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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IT 리뷰#1] ‘AI vs VR’ 주목받는 기술의 법칙 ‘타이밍과 쓸모’

알파고로 인해 인공지능 기술 충격적 확산 반면 주목받던 가상현실은 증강현실 바람에 휩쓸려

2016.12.23(Fri) 17:04:12

매년 연말, 연초가 되면 다음 한 해를 밝힐 기술들이 소개된다. 유명한 연구 조사기관들이 붙어서 고민하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도 많다. 기술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도 시기와 주변 환경이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면 어려운 기술이지만 의외로 쉽게 대중에게 알려지는 사례도 있다.

 

2016년도 마찬가지다. 마냥 어렵고 멀리 있는 것 같았던 인공지능(AI) 기술은 ‘알파고’를 타고 화제가 됐고, 모두가 반기던 가상현실(VR)은 조급증과 적절한 콘텐츠를 찾지 못하면서 다소 주춤거리는 형태다. 이 두 가지 기술이 어떤 한 해를 겪었는지 돌아보자.

 

4국 직후 이세돌 9단(왼쪽)과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오른쪽), 이 시점부터 인공지능은 바둑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사진=최호섭 제공


 

# 알파고, 그리고 머신러닝의 시대

 

2016년 이름 알리기에 가장 성공한 기술은 단연코 ‘머신러닝’이다. 몇 년 전부터 주목받던 분야였고, 2015년부터는 내로라하는 IT기업들이 모든 사업 전면에 머신러닝을 꺼내놓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기술을 대중적으로 알린 것은 바로 ‘바둑’이었다.

 

올 1월 구글은 ‘알파고’라는 이름의 바둑 두는 머신러닝 기술을 공개했다. 알파고는 지난해 이미 프로 바둑 기사와 대전을 거쳤고, 1000만 건의 바둑 기보를 익혀 ‘바둑 두는 방법’을 꿰고 있었다. 논문과 함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알파고는 이미 또 다른 알파고와 바둑을 두면서 스스로의 바둑 세계를 다졌다. 그리고 3월 이세돌 9단과 벌인 다섯 번의 대국을 4 대 1로 이기면서 알파고는 순식간에 유명세를 탔다.

 

알파고는 세상에 두 가지를 남겼다. 컴퓨터가 사람처럼 무엇인가를 배우고, 판단하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대중적인 이해도를 높였다. 머신러닝은 인공지능 기술의 한 갈래로 주목받던 기술이다. 기본 프로그래밍과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반복 학습을 거쳐 새로운 데이터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센서 정보처럼 반복적인 데이터가 쉬지 않고 들어오는 분석하는 용도로 주로 쓰여 왔다.

 

알파고의 경우 셀 수 없이 많은 바둑판의 확률을 하나하나 계산해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한 점’을 찾아가는 작업을 한다. 기존에도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 기술은 많았지만 사람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바둑판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둑은 거의 무한한 경우의 수에서 한 점을 골라내기 때문에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완성하기 어려운 기술로 꼽혔다. 알파고는 머신러닝의 정체를 쉽게 알려준 사례다. 사진=구글 제공


알파고가 현재 수준의 바둑을 둘 수 있게 된 것은 결국 데이터의 양과 관련이 있다. 수천 대의 컴퓨터를 묶어서 쓰는 클라우드 컴퓨팅과 슈퍼컴퓨팅 기술이 쌓이면서 바둑판 위의 거의 무한한 가능성을 단 몇 분 안에 분석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알파고가 남긴 가장 큰 메시지는 인공지능과 사람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었다. 사실 머신러닝의 역할은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다. 사람이 주문한 대로 데이터를 골라내는 것이 주 역할이지, 컴퓨터가 실제 지능을 가진 것처럼 통찰력을 보여주진 않는다. 물론 알파고는 그 자체로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알파고가 아무리 바둑을 잘 둔다고 해서 ‘바둑 기사’라는 직업이 사라져야 한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다만 단순 반복 작업을 컴퓨터에게 맡기면서 적지 않은 직업들이 변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온 세상 사람이 ‘인공지능 시대에 내 직업은 괜찮은가’라는 고민을 했다. 줄어드는 일자리에 대해 나라에서 기본급을 책임져야 한다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돌아보기도 했다.

