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국(국화과, 학명 Dendranthema boreale (Makino) Ling ex Kitam.)
산국은 국화과의 가을꽃이다. 야생에 흔하디흔한 꽃이지만, 향기가 은은하고 맑다. 첫눈이 내리는 날 꽃이 피어 있는 산국을 괴산호 산막이옛길에서 만났다.
하늘이 뿌옇게 흐리더니만 드디어 올해 들어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첫눈치고는 제법 눈발이 세게 휘날리며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었다. 섣달이 시작되자마자 첫눈을 맞이하고 보니 어느새 한겨울로 접어든 느낌이다. 그러나 길게 내리지는 않았다. 언제 그랬는가 싶게 곧이어 날이 개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비쳤다.
산막이마을에는 호수 주변의 등잔봉, 천장봉, 삼성봉을 잇는 등산길과 호수 주변으로 이어지는 산막이옛길이 아름다워 수안보에 들르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다. 산행길 입구에 들어서니 아직 수확하지 않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사과 위에는 조금 전에 내린 흰 눈이 살포시 얹혀 가을과 겨울이 함께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사과밭 바로 옆 양지녘에 아직도 푸른 잎과 샛노란 꽃을 매달고 있는 풀꽃이 보였다. 무슨 꽃인가 반가워 가까이 가보니 산국이었다. 잠시 살짝 내린 첫눈이라 눈이 쌓여 있지는 않았지만, 이 계절에도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장해 보였다.
흰 눈이 내리는 계절에 아직도 피어 있는 산국의 모습을 보니 산국은 역시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꽃이로구나 여겨졌다. 한해살이풀들이 다 시들어버린, 서릿발이 심한 추위 속 눈발 내리는 계절에도 굴하지 않고 홀로 꿋꿋이 피어 있다. 이러한 산국을 노래한 조선 후기의 문신 이 정보(李鼎輔 1693∼1766)의 시조가 다시금 생각난다.
국화야, 너난 어이 삼월 춘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시절 좋은 때에 다투어 피어나는 온갖 들꽃이 시든 차가운 계절에, 산국은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고서 늦가을에 비로소 꽃을 피운다. 그 가상한 기개와 굳센 의지를 보면 불평과 불만 속에 나약한 삶을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점을 생각하게끔 하는 가을꽃이다.
산국은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산국은 도시화되고 산업화한 환경에서는 살지 않는다. 신선한 공기와 오염되지 않은 땅에서만 산다. 사람들 눈에 쉽게 띄는 산기슭의 산비탈과 계곡이나 개울 언저리의 습윤한 곳에서 무리를 지어 산다. 이른 봄에 싹이 터서 햇볕 좋은 봄, 여름 다 보내고 늦가을 서리 내릴 때쯤이면 노랗고 자잘한 꽃이 올망졸망 하나둘씩 피어난다. 첫눈이 내리는 시기에도 핀다. 이를 보고 예부터 시인 묵객이 충절의 꽃으로 좋아했던 가장 한국적인 우리 야생화이다.
산국은 해열작용을 비롯하여 진정, 해독, 종기 치료 등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 한방에서는 산국의 꽃이 폐 경락의 풍열을 없애 주고 간 경락의 열을 내려 주는 효능이 있어 감기로 인한 고열과 폐렴, 기관지염, 두통, 현기증, 고혈압 등 각종 질환의 치료제로 약용했다고 한다. 민가에서는 산국 꽃의 향이 좋아 잘 말려서 국화차를 즐겼으며 환절기 감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국화차를 마셨다고 한다.
산국과 비슷한 야생화로 감국이 있다. 산국은 꽃이 약간 쓴맛이 나지만, 감국은 단맛이 나서 감국이라 불렀다고 한다. 감국은 산국보다 온난한 지역인 서해안 주변과 남부지역에 주로 자라며 꽃이 산국보다 더 크다. 줄기와 잎도 서로 차이가 있는데 감국의 줄기는 약간 갈색빛이 돌며 잎은 산국이 감국보다 더 깊이 갈라지는 특징이 있다.
박대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