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세대’라는 말이 있다. 우파진영의 조어로 2008년 광우병사태에 실망한 20대 중 우파로 넘어간 이들을 지칭한다. 실제로 현재 20대는 30대보다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게 ‘광우병세대론’의 근거 중 하나다(난 개인적으로 ‘광우병-천안함세대’가 더 정확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광우병 세대의 멘탈리티는 군중의 광기, 선동과 날조에 대한 경계다. 진보진영에 대한 혐오도 있다. 철학적인 족보를 찾아준다면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 사상이 밑바탕이 된다.
광우병 세대를 자처하는 이들은 2만 명이 모인 1차 촛불집회를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다가 수십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2차 시위부터 다시 광우병 알고리즘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레퍼토리는 두 가지다. 광우병사태와 프랑스혁명이다. 시위가 지속될 때마다 그속에서 광우병사태와 프랑스혁명의 난장을 찾으려 혈안이다.
‘아쉽게도’ 한달여가 지나고 200만이 쏟아져 나왔지만 찾아 헤매던 혼돈과 광기는 없다. 그건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을 지켜보는 그들만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사람들도 광우병사태에서 큰 충격을 받은 광우병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전체가 누구보다 뚜렷이 ‘Again 광우병’은 안된다고 강박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누구보다 절제하고 있다. 이성의 상실과 폭력, 싸구려 SNS선동을 경계한다. 경찰버스에만 올라가도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며 끌어내린다. 학습의 결과다.
언론의 선동에 놀아난다고 한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우리는 세월호 이후를 살고있다. 처음 고영태가 연설문 수정 인터뷰를 했을때 국민들이 믿었나. 나도 믿지 않았고 모두가 믿지 않았다. ‘경계’했다. 처음 최순실과 미르재단이 나왔을때도 경계했다. 비아그라가 나왔을때조차 ‘정말’ 고산병에 효과가 있는지가 타임라인에서 갑론을박했고 언론은 팩트체크를 했다. 우리 모두가 세월호 때 ‘기레기’들에게 치를 떨었고 지금도 비판적 지지를 보낼 따름이다.
모여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우매한건 아니다. 사람은 학습하고 성장한다. 그 증거가 연행자도 부상자도 없는 232만이다.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팔짱끼고 위에서 내려다보는건 사절이다. 모두가 광우병 세대고, 세월호 세대다.
남궁민 ‘예술을 빌려드립니다’ Paleto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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