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마지막 주말,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언리미티드에디션’이 열렸다. 언리미티드에디션은 유어마인드가 주최하며, 소규모 출판물을 제작하는 개인이나 동인이 주최 측의 참가 승인을 받아 좌판을 깔고, 방문객은 무료입장 뒤 좌판 곳곳을 돌아보며 판매자와 대화하고 출판물을 구매할 수 있는 행사다. ‘힙스터 대잔치’ 혹은 ‘힙스터들의 코믹’이라는 별명도 있다. 행사가 개최되는 장소, 전시되고 판매되는 출판물과 굿즈에 묻어있는 감성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언리미티드에디션에서는 ‘대중적’인 취향, 즉 시장조사를 통해 분석된 상업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보다, 상품성이 적더라도 창작자의 취향과 의도를 반영하는데 주력한 창작물이 주로 매매된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선보이는 소규모 출판물과 이곳에서만 판매되는 굿즈도 있다. 판매자에게는 다소 괴팍하고 불온하며 낯선 취향도 환영받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신뢰가, 방문자는 무언가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만날 거라는 기대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 소위 ‘힙스터적 속성’과도 결을 공유한다. 대중문화와 다른, 무언가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 여기에는 부정적 뉘앙스도 있다. 취향이라는 ‘패션’으로 자신이 뭔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강박적으로 주장하고 남들이 그것을 알아주길 바란다는, 즉 힙스터가 남과 다른 취향과 ‘멋’의 과시를 통해 인정투쟁을 하는 피곤한 인물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지 않았는데 힙스터로 규정당하는 경우도 있다…는 건 내 얘기다. 나는 멋져 보이는 것보다 ‘가성비’가 중요한 사람이다. ‘월간잉여’ 발간은 언론사들로부터 2년째 신입사원으로 받아들여지길 거부당한 내가 가격 대비 높은 성취감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의 생각과 경험, 그와 비슷한 정서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다른 이들의 투고를 엮어 물리적으로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는 성취감. 그 성취감을 위해 한 호당 100만 원 이하의 비용은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잡지를 만들고 4회와 5회 언리미티드에디션에 참가했다. 4회 행사 이후 언리미티드에디션의 판매자와 소비자들을 힙스터로 한 데 묶은 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지적하며 ‘홍대가 아닌 곳에서 문화 활동을 하라’는 훈계로 끝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실제로 언리미티드에디션이 열리는 공간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 중이거나 그 전조가 엿보이는 곳일 때가 많았다. 내가 참여한 4회와 5회의 행사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무대륙에서 개최됐고, 합정동을 포함한 ‘범홍대지역’은 힙스터의 성지로 불렸다. 제 6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역시나 ‘힙’한 이태원에서 이뤄졌다. 7회와 8회는 종로구 세종대로 일민미술관에서 개최됐는데, 미술관이란 공간 역시 힙하다고 여겨지는 곳이고, 그 근방 익선동 역시 ‘힙스터 동네’로 새로이 주목받는 곳이다.
장소 선정은 주최측에게도 고민거리다. 행사를 고대하고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접근성으로 보답하고, 행사의 정서와 공유하는 지점이 존재하는 공간, 그러면서 주최측에 협조적인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거라 짐작한다. 주최 측에서는 도와주는 거 하나 없으면서 훈계만 하는 사람들이 얄밉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는 얄미움을 느낀다. 힙스터를 젠트리피케이션에 주범으로 꼽는 주장을 접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주장은 소셜미디어에서 132번쯤 접했고, 올해 발간된 경제학 대중 도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으며, 바로 얼마 전 모 잡지 칼럼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저렴한 임대료를 노리고 낙후된 공간에 모여든 예술가 및 영세 자영업자와 이들의 방문객 및 소비자가 공간의 가치를 높여 결과적으로 임대료가 높아지고,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예술가 및 원주민들은 결국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맥락에서 힙스터를 비난하는 이유는, ‘니들이 자주 방문하니까 임대료가 상승했지!’라는 논리일 테다. 근데, 그럼 어쩌라고…? 임대료가 비싼 지역에서 뭐라도 먹고 즐기려다보면 임대료를 충당하려고 최대한 재료비를 낮춘 음식을 먹게 된다. 임대료가 비싼 지역에서는 프랜차이즈 업체의 음식을 먹는 게 그나마 ‘합리적인’ 소비가 되는데, 그곳에서 뭔가 새롭고 근사한 체험을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아직 임대료가 덜 비싸고, 맛과 인테리어에 특색이 있는 가성비 쩌는 지역을 찾아 갔던 것인데…. 궁금하다. 힙스터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어떤 ‘착한 소비’를 하며 살고 있을까?
이렇게 말하니 ‘힙밍아웃(힙스터+커밍아웃)’이라도 한 기분이지만, 아까도 언급했듯 나는 멋과 새로운 문화적 지식을 과시하고픈 욕망 보다 가성비 쩌는 즐거움을 수확하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 그렇지만 멋을 추구하고 문화적 지식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과도하게 비난받는 것에는 문제의식을 가진다.
뿌리가 깊고 단단한 주관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단지 힙해 ‘보여서’ 문화적 소비를 하는 것 역시 스스로의 취향을 발견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일 수 있다. 게다가 알맹이는 간과하고 표피만 취하기에 힙스터가 얄팍하다고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비판의 대상과 닮은 짓은 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떤 이의 행위를 ‘보고’ 최대한 악의적으로 의도를 추측하는 것은 그들이 비판하는 힙스터의 태도(보여지는 것만으로 판단하며 우월의식을 갖는 것)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범’이라고 힙스터가 얻어터질 동안 진짜 주범들은 잊힌다는 것도 문제다. 탐욕에 절은 건물 주인과 부동산중개인, ‘가렴주구’를 방조하고 부추기는 임대차보호법, 기득권에게 유리한 시스템을 구축한 정책입안자(a.k.a 국회의원) 말이다. 대다수의 K-힙스터는 자본이나 권력을 움켜쥐지 못했다. 적은 예산 내에서 삶의 기쁨을 안겨주는, 가성비 높은 ‘체험’을 위해 돈을 쓰는 경우가 많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문제를 느낀다면, 정말 이 현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길 원한다면, 애꿎은 개털들은 내버려 두고 다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자본과 권력이 있는 이들을 타격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지옥 같은 삶 속에서 어떻게든 ‘좋음’을 찾아 헤매고, 없으면 직접 만들어내겠다고 골몰하는 사람들을 타격하는 것보다는.
그러므로 내년의 힙스터 대잔치도 응원하겠습니다.
최서윤 월간 ‘잉여’ 편집장(a.k.a 잉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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