 

알파고로 시작된 머신러닝에 대한 관심은 바둑을 넘어 산업, 의료, 교육, 서비스 등으로 번졌고, 가전이나 자동차 영역으로 빠르게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IT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인공지능과 관련된 기술을 대중화하는 플랫폼 전략을 꾸준히 발표하고 교육과 연구도 내놓고 있다. 산업계는 이를 어디에 활용할지 고민하고 꾸준히 사례를 만들어내고 있다. 머신러닝 열풍은 2017년에도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2016년 모바일 시장은 가상현실이 뜨겁게 달굴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조금 달랐다. ‘어디에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최호섭 제공


# 조급증이 만들어낸 환상의 거품,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알파고와 달리 올 한해 가장 뜨거운 기술로 꼽혔던 가상현실(VR)은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끌어내진 못했다. ‘오큘러스’와 삼성전자의 ‘기어VR’로 눈에 직접 쓰고 보는 가상현실은 2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가상현실, 그러니까 VR은 안경처럼 생긴 헤드마운트를 쓰고 가상공간을 보는 것으로 콘텐츠의 새로운 방향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아예 전시장 부스에 VR 체험관을 놓고 제품 발표회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최고경영자)를 초대해 가상현실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LG전자도 구글과 손잡고 VR을 강조했다. 국내 통신사들도 5세대 이동통신의 현실적인 사례로 가상현실을 언급할 정도로 올 초 가상현실은 IT 산업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도 가상현실에 대한 산업 지원에 나섰고 관련 스타트업도 쏟아졌다. VR이 스마트폰 다음으로 산업을 이끌 기술로 손꼽혔던 게 바로 올해 초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는 곧 시들해졌다. 바로 게임 ‘포켓몬 고’ 때문이다. 이 게임은 증강현실(AR)을 이용해 길거리에 숨어 있는 포켓몬스터를 잡는 것이다. 포켓몬 고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고 우리 시장은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내 증강현실로 쏠리기 시작했다. 포켓몬 고와 비슷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까지 일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기업들은 VR을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들과 손을 잡았는데, 정작 이들은 시장을 더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키워갔다. 너무 서둘렀다는 인상을 주었다. 사진=최호섭 제공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연초에 기대했던 것처럼 이 기술들은 큰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돌아보면 우리가 늘 겪어왔던 ‘조급증이 낳은 불편함’을 반복하는 사례로 보인다. 2010년을 즈음해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3D TV’를 떠올리면 비슷할 것 같다.

 

머리에 뒤집어쓰고 보는 가상현실과 현실 세계에 가상 이미지를 덧대어 보는 증강현실은 시각적인 충격이 상당하기 때문에 단숨에 빠져들기 쉽다. 하지만 이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은 결국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디스플레이다. 콘텐츠를 또 다른 형태로 보여주는 것인데, 우리는 이미 3D TV를 통해 기술과 콘텐츠가 발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익혔던 바 있다.

 

가상현실 기술은 여전히 뜨겁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4’와 가상현실을 접목한 PSVR을 내놓고 최근까지도 품귀 현상을 빚고 있고,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하던 HTC는 ‘바이브’라는 가상현실 게임 플랫폼을 통해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구글은 ‘데이드림’이라는 스마트폰 VR 기술을 발표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증강현실 기기인 ‘홀로렌즈’를 출시해 산업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상현실은 하루아침에 판단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내년에도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발전을 이어갈 것이다. 다만 지속적인 콘텐츠 없이 기술 그 자체만으로 갑자기 뜨거워졌다가 관심이 줄어드는 사례가 반복되면 오히려 천천히 가느니만 못할 수 있다. 모든 기술은 ‘왜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법이다.​ 

최호섭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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