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위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경제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필자는 그게 별로 실감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래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2000년에 비해 2015년까지 무려 45.4%나 상승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 국가들 중 최고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동생산성이란, 투입된 노동시간에 비해 얼마나 많은 산출(Output)을 기록했는지 측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이 향상되었다는 것은 그 나라가 더 효율적인 나라로 변모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생활수준도 높아졌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생산성 향상 속도 둔화
이상과 같은 노동생산성의 향상 속도만 보면, 한국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최근 생산성의 향상속도,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생산성 변화를 살펴보면, 한국경제도 다른 선진국처럼 서서히 성장 속도의 둔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은 미국의 노동생산성을 기준(=100)으로 할 때, 각국의 노동생산성 수준을 측정한 것인데 한국과 대만이 굉장한 속도로 선진국을 추격하다 최근 두 나라 모두 힘이 떨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일본과 유럽의 정체 및 하락 흐름이 워낙 두드러지기에, 한국의 성장 탄력 저하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빠르게 성장하던 국가가 미국 생산성의 70~80% 수준에 도달한 다음 성장이 정체되었던 경험이 워낙 많기에 최근의 성장 둔화를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하기에는 불안한 마음이 앞서게 된다.
#어떻게 해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노동생산성을 지금보다 더 높이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크게 보아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교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대체로 교역비중이 높아질수록 경제전체의 효용이 증가하고 경쟁이 촉진되어 생산성이 향상된다. 아래의 그림은 GDP 대비 수출비중과 경제성장률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교역비중이 높은 나라가 성장률도 높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GDP 대비 수출 비중은 2015년 기준 45.9%에 이르러, 일부 도시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경제 내 수출 비중을 더 높이는 전략은 서서히 그 효과가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생산성을 높이는 두 번째 전략은 ‘협업’을 강화하는 것이다. 협업을 강화한다고 이야기하니, 좀 어색하지만 한 나라의 협업 수준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지표가 바로 ‘도시화’다. 전체 인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도시에 모여 사는지 측정한 것인데, 아래 그림에 보듯 도시화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경제성장률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도시화율이 왜 경제성장을 자극하는가?
그 답은 바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점점 더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리와 경제성장의 비밀을 탐구하는 책, ‘직업의 지리학’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한 도시의 숙련 근로자 수와 그 도시의 미숙련 근로자 임금 사이의 주된 상관성은 세 가지 때문이다.
첫째, 숙련 근로자와 미숙련 근로자는 서로를 보완한다. 전자의 증가는 후자의 생산성을 높인다. 더 좋은 기계로 작업하는 것이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교육을 더 많이 받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미숙련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인다.
둘째, 교육을 더 많이 받은 노동인구는 지역의 고용주들이 더 새롭고 더 개선된 기술을 채택하도록 촉진한다.
셋째, 한 도시 인적 자본의 전반적 수준 향상은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본문 153쪽
긍정적 외부효과라는 표현이 좀 어렵기는 하지만, 간단하게 말해 주변사람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한 일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현상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교육이다. 교육은 자녀의 미래 성공을 위해 이뤄진 투자이지만, 각 가정이 자녀교육에 힘쓰게 되면 경제 전체가 성장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도시화 역시 비슷한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도시에 모이며 협업이 강화되고, 더 나아가 경쟁을 촉진하며 기업들을 끌어 모으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의 세로 축은 지난 10년에 걸친 도시화율의 변화를 나타내며, 가로 축은 지난 10년간의 평균 경제성장률을 보여주는데 둘 사이에 정(+)의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도시화율이 높아질수록 경제성장은 촉진된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도시화율은 2015년 기준 82.5%에 이르렀기에, 추가적인 도시화율의 향상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방법도 앞으로는 생산성 향상의 효과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우리 앞에 남은 유일한 길은 ‘혁신’을 자극하는 길밖에 없다. 수출비중을 더 높이기도 어렵고 또 도시화율을 높일 수도 없다면 어떻게든 교육의 질을 높이는 한편 기술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것밖에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며 기술혁신을 자극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 최근 읽은 흥미로운 책 ‘완벽한 공부법’은 재미있는 대안을 들려준다.
자율성이 조직의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구글은 90분 정도되는 워크숍을 통해 직원들에게 자기 업무를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자기 업무를 스스로 설계한 사람들과 자신의 관심사나 가치가 자신의 업무와 부합되도록 개인 맞춤형으로 지정한 실제 사례를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워크숍에 참가한 직원들과 그렇지 않은 직원들을 비교해 보았다. 조사결과 자신의 업무를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직원들의 행복지수와 업무 능력이 모두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상승효과는 6개월이나 지속되었다. (중략)
자율성은 스스로 의사결정이 가능하므로 주도성을 갖게 하고 책임감을 느끼게 하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본문 178~179쪽
물론 “구글 정도 되는 회사니까 자율성이 통한 거 아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셰필드 대학의 카말 버디 교수와 그의 연구진은 22년에 걸쳐 308개 회사의 생산성을 연구했는데, 회사가 직원들에게 더 큰 권한과 재량권을 부여한 경우 압도적으로 높은 생산성을 기록했다고 지적한다. 참고로 308개 회사 대부분은 IT기업이 아니라 대부분 제조업 분야였다. 군대식 통제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제조업에서조차 적절한 자율권의 부여는 생산성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특히 더 참고할 만한 부분은 ‘자율적인 회사의 직원이 건강하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공부법’의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영국에서 직위와 스트레스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었다. (중략) 영국의 연구진은 직급이 낮을수록 스트레스성 질병에 취약해 건강이 크게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고 ‘주장’한 고위 임원들은 부하직원들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더 오래 산다는 이야기다. 2004년의 또 다른 연구에서는 말단 직원의 조기 사망률이 최고위 임원들보다 4배나 높고 정신질환을 앓을 확률 또한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직위가 높을수록 낮은 직급보다 더 오래 살 것으로 기대된다.” -본문 180~181쪽
자율성은 인간에 ‘원초적 욕구’인 셈이다. 자율성을 가질 때 인간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또 창의적으로 행동한다. 반대로 직장에서 자기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질 때 생산성은 물론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건강까지 위협받는다.
지금까지 한국은 수출비중의 확대, 그리고 도시화의 진전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손쉽게 생산성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기존에 하던 방법을 바꾸고, 또 더 나아가 개개인의 창의성을 자극하지 않으면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부디 많은 기업들이 자율적인 그리고 창조적인 분위기로 돌아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래야 한국경제가 성장하고 또 한국 직장인들이 행복할 테니까.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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