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또래 친구들 중에 입법부(정치) 혐오와 사법부 혐오가 늘어가는 경우를 참 많이 봤다. 전례 없는 정부실패를 목격하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정서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정의감’으로 포장하는 것에는 정말 납득이 힘들다. 이게 비단 또래 친구들만의 얘기가 아닌 게, 세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이런 사람들 참 많이 봐왔다.
물론 역사적으로 누적된 정치권의 악행들과,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들을 본 사람이라면 이런 정서를 옅든 짙든 갖고 있는 것이 현실적이긴 하다. 근현대사의 상흔들을 조금이라도 목격한 사람이 이 두 집단을 맹신하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사고에 큰 문제가 있다는 얘기일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 두 집단을 지나치게 불신하고, 혐오하는 것은 결코 건전한 시민정신이라 말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저들도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는 것과, 결과조차 보지 않고 ‘저놈들은 항상 저런 식이다’고 혐오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말이다. 전자는 권력집단에 대한 시민의 엄중한 감시로 기능하겠지만, 후자는 애석하게도 시민들 스스로 행하는 자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민주공화국에서 일상적 삶을 바꾸는 큰 결정들은 입법을 통해서만 내려지고, 권리침해를 겪은 시민들이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사법에 기대는 것이다. 그런데 그네들을 무조건적으로 혐오하게 된다면, 내 삶을 좀 더 낫게 바꿀 수 있는 의사를 표명할 곳도, 억울한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 손을 벌릴 곳도 사라지게 되잖은가.
결국 우리 삶에서 떨어질 수 없는 부분이고, 혐오를 간직함으로서 변화할 부분은 없다. 결과조차 보지 않고 ‘똑같이 썩은 놈들’이라 비난을 퍼부으면, 신념을 갖고 행동하는 정치인이나 사법적 양심을 갖고 행동하는 법조인을 위한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모욕의 결과는 극도로 신념이 강한 일부 인격자와, 모욕조차 듣지 않는 다수의 철면피를 양산할 뿐이다.
기대를 가지면 실망을 하고, 그만큼 감정적 상처가 돌아오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런 참담함과는 별개로, 개중에 좀 더 나은 이를 지지하는 것이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겠나. 실제로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혐오’만 전파하면서, 정치인이나 사법부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생각을 좀 바꿔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김치년’이나 ‘한남충’이라는 멸칭이 실제 의도했던 효과를 낸 적이 있던가. 미친 짓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포기하면, 다음엔 지금보다 더 끔찍한 사람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 오십 보, 백 보라 할지라도 오십 보는 나아간 셈 아닌가.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한설 약학을 전공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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