병 등으로 자신감을 얻은 러시아의 경우 북한이란 변수를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즉 북한이란 변수를 이용해 극동지역이 미-중 구도로 고착화되기 전에 자신의 입지를 다지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예전 고르바초프의 신사고 외교(新思考外交)는 한·소수교(韓蘇修交)로 이어져 북·러관계를 파국으로 몰았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 상실로 이어졌다. 이후 2차 북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2000년 초 다자간 협상과정에서 러시아가 소외됐다. 이는 동아시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에서 러시아 위상의 심각한 손상을 초래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최근의 북·러 접근은 동진정책을 확산하는 과정에박 교수는 “그러므로 중·러 장기 가스 공급 계약은 러시아의 동진정책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향후 한-미-일, 북-중-러의 구도가 더 두드러질 것이며 이에 따른 역학관계는 더욱 다변화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주변 강대국들을 예의주시하며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해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국, 다차원적 외교 펼쳐야
반면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강준영 교수는 “에너지가 필요한 중국의 경제적 목적과 아시아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의 정치적 목적이 상호 부응한 결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동북아시아는 미국과 중국의 구도가 중심이다. 여기에 러시아의 영향력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미-일 VS 중-러의 대립 구도가 고착화될 것이고 심화될 것이다. 여기에 북한이란 변수가 끼어 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을 통한 우회적 압박은 한계가 있다. 중국이 북한을 적극적으로 압박해 개방으로 나아가게 할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동북아 안보의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우리의 입지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각에선 지난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한·미·일 안보 공조를 꾀하는 한국이 미-중의 세력 싸움에 휘말릴 지도 모른다고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리의 몸값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한-미 동맹은 우리의 마지노선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다지는 한편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이나 역사문제 등에 있어선 중국과 협력하는 등의 다차원적 외교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교수는 “다만 러시아나 일본과 달리 우리는 중국과 미국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러므로 MB정권 때처럼 미국에 지나치게 기우는 등 편중된 외교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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