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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알파고에서 해커까지 ‘올해의 과학자들’

네이처가 뽑은 ‘과학의 진보에 기여한 과학자 10인’의 면면

2016.12.21(Wed) 10:31:35

연말이다. 으레 온갖 시상식이 있기 마련이다. 과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의 10대 연구자 같은 투표를 진행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학술 매거진 ‘네이처’는 지난 19일 2016년 한 해 동안 과학의 진보에 기여한 과학자 10인을 선정하여 발표했다. 과연 누가 또는 어떤 연구가 선정되었을까? 잠깐 떠올려 보시라. 혹시 단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너무 자괴감에 빠져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그럴 테니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꼽을 사람이 한 명은 있다.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데미스 허사비스는 인공지능(AI) 전문가로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대표다. 한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 3개국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허사비스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 천하의 이세돌이 3월 9일 알파고에게 첫 판을 내준 후 내리 세 판 졌을 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2016년 3월 13일은 당대 최고의 인간이 당대 최고의 인공지능(AI)을 꺾은 마지막 날로 기억될 것이다.

 

2016년 3월 15일 알파고와의 대국을 모두 마친 뒤 이세돌 9단과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가운데)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알파고를 개발한 허사비스는 ‘올해의 과학자’로 선정되었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자, 이제 아홉 명 남았다. 과학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중력파 연구를 주관한 가브리엘라 곤살레스 또는 라이고(LIGO)를 떠올렸을 것이다. 맞다. ‘네이처’는 라이고의 대변인인 가브리엘라 곤살레스의 이름을 열 명 가운데 첫 번째로 올렸다. 중력파란 초신성이 폭발하거나 블랙홀이 충돌할 때 시공간이 일렁이는 것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이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할 때 중력파가 있을 것이라고 예견하였지만 여태 발견하지 못했었다.

 

LIGO에 참여하고 있는 과학자는 13개 국의 1000여 명. 당연히 한국 과학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대학 다섯 곳과 정부출연연구소 두 곳의 과학자 20여 명은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을 구성하여 LIGO에 참여하였다. 여기에는 정말 놀라운 일이 있다. 이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은 단 3억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개인 연구비를 들여 연구에 참여한 셈이다.

 

올해 초에 중력파가 검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과학자와 과학기자들은 중력파 검출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결과가 달라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 중력파 연구는 올해 노벨상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오르려면 1월 31일까지 추천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력파 검출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된 날은 2월 11일이었다. 2017년의 강력한 후보일 것이다.

 

2016년 1월 24일 LIGO 멤버들이 미국 의회에 나와 중력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 여성이 가브리엘라 곤살레스 대변인이다. 사진=Caltech/MIT/LIGO


여덟 명 남았다. 올해 과학기사를 추적한 사람이라면 두 명의 의사를 더 꼽을 수 있다. 존 장과 셀리나 터치가 바로 주인공이다. 산부인과 의사 존 장은 ‘세 부모 아기’를 출산시켰다. 세 부모란 유전자 엄마, 난자 엄마 그리고 정자를 제공한 아빠를 말한다. 복제양 돌리의 출산과 같은 방식이다. 단지 그 대상이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와 안정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자녀에게 신경계 손상을 남겨줄 수밖에 없는 엄마가 건강한 아기를 낳게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셀리나 터치는 브라질 내과의사다. 브라질에서 올림픽이 열리는데 지카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임산부가 감염되면 태아가 소두증을 앓게 되는 바이러스다. 전 세계가 공포에 빠졌다. 셀리나 터치는 전염학자, 소아과의사, 신경학자, 생식생물학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지카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을 이끌어내었다. 하지만 아직도 지카 바이러스 문제를 해결하기까지는 멀었다.

 

명색이 과학관 관장인 내가 떠올린 명단은 딱 네 명으로 여기까지다. 나머지 여섯 명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다. 산호초 연구자 테리 휴즈, 대기 화학자 휘스 벨더르스, 논문 해적 알렉산드라 엘바키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연구자이지만 크리스퍼 가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케빈 에스벨트, 외계행성 연구자 기옘 알글라다-에슈큐데. 이들의 면면을 살펴본 후 ‘네이처’가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올해 가장 중요한 과학계 인물 열 명으로 뽑았는지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여섯 명은 절대로 주류 과학계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허브(Sci-Hub)’를 설립한 알렉산드라 엘바키얀. 사진=위키피디아

산호초 연구자 테리 휴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산호초(Great Barrier Reef)가 하얗게 탈색되면서 죽는 현상을 연구했다. 해수면의 온도가 1도 이상 올라서 생긴 현상이다. 테리 휴즈는 지난 5월 대산호초의 93퍼센트에서 탈색이 진행 중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기후변화 위협에 관한 보고서’에서 대산호초 관련 항목을 삭제했다. 관광 산업에 끼칠 좋지 않은 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은 학생 시절 출판사를 해킹하여 논문을 빼내 무료로 공개하는 웹사이트 ‘사이허브(Sci-Hub)’를 설립했다. 그녀는 석사과정 시절에 비용 때문에 논문을 맘대로 볼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만 했다. 연구자 세계에 많이 있는 일이다. 그 결과 연구자 사이에 정보 격차가 생긴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Sci-Hub. 그녀는 저작권 침해 소송에 걸려 있고 은신 중이다. 그녀는 말했다. “내가 하지 못하게 된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일을 할 것이다.” 

 

Sci-Hub는 과학자들이 자신이 획득한 연구비로 수행한 연구 결과의 논문을 심지어 자기 돈을 들여 출판했는데 저널 출판사들이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팔면서 이윤을 취하는 시스템에 대한 항거다. ‘네이처’로부터 선정을 의뢰받은 사람이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을 꼽은 것 자체가 유쾌한 사건이다.

 

서두에 언급한 네 명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여섯 명의 명단은 과학계가 얼마나 다양한 곳인지를 말해준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과 면면을 보고서 충격을 받은 내가 얼마나 구태의연한 사람인지도 알려준다. 우리는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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