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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IT 리뷰#3] 한국화와 갈라파고스 사이에 ‘징검다리’가 놓이다

구글 지도 데이터 반출 논쟁 변화하는 한편 해외 콘텐츠 유통 장벽 사라져가

2016.12.28(Wed) 15:08:57

우리나라의 IT 시장 특성을 설명하는 말 중 하나로 ‘갈라파고스’가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태평양에 있는 섬인데, 주변 생태계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에 빗대 외부와 단절된 독자적 환경을 갖는 것을 빗대는 말로도 쓰인다.

 

한국형 서비스, 국내 생태계에 대한 고집은 그 자체의 기술 발전을 낳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시장과 다른 행보로 대표적인 경쟁력 저하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2016년은 그 문턱을 넘으려는 시도가 이어진 한 해였다. 바로 ‘지도와 콘텐츠’다.

 

지도 반출을 둔 우리 정부와 구글의 갈등은 올해도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보다 그 논의의 범주가 넓어졌다. 사진=구글 캡처


 

# 풀리지 않는 지도 데이터 반출

 

지도를 둔 구글과 우리 정부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6년은 매듭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할 만큼 갈등의 크기가 커졌던 한 해다. 구글은 2016년 5월 다시 지도 이용에 대한 허가를 요구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그동안 지도를 두고 구글과 정부 사이의 갈등은 한 마디로 ‘국가 안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지도에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와 도로 정보들이 기록될 수밖에 없고, 이 정보가 통제되지 않는 해외로 나가면 전쟁과 관련된 정보로 쓰일 위협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해외 사업자도 지도 정보는 반드시 국내에 서버를 두어야 하고, 그 정보가 해외로 나가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한다는 게 이제까지 지도 규제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정부가 내세웠던 거부의 이유들은 사실 그리 치밀하지 못했다. 구글도 준비를 단단히 해서 단순히 국가 안보라는 메시지만으로는 더 이상 거부가 쉽지 않았다. 보안을 위해 지도를 지키려면 단순히 해외 기업이 지도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만으로는 답을 낼 수 없다. 이미 위성 기반의 지도는 세계적인 정보가 됐고, 정부는 해외에 그 지도 활용을 직접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 

 

다만 국내에서 서비스하려면 청와대나 군부대 등 주요 위치를 지워서 서비스해야 한다. 그러니까 청와대 위치는 해외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고, 국내에서만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심지어 국방부도 입영자에게 훈련소 위치를 알려주는 데 구글 지도를 이용한다.

 

이번 지도 논쟁에서 국가 안보 문제는 그 힘이 한풀 꺾이긴 했다. 대신 지도 데이터 반출이 안 된다는 이유로 몇 가지 이유가 새로 꼽혔다. 구글이 국내에서 정당하게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것과 구글이 국내 지도 서비스 생태계를 흩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도와 세금 문제를 직접 결부시키기는 무리가 있다. 구글은 이미 국내에서 정해진 세금은 모두 내고 있고, 국세청도 구글의 세금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구글이 매출을 해외로 빼돌려서 세금을 내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찾아서 받아내는 게 맞다. 논의가 점점 더 커질수록 어떻게 보면 진짜 시장의 속내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6년 지도 논쟁에는 그동안 전면에 잘 나서지 않던 네이버와 다음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도 나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카카오에 길 안내 서비스를 매각한 록앤올의 박종환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서 구글이 지도 정보를 얻으면 이를 통해 자율주행, 빅데이터 분석을 비롯해 각종 위치 정보 기반 서비스를 잘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논지의 글을 쓰기도 했다. 구글과 경쟁이 어렵다는 기업들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지도 논쟁은 더 깊어졌다.

 

결국 정부는 11월 말 구글에 지도를 제공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여전히 보안과 국내 생태계의 중요성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국내 사용자의 차별, 외국인 관광객들의 불편, 장애인 접근성 문제 등은 배제됐다는 평을 피하기 어렵다. 구글도 이쯤 되면 국내에 서버를 두고 지도 서비스를 하는 방법을 고민해볼 만도 한데 기존 시스템만을 고집하는 데에 대한 문제가 지적됐다.

