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이 오바마라면 에미넴은 트럼프입니다. 정치적 견해가 그렇다는 건 물론 아닙니다. 대중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그렇다는 뜻입니다.
마이클 잭슨은 흑인 최초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에미넴은 거꾸로입니다. 백인인 그가 흑인 최후의 자존심이라는 힙합 음악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모두를 뜨악하게 만드는 난폭한 언행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끌면서 말이죠.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에미넴의 돌출 행동은 계산된 전략이었습니다. 언더 시절 에미넴은 진중한 랩을 했습니다. 흥행은 신통치 않았죠. 이후 그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었습니다. 슬림 셰이디(Slim shady)입니다. 만들어진 가짜 자아를 통해 그는 수많은 돌출 행동을 합니다. 마이클 잭슨부터 머라이어 캐리까지 수많은 유명인이 그의 모욕 대상이었습니다.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발언도 서슴치 않았죠. 하지만 그 누구보다 그가 가장 모욕한 존재는 자신의 어머니와 전 부인이었습니다.
그의 돌출 행동에도 이유는 있었습니다. 그는 싱글맘 밑에서 자라 백인 주류층과 흑인 사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했죠. 어릴 때부터 학교 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했고요. 설상가상으로 가장 존경하던 존재인 삼촌은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물론 그의 개인적 불행이 그의 막말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요.
초기에 그는 돌출 행동으로 대중의 화제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입니다. 온 세상이 미치광이 같은 랩을 하는 백인 래퍼에게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인기의 전부는 아니었지요.
우선 닥터 드레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갱스터 랩의 대부이자 최고의 프로듀서인 그는 인디 시절 에미넴의 녹음을 듣고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에미넴의 오버그라운드 데뷔 앨범을 프로듀싱합니다. 힙합 대부 닥터 드레의 지원 덕분에 사람들은 백인 래퍼인 그가 가짜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랩으로도 최고였습니다. 엽기적인 가사로 화제가 되었던 오버그라운드 첫 번째 앨범 이후 그는 자신의 최고작으로 흔히 불리는 앨범 ‘The Marshall Mathers LP’를 발매합니다. 여기서 에미넴은 본인이 엽기적인 가사만 하는 악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에미넴은 본인이 ‘슬림 셰이디’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합니다. 에미넴 자신은 가사 속 화자와 같은 광인은 아닙니다. 그는 슬림 셰이디와 에미넴을 넘나들며 가사를 내뱉습니다. 범죄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소설가가 범죄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음악가 본인과 가사의 주인공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에미넴은 연출된 자아와 자신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일반적인 음악 가사에 대한 통념을 극복했습니다.
이 앨범의 백미는 ‘Stan’이었습니다. 에미넴의 가사가 항상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기에 가능한 ‘픽션’ 랩이지요. 에미넴 본인을 너무도 사랑한 광팬 스탠이 사소한 오해로 망가져가는 과정을 묘사했습니다. 에미넴은 이 곡에서 라임을 완벽하게 맞추면서도 반전이 들어있는 짜임새 있는 랩을 들려줍니다. 에드거 앨런 포가 환생한 듯한 완성도 있는 음악이었지요.
다음 앨범 ‘The Eminem Show’에서 에미넴은 직접 프로듀서를 맡습니다. 닥터 드레는 묘한 미국식 뽕끼가 느껴지는 중독성 있는 음악을 에미넴에게 줬는데요. 에미넴은 달랐습니다. 백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록적인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3집 앨범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영화 ‘8마일’에 수록된 ‘Lose Yourself’ 또한 이 당시에 에미넴이 직접 만든 곡입니다. 그렇게 그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힙합 뮤지션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에미넴의 전성기였지요.
이후 에미넴은 빠르게 몰락합니다. 무엇보다 돌출 언행으로 사회와 싸우는 사이 본인의 정신이 피폐해졌습니다. 결정타는 동료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던 프루프(Proof)의 죽음이었죠. 상심한 그는 약물 중독에 빠져 폐인이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며 성공했던 악동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나락으로 빠진 셈입니다. 어쩌면 인과응보겠지요.
과체중과 약물 중독에 신음하던 그는 앨범 ‘Recovery’로 부활합니다. 이 앨범에서 에미넴은 대중적인 팝 랩을 들고 나왔습니다. 여기에 죽음과도 같은 좌절에서 부활했다는 개인사를 꺼내 들었습니다. ‘Not Afraid’ 같은 곡이 대표적이죠. 이 앨범을 통해 에미넴은 대중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동시에 저를 포함한 흑인음악 팬들에게는 본인만의 음악을 포기하고 팝 음악으로 투항한 듯한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지요. 이후 그는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가수로서 에미넴의 이미지는 ‘나쁜 놈’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모욕하며 명성을 얻었으니까요. 하지만 실제 자연인으로서의 에미넴은 전혀 반대이기도 합니다. 온종일 사전과 펜, 종이를 쥐고 라임을 연구하는 ‘랩 덕후’지요.
래퍼 아이스티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아트 오브 랩’에서 아이스티는 직접 에미넴을 인터뷰했습니다. 여기서 에미넴은 선배 음악인 아이스티에게 예의를 갖추며 수줍게 질문에 대답합니다. 악마처럼 자신의 가족과 유명인, 나아가 본인을 모욕하는 무대 위의 에미넴과는 사뭇 다르지요.
인터뷰에서 그는 힙합이 자신을 구원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온종일 힙합과 라임만 생각한다며, 힙합이 아니었으면 자신이 무엇을 했을지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죠. 정치적 올바름과 가장 거리가 멀었고, 모두에게 상처를 주었던 최악의 악당에게 힙합 음악은 유일한 피난처이자 탈출구였습니다.
음악은 그런 게 아닐까요. 모두에게 공평하게 피난처가 돼주는 존재 말이죠. 설사 그 사람이 모두를 상처 주며 올라간 ‘나쁜 놈’이라도 말입니다. 세상을 상처 주며 성장한 악당, 에미넴이였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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