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람들이 다른 도시에서 살면 음식 때문에 불편한 일이 좀 있다. 순대에 쌈장 안 주는 거, 중국집 간짜장면에 계란프라이 안 올려주는 거, 마지막으로는 돼지국밥이 없다는 것이다. 순대국밥과 비슷한 거 아닌가 하면, 손사래를 친다. 돼지국밥은 돼지국밥이란다.
부산의 지역신문을 보면 돼지국밥과 관련해서 좀 특이한 걸 발견할 수 있다. ‘돼지국밥 개업인사’가 떡 하니 실리는 것이다. 동창회나 각종모임 소식을 봐도 돼지국밥집에서 한다는 공고가 실린다. 길거리를 걸어보라. 거짓말 좀 보태서 서너 집 건너 하나씩 돼지국밥집이 있다. 긴 불황에 늘어난 건 돼지국밥집밖에 없다는 말도 있다.
부산 사람들에게 맛있는 돼지국밥집을 물으면 제각기 다르다. 압도적인 1, 2등이 없다. 유명한 집 이름을 대고 물어보면 글쎄, 한다. 각기 맛있는 집이 있다는 거다. 그만큼 부산은 돼지국밥의 ‘풀’이 넓다. 어떤 이는 농담 삼아 부산 사람들 피에는 돼지국밥 육수가 흐른다고도 한다.
범일동의 한 국밥집을 찾아간다. 상호가 할매국밥이다. 필자가 ‘백년식당’이라는 책에 소개했을 때만 해도 지역에서 유명한 집이기는 했으나 줄을 서지는 않았다. 요즘은 꽤 긴 줄이 선다. 방송에 나온 까닭이다. 그래도 국밥의 장점대로, 얼른 먹고 일어서기 때문에 자리가 나긴 난다.
부산 사투리로 돼지는 약간 ‘대지’로 들린다. 부산은 바다의 고장. 푸른 파도의 이미지에 대지(大地)라는 넓고 깊은 땅의 뉘앙스가 더해져서 갑자기 그 음식이 낸 눈앞에서 설설 끓는 것 같다. 돼지국밥은 순대국밥과 같으면서도 다른 음식이다. 서울에 돼지국밥을 한다는 집이 여럿 있는데,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것이 왠지 순대국밥처럼 느껴져 식욕이 일지 않는다. 그저, 돼지국밥의 서정이 일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뿐이다.
굳이 내용으로 나눠보면, 돼지국밥은 내장을 쓰지 않으며, 당면으로 만든 순대를 넣지 않는다, 이 정도가 고작이다(물론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순 살코기만 들어가서 국물이 맑은 경우가 많고, 뽀얗게 국물을 내더라도 돼지 부산물이 아니라 반드시 살코기가 들어가는 것 정도가 부산 돼지국밥의 한 스타일을 정의한다.
할매국밥이 있는 이 동네는 아주 한적하다. 흔히 교통부 사거리라고 하면 알아듣는다. 임시정부 시절 교통부가 있었다. 보림극장이라고 해도 택시기사들이 안다. 70, 80년대 이곳은 신발공장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살았고, 그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볼거리 적은 그들이 가는 곳이 바로 보림극장의 ‘쇼도 보고 영화도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가수가 서울에서 와서 공연을 열었다. 그 막간에는 영화도 상영했다. 부산을 떠받치던 산업 노동자들의 여가를 책임지던 곳이었다. 이제는 옛 영화(榮華)는 사라지고 마트가 되었지만, 외관을 수리하지 않아 멀리서 보면 극장 모양이 살아 있다. 그 보림극장 옆에 바로 할매국밥이 숨어 있다.
범일동 할매국밥은 56년에 창업, 부산지역 국밥집의 맨 앞줄에 있다. 이미 창업자인 최순복 할머니(2006년 작고)의 대를 이어 며느리 김영희 씨(64)가 맡고 있다. 그이의 나이도 이미 ‘할머니’이니, 그 깊은 역사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명절 외에는 사철 문을 열고 고단한 노동을 직접 해내는 할매다.
돼지국밥이 순대국밥과 다른 건, 마치 쇠고기국밥처럼 수육백반(그냥 수백이라 줄여 부른다)이 있다는 것이다. 수백은 삶은 고기를 좀 넉넉히 따로 담아내고, 국물을 곁들인다. 국밥은 그냥 우리가 아는 토렴 국밥이다. 토렴이란 차갑거나 미지근한 밥을 뜨거운 국물에 데쳐서 말아내는 전형적인 한국식 국밥 기술이다. 밥의 전분기가 살짝 풀려서 국물의 농도를 내고, 국물의 온도는 뜨겁게 유지하는 우리 민족 요리의 중요한 뼈대다. 할매국밥의 돼지국밥은 새우젓과 부추가 각기 들어가므로 온도가 또 달라지기 때문에 토렴이 아주 중요하다.
“따로라꼬, 수백은 아이고 그냥 국밥에 드갈 고기만 따로 접시에 담아 내는기도 있지예.”
그러니까 메뉴라고는 딱 세 개인 것이다.
부산의 돼지국밥은 영도 쪽에서 제주도 돼지를 반입하여 해방 전부터 끓여왔던 것이 한 일가를 이루고(부산일보 김승일 기자 기사), 다른 하나는 이북 피난민들이 동란기에 내려와 창업하면서 생겨난 이북식이라는 두 갈래가 있다는 것이 정석이다. 할매국밥은 후자에 해당한다. 최 할머니가 피난민이 되어 생계를 잇기 위해 식당을 차린 게 시초다. 이후 1970년에 현재의 자리인 범일동에 오면서 할매국밥의 영화가 시작된다.
할매국밥 맛의 비결은 펄펄 끓는 두 개의 알루미늄 솥(40년 이상 된 고물)에서 고기를 연신 삶는 것에 있다. 새벽 6시에 고기가 한 번 들어오고, 오후 2시에 다시 들어온다. 팔리는 양이 많은데, 한꺼번에 고기를 받지 않고 나눠 받는다. 그때그때 삶아서 바로바로 썰어낸다. 맛이 없을 리 없다. 게다가 아주 질이 좋은 고기다. 이문을 줄이고 제대로 만드는 것, 바로 할매국밥의 진지한 국밥의 비밀이다. 그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손님들이 ‘할매 돌아가셨어도 옛날하고 맛이 똑같네’하는 말이 제일 듣기 좋습니더.”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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