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바람둥이 007도 구식 난로를 찬양하고, 걸그룹마저 1990년대 그룹이 컴백한다. 확실한 것은 절대 그들이 지금 걸그룹보다 노래를 잘한다거나 춤을 잘 추거나 소녀로서의 매력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블랙핑크와 여자친구와 소녀시대가 S.E.S보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을 보며 당시의 우리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전에 쓰던 갤럭시 S2는 갤럭시 S7보다 나쁘지만, 그 나름의 추억이 있어서 기억할 수 있듯이 말이다.
e스포츠의 추억은 누가 뭐니 해도 스타크래프트1 리그다. 지금, 그 추억이 다시금 부활하고 있다. 온게임넷은 아니다. 예전과 달리 지역투어도 하지는 못하지만 아프리카TV에서 새 시대에 맞게끔 부활했다. 바로 ASL(아프리카TV 스타크래프트 리그)이다.
ASL의 전신은 소닉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던 스베누 대표 황효진의 소닉 스타리그다. 소닉이 운영하던 신발 쇼핑몰 등 자체 스폰서로 운영되던 스타리그였으나 10차에 가깝게 운영되는 등 꽤나 성황리였다. 개인 BJ의 사비로 운영되던 스타리그가 다시금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 순간은 황효진이 스베누를 운영하면서부터였다. 스베누가 온게임넷 LOL 챔피언스리그를 후원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광고를 하고, 스타크래프트 리그에 후원을 하니 규모도 예전에 비해 커졌다.
게다가 김택용 등 과거 인기 게이머들이 스타크래프트 2를 은퇴하고 아프리카에서 스타크래프트 1을 방송하며 참여 프로게이머의 수준도 올라갔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처럼 김택용은 무난하게 결승까지 진출했다. 게이머의 인기가 곧 실력은 아니지만, 인기 게이머의 결승 진출은 곧 흥행 성공이다.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진행된 결승은 성공적이었다.
KT 등 기존 e스포츠 후원사들도 스타크래프트1 리그 부활에 한몫을 했다. KT는 ‘GiGA LEGEND MATCH’라는 이벤트전을 열었다. 이윤열, 강민, 홍진호 등 초 올드 게이머들의 경기와 택뱅리쌍의 경기 등 다양한 경기가 여기에서 펼쳐졌다. 기존 아프리카 시청자뿐만 아니라 과거 프로게이머의 팬들까지 다시금 그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6~8년 전과 똑같았다. 같은 선수에, 같은 팬들이 모였다. 새로운 팬들도 모였다. 과거엔 TV, 지금은 휴대폰으로 본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였다.
ASL이 열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타크래프트1은 아프리카의 킬러 콘텐츠다. 트위치, 다음팟 등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과의 경쟁을 위해 아프리카는 고유의 킬러 콘텐츠가 필요하다. 유튜브, 연예 활동 등으로 인해 e스포츠 프로 게이머들이 예전과 달리 대중적으로 알려졌으며 올드 스타크래프트1의 팬들의 소비력 역시 막강하다. 고등학생, 대학생이던 팬들이 취업을 하거나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릴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면 스타크래프트1이 가진 부가가치는 아직까지 유망하다.
다만, 이 기세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른다. 스타크래프트1은 e스포츠가 세계화되기 이전 시대의 게임이며, 시청자의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즉, 해외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LOL과 오버워치 등 최근 게임에 비해 떨어진다. 비록 게이머들이 세계적으로 알려졌을지언정 스타크래프트1은 한국만 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 게임팀이 존재하지 않고 클랜식으로 돌아가니 게이머들의 수익이 불안정하다. 수익이 불안정하니 신규 스트리머들이 유입되지 않는다. 게임 자체에도 신규 게이머들이 유입되지 않는다. 올드 팬들은 술에 잔뜩 취하면 친구들과 가서 스타크래프트1 한두 판하는 게 전부고 신규 팬들은 방송으로만 불뿐이다.
환경을 고려하면 스타크래프트1 리그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상수다. 스타크래프트1 리그가 콘텐츠로서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가 끊임없이 스타크래프트1을 소비해야 한다. 유튜브에서 선수들의 방송을 찾아보고, 리그 본방송은 물론이요 재방송도 보자. 선수들이 나오는 예능이면 재미가 없어도 보자. 바보 같은 짓이라고? 스타크래프트1 콘크리트층이라면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우리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선.
구현모 알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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