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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폰 못 막는 ‘대포폰 방지 시스템’

신분증 스캐너, 가짜 신분증 못 가려내…국가유공자증과 장애인등록증은 전산시스템도 없어

2016.12.26(Mon) 16:33:20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휴대전화 부정가입방지시스템’이 구축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위조와 도용을 방지하는 전산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신분증 스캐너를 통한 본인 확인이 전면 확대됐지만 일부 신분증은 위조와 도용 여부를 전혀 확인할 수 없고, 나머지 신분증도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대조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미래부가 대포폰, 신분증 위변조 등의 휴대전화 부정 가입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경찰에 적발된 대포폰 개통용 허위 가입신청서. 사진=비즈한국 DB


​지난해 4월 ​미래창조과학부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통해 신분증 도용과 위·변조 등 부정이용 방지를 위한​ ‘​휴대전화 부정가입방지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위해 미래부의 인가 법인으로 신분증 스캐너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는​ 지난 1일부터 전국 휴대전화 판매점과 대리점이 신분증 스캐너를 도입해 본인 확인을 하도록 의무화했다.

 

부정가입방지시스템은 판매점에서 가입자의 신분증에 기재된 내용을 행정정보공동이용센터를 통해 개인정보 보유기관에 전송하고 해당 기관이 원본 대조 후 판매점에 진위를 통보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현재 보급된 신분증 스캐너가 인식하는 신분증은 주민등록증(행정자치부), 운전면허증(경찰청), 외국인등록증(법무부), 장애인등록증(보건복지부), 국가유공자증(국가보훈처), 총 5가지로 신분증마다 다른 부처가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 장애인등록증·국가유공자증 가짜라도 통과?

 

이동통신사 협회인 KAIT 관계자는 “5개 신분증은 모두 신분증 스캐너에 인식되기 때문에 휴대전화 개통에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5개의 개인정보 보유기관 중 국가보훈처와 보건복지부는 신분증의 위변조를 확인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유공자증과 장애인등록증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경우 원본 대조가 이뤄지지 않아 신분증의 진위를 파악할 수 없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막대한 예산 소모와 강제성 논란을 무릅쓰고 도입한 신분증 스캐너 사업의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KAIT에 국가유공자증과 장애인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정보에 대해 묻자 앞서의 관계자는 “현재로선 사망 여부만 확인할 수 있다.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고, 우리는 미래부에서 사업을 위탁받아 시행할 뿐”이라고 답했다.

 

미래부도 책임을 회피하기는 마찬가지다. 미래부의 한 관계자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미래부 장관은 개인정보 보유 기관에 신분증 진위 확인 ‘요청’을 할 수 있을 뿐이며, 요청을 받은 기관은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요청에 응해야 한다”며 “진위를 확인하고 싶지 않아 안 하는 게 아니라 각 부처마다 사정이 있고 전산적 한계가 있음을 고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각 부처 사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자 “타 부처 일이라 밝히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 그는 “5가지 신분증은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신분증이긴 하나, 장애인등록증과 국가유공자증은 신분 확인보다는 혜택 부여 목적이 크다”면서 “이러한 이유로 각 부처 결정권자들이 당장 대책을 내놓지 않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신분증 스캐너가 인식할 수 있는 5개의 신분증 가운데 장애인등록증과 국가유공자증은 전산 시스템의 미비로 신분증의 진위를 파악할 수 없다. 사진=행정정보공동이용센터 홈페이지 캡처


미래부와 KAIT의 설명과 달리 전문가들은 국가유공자증과 장애인등록증의 진위확인 시스템 구축은 의지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각 개인정보 보유기관에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 행정정보공동이용센터 기술 담당자는 “국가보훈처와 보건복지부도 이미 인프라는 갖추고 있다. 다른 시스템 구축도 의지만 있다면 금방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전산시스템 마련을 위한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가보훈처의 한 관계자는 “3년 전부터 행정자치부와 보훈 대상자들에게 문의가 많이 왔지만, 전산 시스템 구축 비용이 만만치 않은지 기획재정부와 국회에서 예산을 편성해주지 않고 있다”며 “제대로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새 보훈증으로 전면 교체해야 하는데 보훈 대상자가 80만 명에 이르기 때문에 이 역시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 사진 변조해도 가려낼 수 없어

 

개인정보 중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이 신분증의 진위 파악 과정에서 대조된다는 점도 문제다. 올해 하반기까지 사진 대조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미래부와 경찰청의 계획과 달리 현재 모든 신분증에서 사진과 발급일자 등의 개인정보는 신분증 진위 검토 과정에 생략되어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솔직히 현재까지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까지만 대조 가능한 상황이다. 신분증이 워낙 옛날에 발급한 경우가 많아 사진까지 제대로 대조하려면 아예 모든 신분증을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털어놨다.

 

일각에서는 전산 시스템이 미비한 상태에서의 신분증 스캐너 도입은 개인정보 보호에 큰 효과가 없음에도 이를 ‘만능키’처럼 홍보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휴대전화 판매점들의 모임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의 이종천 상임이사는 “KAIT가 말하는 행정자치부 인증 제품은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의 일치를 확인하는 수준”이라며 “여러 실험에서도 밝혀졌지만 전산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신분증 스캐너만으로는 대포폰과 신분증 위·변조를 제대로 가려낼 수 없다”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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