 

지도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언제고 다시 반복될 것이다. 그런데 이 지도 정보를 단순히 구글과 정부의 다툼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지도 정보가 쓰이는 서비스는 매우 많다. 구글뿐 아니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를 비롯해 외산 자동차 업계도 국내 지도가 필요하다. 

 

지금은 단순히 해외 기업이기 때문에 정보를 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 지금 풀어야 할 것은 구글에 대한 특혜가 아니다. 지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의 문제로 봐야 한다.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통제된 지도 정보를 정당한 대가를 치르면 누구나 쓸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도는 해외 기업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발판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 기업들도 해외로 나가는 발판이기도 하다.

 

애플뮤직이 한국에 출시됐다. 국내 음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가요는 상당 부분 빠졌지만 서서히 음원 사용권 문제도 풀리고 있다. 사진=애플 제공


 

# 사라지는 콘텐츠 유통 장벽

 

한국 시장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표현들 중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무덤’이 있다. 외산 스마트폰의 무덤, 외산 콘텐츠의 무덤 등이 대표적인 수식어다. 그 안에는 한국형 서비스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제 문제도 있지만 콘텐츠의 경우 콘텐츠 공급자와 유통자의 복잡한 셈법이 섞여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2016년은 다소 고무적인 한 해다. 2015년 말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의 대표 격인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 진출했고 이제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왓차플레이가 서비스를 시작했고, 최근에는 아마존 비디오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보수적이었던 음악 콘텐츠도 풀렸다. 애플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애플 뮤직도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유튜브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국내에 유료 서비스인 유튜브 레드와 유튜브 뮤직을 출시하기도 했다. 아직 이 서비스들은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폭발적인 인기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분위기임에는 분명하다. 이례적인 일로 꼽히기 충분하다.

 

사실 이 서비스들이 들어오는 과정들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 확보인데, 기존의 복잡하게 얽힌 국내 콘텐츠 유통 시장을 풀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콘텐츠 유통 구조는 그동안 ‘청정 지역’이었던 게 사실이다. 모두 국내에서 만들고, 국내에서 판권을 갖고, 국내에서 유통을 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콘텐츠 시장에 해외 콘텐츠 유통 공룡이 들어오는 것은 기존 시장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최근 이 콘텐츠 유통 서비스들이 국내 시장에 관심을 갖는 것은 구독자 수를 늘리는 것보다 한국의 콘텐츠를 더 적극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부분이 크다. 국내 콘텐츠 시장도 그 부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업계에는 해외 콘텐츠 유통업체가 국내에 진출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회이자 위기라는 복잡한 셈법이 흘러 왔다.

 

유료 서비스인 유튜브 레드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우리나라에 발표됐다. 그만큼 국내 콘텐츠 시장은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가능성이 높게 평가된다. 사진=구글 제공​


특히나 국내 음원 시장은 제작자와 유통사가 겹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로엔이다. 로엔은 아이유 등의 음반을 제작하는 제작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멜론’을 운영하는 서비스 주체다. 애플뮤직이나 유튜브를 이용해 음원을 세계 시장에 유통할 필요가 있지만 이 서비스들이 국내에서 자리를 잡으면 멜론과 경쟁해야 하는 이중적인 구조인 셈이다. 이 때문에 콘텐츠로 견제가 아직도 일어나는 그림이다. 역설적이지만 국내 애플 뮤직에는 아이유 음원이 없다.

 

하지만 결국 국내에 애플뮤직이나 넷플릭스를 비롯한 해외 콘텐츠 유통 서비스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 모두 콘텐츠 수급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진 못했지만 가격이나 서비스에 만족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콘텐츠의 유통 창구는 넓어질수록 유리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콘텐츠가 디지털화되면서 이제는 국경이라는 개념도 사라지고 있다. 서울에서 오늘 출시된 음반을 지구 반대편에서도 곧장 들을 수 있는 게 요즘이다.

 

가능성이 없다고 바라보던 콘텐츠 유통의 장벽이 조금씩 낮아지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물론 그 사이에 공룡 기업들이 끼어 있긴 하지만 예전처럼 특정 유통권자가 독점으로 이른바 ‘갑질’을 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유통은 더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고 그 안에서 우리 콘텐츠가, 우리 유통 플랫폼이 세계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와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최호섭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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