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AI)가 삽시간에 전국을 덮었다. 지난 11월 16일 전남에서 처음 신고 돼 역대 최고 속도로 번지면서 살처분 된 가금류 수도 2084 만9000마리(21일 기준)에 달한다. 전체 가금류의 12.6%에 이르는 숫자다. 전국의 오리와 닭 사육 농가는 초토화됐고, 달걀 값이 폭등해 전국적으로 사재기가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컨트롤타워는 AI 확산을 막기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
지난 20일 황교한 국무총리(대통령권한대행)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운천 새누리당 의원이 AI 대처능력을 강하게 질타하자 “AI 발생 직후부터 담당 부서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말했다”고 답했다. 황 총리는 AI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다된 12일에서야 일일점검에 나섰다. 사실상 대통령 유고상태에서 행정수반인 황 총리의 발언은 무책임하다는 야권의 비판이 잇따랐다.
정부는 지난 16일 AI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올리는 한편, 범정부 차원의 AI 중앙사고수습본부도 처음 설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뒷북대응에 불과했다. 이미 이때는 살처분 된 가금류 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시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1일 ‘역대 최고 속도의 AI 확산과 경제적 피해’ 보고서에서 AI로 인한 직·간접 손실비용이 최소 4920억 원에서 최대 1조 477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연구원은 질병 근절을 위한 새로운 백신과 치료법·진단검사법을 개발해야 하며, 연구 인프라 구축, 중장기적인 기초, 역학 및 임상 연구를 범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를 잃기 전에 정부가 외양간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안일한 대응은 비슷한 시기 AI가 발생한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11월 21일 일본 돗토리현에서 AI 바이러스가 발견되자 AI 위기경보단계를 최고수준인 ‘3등급’으로 올렸다. 한국이 AI 위기경보단계를 최고 수준으로 올린 것은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지 50일이 지난 상태였다. 일본은 또 나가타현 양계장에서 AI가 발생하자 55만 마리를 즉시 살처분 했다. 일본의 AI 마지막 흔적이다.
현재로서 쓸 수 있는 대책은 가금류에 백신을 놓는 방법이다. 사실상 ‘최후의 수단’이다. 백신은 살처분에도 AI 바이러스가 확산될 때 쓴다. 그러나 현재 AI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어 가금류의 감염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2억~3억 마리에 달하는 닭·오리에 일일이 백신을 처방할 수 있느냐는 분석도 있다. 또 경제적인 부담도 적지 않게 따른다.
특히 H5N6·H5N8 두 가지 바이러스가 동시에 돌면서 변이가 일어나고 있어 기존 백신이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당국은 백신을 사용할 경우 유전자 변이로 인체 감염 가능성이 있을 수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도 내놓는다. 현재로서는 지역별 차단 방역과 살처분을 계속하고 있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안이 없는 셈이다. 초동대응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리더십 부재는 농가들의 도덕적 해이로도 이어지기도 했다. 충청 지역의 일부 농가는 AI를 사전에 인지하고도 닭과 달걀을 출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사전 방역을 하지 않을 경우 보상금이 깎일 것을 우려해 AI 신고를 제때 하지 않은 농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AI의 원인으로 철새 탓만 하는 사이 전국적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국회 관계자는 “AI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위기가 상시화 됐다는 뜻”이라며 “위기를 의도적으로 방치해 중앙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으려는 일부 지자체의 부도덕함과 중앙정부의 관리 의지 부재가 사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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