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남자에겐 고민스러운 상황이 있다.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이나 멋진 데이트로 저녁식사를 해야 하는데, 과연 어떤 곳에서 먹으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뻔한 일식집이나 고깃집 같은 데가 아니라, 뭔가 멋지고 세련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막상 아는 데가 별로 없어서 늘 뻔한 데만 가는 남자들도 많다.
사실 비즈니스 미팅으로서의 식사는 먹는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고,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가가 중요하다. 공간이 꽤 중요하단 얘기다. 특히나 외국의 바이어나 크리에이티브한 고객을 만나는 등 뭔가 새롭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어디서 밥 먹을지가 고민이다. 주차도 고려해야지, 음식맛과 분위기, 술 마시게 될 상황이나 꺼낼 얘기, 대화 나누기에 적당한지, 필요하다면 폐쇄적 공간인지까지 따져봐야 한다.
이런 고민은 데이트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데이트를 해야 상대방이 만족하고 감동할지 신경 쓰인다. 특히나 사람들과 만날 자리가 많은 연말연시에는 이런 고민을 하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다고 한번 마음에 들었던 곳만 계속 갈 수도 없다. 그래서 매번 새롭고, 좋은 곳을 찾기 위해 안테나를 세운다. 새로운 핫플레이스도 척척 알아내는 건 센스이자 정보망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건 상대에 대한 배려다.
그런데 이런 배려 있는 남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노쇼(No-Show)’를 모르는 남자다. 크리스마스 전후를 비롯해 연말연시는 데이트하는 커플도 많고, 각종 모임도 가장 많을 때다. 지금이 예약 잡기도 가장 힘들 때지만, 반대로 노쇼도 가장 많을 때다. 우리나라 레스토랑의 노쇼는 20% 정도라고 하는데, 심한 곳은 50%가 넘기도 한단다. 노쇼하는 손님들 때문에 화가 나서 식당을 접고 싶다는 말하는 이들도 많고, 실제 그런 곳도 있다.
만약 입장을 바꿔보면 어떨까? 식당을 예약하고 갔는데 그 식당이 예약관리를 제대로 안해서 예약이 안 잡혀 있게 되었다면 어떨까? 밥 먹으러 가족 데리고, 혹은 업무상 식사하러 갔다가 낭패를 겪는 셈이다. 바쁜 시간 쪼개서 병원 예약 시간 맞춰 갔더니 예약이 안 돼서 다음에 다시 오라고 한다면 어떨까? 휴가에 국제선 항공편을 예약했는데, 막상 출발당일 공항 갔더니 예약이 안 돼서 여행을 못 떠나게 되었다면 어떨까? 길길이 날뛰며 항의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이다.
이건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다. 그런데 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상태의 권리 요구는 일방적인 걸까?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서로 피해를 본다. 그런데 노쇼에 따른 위약금도 없다면 그 피해를 한쪽만 보게 된다. 약속을 소홀히한 사람의 무책임 때문에 입은 손실을 누가 보상하겠는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할 변수가 생길 수는 있다. 노쇼 자체가 사라지는 게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노쇼를 줄이거나, 노쇼 때문에 입은 손실을 만회할 방법을 찾는 게 합리적이다. 항공사는 10여 년 전엔 예약부도율이 20%에 이르기도 했는데, 신용카드 선결제를 통한 위약금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크게 줄어 지금은 4~5% 선이 되었다. 선진국에서는 레스토랑의 노쇼가 10% 정도 된다고 한다. 그들이 약속을 더 잘 지키고 양심적이어서라기보단 예약금을 미리 결제하는 식당이 많아서이다. 노쇼는 서양에서도 문제였는데, 약속을 어긴 것에 비용을 부과해서 해결하는 셈이다.
처음부터 노쇼를 작정하는 고약한 심보를 가진 이들이 있다. 의외로 이런 사람이 꽤 많다. 동시에 여러 군데 예약을 잡아놓고 그중 한 곳을 가는 이들도 있다. 그날의 상황에 따라 플랜B, 플랜C까지 준비해두는 건 투철한 준비정신이라 치자. 하지만 의도적으로 노쇼를 작정하는 건 너무나 양심 없는 짓이다. 자기 시간이 중요하다면 상대의 시간과 기회도 중요한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살다보면 불가피하게 예약을 못 지킬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취소 전화 정도는 미리 해주자.
모든 예약은 약속이다. 자신의 이름을 건 약속이다. 함부로 다뤄도 될 약속이란 건 없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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