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가 큰데도 성장세가 대단합니다. 그런데 규제가 많아 수익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중국 시장을 ‘독이 든 성배’에 비유한다. 중국 당국이 예대율(예금 중 대출에 쓸 수 있는 자금 비율)을 75%로 규제하고 있어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13억 인구란 거대한 시장이 매력이지만, 당국의 규제와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만리장성과 같은 장벽을 쌓는다.
지난 1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1~11월 대 중국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9% 감소했다고 밝혔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음에도 수출이 되레 뒷걸음질 친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20일 중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958개 관세가 즉시 철폐됐고, 올 1월 1일에는 5779개 품목의 관세가 인하됐다.
그럼에도 FTA가 발효되기 전인 지난해(-5.6%)보다도 감소폭이 확대됐다. 교역량은 8.5% 감소했다. 미국·유럽연합(EU)과 FTA 체결 당시 첫해 수출이 각각 4.1% 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중국에서 한국 수출이 맥을 못 춘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중국 경제의 둔화 탓이다. 7~8%대 성장을 구가하던 중국 성장률이 올 들어 6%대로 떨어지면서 성장 속도의 완급 조절에 들어갔다. 전 세계 교역량도 감소하는 바람에 한국의 중간재·자본재 수출도 쪼그라들었다.
무역 현장에서는 중국의 비관세 장벽 강화를 더욱 큰 어려움으로 꼽는다. 경기침체와 세계적인 교역 부진은 영업력으로 일부 극복할 수 있지만, 상품의 규격과 품목제한 등의 규제에 수출이 원천봉쇄 되는 경우가 많아도 한다.
건강보조식품을 수출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는 “홍삼 등 원재료의 함유량에 따라 약인지 식품인지로 달라지는데, 관계 당국이 규정을 자주 바꾼다. 그에 맞춰 생산라인을 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중국 당국과 업체 간의 짬짜미를 국내 기업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에 법인이나 지점을 설립한 국내 기업은 3574개(6월 말 기준). 이들은 무역기술장벽(TBT)·동식물검역(SPS)·보조금·통관·투자 제한·정부조달·콘텐트 심의 등의 비관세 장벽이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국가무역정보포털에 등록된 중국의 한국 상품에 대한 비관세장벽 수는 111건. EU(203건)와 미국(200건)에 이어 3위다. 비관세장벽협의회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중국의 비관세장벽은 26건으로 한국과 교역하는 나라 중에 가장 많다.
특히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를 전후로 통상보복 움직임도 강해지고 있다. 사드 배치에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 중국 당국이 고강도 세무조사에 나서는 한편 한류 스타들의 방송·광고 출연 제한 등 ‘한한령’이 대표적이다. 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정치적 문제로 중국인 관광객들의 한국 방문이 뜸해지고 있다. 불과 1년 전과 비교해도 판촉 활동이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의 중국 무역 의존도는 57.5%에 달해 중국이 비관세장벽을 강화해 보호무역, 내지는 무역보복에 나설 경우 한국의 경제적 타격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내년 1월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일 경우 한국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환태평양전략적경제동반자협정(TPP) 설립을,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를 통해 아·태지역의 무역질서를 재편할 주도권을 다투고 있다.
FTA를 체결했음에도 수출이 쪼그라들었다는 점은 현지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경쟁력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시사한다. 한국은 중국 일변도의 무역정책에서 수출 노선 다변화를 꾀하는 한편, 수출 품목도 중국의 내수시장 강화 움직임에 발맞춰 소비재·서비스 등으로 바꿔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공식품이나 화장품 같은 소비재는 통관을 거부하거나 포장 등을 꼬투리 잡아 수입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기업들은 통관 및 심사 기준 변경 등에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무역업계 관계자는 “한·중 FTA 2단계 협상은 서비스·투자 분야”라며 “방송과 K-팝 등 문화산업과 함께 IT 서비스 등 중국이 아직 뒤떨어지는 분야의 수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메이저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중국 현지기업들이 제품경쟁력이 빠르게 상승해 국산과 거의 차이가 없게 됐다”며 “한류 열풍이 일고 있고 내수 시장이 큰 인도네시아·베트남 등지로 판로를 다양화할 필요가 커졌다”고 말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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