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모두 말렸죠. 막상 깨달은 뒤에는 이미 늦었죠. 다시는 방위사업에 뛰어들 일은 없을 겁니다.”
학군(ROTC) 장교 출신인 사업가 L 씨는 군 방위사업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는 2013년 군 핵심시설에 전자기파(EMP) 방호 시설을 설치하는 ‘806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온갖 수모와 비상식적인 일에 휘말리다 탈락의 쓴맛을 봤다. 입찰 과정은 불투명했고, 사업자 선정에서 수상한 낌새를 여러 차례 느꼈다. 그러나 군 기밀사업이라 함부로 문제제기를 하거나 외부에 얘기할 수도 없었다. 그는 속병만 앓다 결국 사업을 정리했다.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2012년 신축한 합동참모본부에 EMP 차단막을 설치한 ‘201사업’의 부실 공사 논란이 일고 있다. 군 당국은 200억 원을 들여 지하벙커 EMP 차단 설비를 만들었지만, 지난해 12월 시험평가 결과 시공구간 4곳 중 3곳이 EMP 방어 기준치 60dB~80dB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심지어 어딘가에서 EMP가 흘러들어와, 정확한 검사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EMP 차단막 설치는 군사 안보 상 꼭 필요하다. 전자기기에 치명상을 입히는 EMP는 현대전에 있어 중요한 전술 무기. 만약 40㎞ 상공에서 EMP탄이 터지면 반경 700㎞ 이내의 신호등·열차·비행기 관제 통신·금융 전산망 등 모든 전자 회로는 마비된다. 핵무기가 폭발할 때도 EMP가 발생한다. 현대 군사 장비는 모두 전자식이기 때문에 EMP의 활용에 따라 전세가 뒤바뀔 수도 있다. 특히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한 전직 국장은 언론을 통해 북한이 이미 2년 전 EMP 무기 개발에 나섰으며, 러시아와 중국을 곧 따라잡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MP는 전자파이기 때문에 방호막에 틈새가 있거나 벽면의 두께, 압력이 다르면 내부로 흘러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또 EMP가 차단막을 타고 땅으로 흘러나갈 수 있도록 정교하고 꼼꼼한 설계와 시공능력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 중에서 EMP 설비를 제작한 경험과 능력이 있는 회사는 3~4곳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201사업의 부실 논란이 일면서 군이 2012년 발주한 806사업에도 부실의혹이 제기된다. 이 사업은 국군기무사령부와 계룡대, 대전청사 등 3곳에 EMP 차단막을 설치하는 사업으로 201사업보다 규모가 크다.
지난 2014년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806사업 중 계룡대는 원가절감을 위해 설계와 시공을 분리 발주키로 해놓고 결국 통합발주로 변경했다고 지적했다. 또 최저가 낙찰인데도 최고가를 써낸 회사에 사업을 줬고, 공기 단축을 위해 공구를 3개로 분할하고도 준공이 지체된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당시 국방부시설본부는 806사업의 사업자로 H공영을 선정했다. H공영은 도급순위 21~23위권의 크지 않은 회사다. 군은 애초에 이 사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고 도급순위 20~25위 기업에 사업을 맡기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 H공영의 입찰가가 타사보다 높은 것으로 전해졌음에도 군 당국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여러 의혹을 받고 있다.
H공영은 EMP 차단막 설치 능력이 없어 이 부분은 재하청을 줬다. 보안시스템 회사와 통신사, 중소중견기업 10개 업체가 여기에 응찰했다. 결국 최종 낙찰자는 대기업 계열 보안회사인 S사가 가져갔다. 응찰 조건에는 EMP 차단막 사업 경험이 있는 회사로 제한했다. 이 사업에 경험이 없던 S사는 부랴부랴 서울시 관련 사업에 EMP 차단막 설치를 끼워 넣어 간신히 입찰 조건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S사 역시 군 당국이 낙찰을 주려고 염두에 뒀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김 의원에 따르면 전임 국방부 고위관계자가 사업을 진행한 회사에 취업했고, 해당 건설사는 국방부에 손해배상소송까지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806사업 진행 과정에서 설계도면이 유출되고 업체 평가위원의 뇌물수수 혐의 등 아마추어적 업무 진행과 비리로 얼룩졌다. 201사업도 해당 사업단장이 구속되는 등 여러 비리 의혹 속에 결국 부실공사로 이어졌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EMP차폐 설비 공사는 2~3차 입찰까지 벌여 S사에게 몰아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비리 의혹을 철저하게 규명하지 않으면 201사업과 같은 꼴이 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서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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