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민이 51.6%의 지지율로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탄핵시켰다. 탄핵 절차는 ‘촛불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시민 세력이 ‘일시적 다수’인지를 판가름하는 법률적 절차이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가 남아있다. 이 과정에서 역풍도 불 수 있으나 특별한 변수가 나타나지 않는 한 거대한 흐름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상적이고 능동적인’ 시민 세력이 주체가 된 탄핵 정국의 중심에는 ‘삼성가’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삼성가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창업공신 홍진기, 2대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3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외삼촌인 홍석현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을 지칭한다.
# 이재용·홍석현 탄핵 정국의 주·조연이 되다
삼성의 최순실 모녀에 대한 직접 자금 지원은 검찰 조사로 드러나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최순실 씨가 한국과 독일에 설립한 회사들의 자금 거래 내역 등을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넘겨받아 조사하던 중 삼성전자가 280만 유로(약 37억 원)를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에 송금한 사실을 포착했다. 지난해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지배구조와 경영승계는,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에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함으로써 완결되었다.
이 사안과 삼성의 자금 지원 간의 대가성 여부를 밝혀내는 게 향후 특검 수사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측근들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탄핵의 사유와도 맞물리는 사항이다. 그러나 탄핵소추안에는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이 빠져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은 7일 일성신약 외 4인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합병무효의 재판을 마무리하고 15일 선고를 남겨둔 상황이었으나 변론재개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특검의 수사를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삼성가 3세 이재용 지배구조는 특검에서 최종 판가름 나는 셈이다.
홍석현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은 결과적으로 최순실 게이트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다. 대통령 탄핵에 이르게 된 큰 물줄기를 보면, 최순실 씨가 태블릿PC로 대통령의 연설문이나 기타 자료들을 사전에 입수·수정했다는, 홍 회장 산하의 JTBC 10월 24일 보도는 다음날 대통령의 1차 대국민 사과와 이후 민심에 불을 지펴 대통령 퇴진 주장과 국회 결의의 탄핵 정국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홍 회장이 이해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불가역적인 이유는 삼성가의 특별한 일원이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외삼촌이면서,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관장의 동생이다. 여전히 이건희 회장은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주식 3.4%, 삼성생명 주식 20%, 기타 계열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삼성그룹의 오너다. 이건희 회장은 사망과 동시에 상속이 개시된다. 법률상 배우자는 사망자 재산에 대한 우월적 권리를 상속받게 된다. 이는 홍 회장이 탄핵 정국에서의 자신의 위상을 발판삼아 삼성가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말한다.
또 한편으로는 홍 회장이 탄핵 정국 이후 국내 보수 측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인해 국회 탄핵소추가 부결될 수도 있으나 현 정국의 흐름으로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러한 홍 회장의 탄핵 정국에서의 위상 때문에 10월 24일의 JTBC 보도와 관련한 태블릿PC 입수 경위가 중요하다. 따라서 탄핵 결의 하루 전인 9일, 태블릿PC 입수 경위 보도는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사주인 홍 회장 입장에서는 탄핵 결의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탄핵이 가결될 수도, 부결될 수도 있기에 이에 대비한 포석의 의미로도 읽힌다.
홍 회장 자신의 대권 의지 또한 높은 것으로도 알려진다. 홍 회장이 2016년 2월 19일 포스텍에서 명예공학박사를 받으며 했던 연설은 이렇다. “저는 노무현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임명을 받게 됩니다. 미국 대사직과 함께 차기 유엔사무총장 후보 내정의 약속을 갖고 워싱턴에 부임했습니다.” 그러나 홍 회장은 2005년 일명 ‘삼성X파일’ 보도로 주미대사직에서 물러났고,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 후보가 됐다. 탄핵 정국 전·현 여권 및 범보수 진영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포지셔닝 돼버린 반기문 총장은 박 대통령의 탄핵으로 후보로서의 위상이 추락해버렸다.
# 최순실 사태의 주체는 삼성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과 현안만을 쫓다 보면, 본질을 놓치는 수가 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그의 발언을 보자.
“재벌의 탐욕이다. 최순실 배후에 재벌이 있다. 재벌이 박근혜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찾아 돈으로 매수한 거다. 이게 사건의 본질이다. (중략) 삼성이 왜 잘 알려지지 않은 최순실에게 35억 원을 줬겠나.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을 설립하기 전에 삼성이 단독으로 건넸다. 대통령과 가까운 비선실세를 매수한 거다(‘시사저널’ 인터뷰).”
‘삼성이, 최순실을 매수하여 대통령을 농락했다’는 것을 재벌 용어를 섞어가며 우회적으로 말한 것으로 읽힌다. 정국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주요한 정치인의 이러한 인식은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상황이다. ‘삼성은 국정을 농단할 정도의 어마무시한 괴물 집단이 아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지난 6일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의 이재용 부회장의 청문회 광경이 회자되고 있다. 대부분 텔레비전을 지켜본 이 들은 ‘이 부회장이 글로벌 기업 삼성을 감당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구나’, ‘저런 이가 어떻게 회장을 하느냐’, 심지어는 ‘바보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삼성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자신도 이와 비슷한 주변의 반응들을 보고 “삼성이 성공했구나! (바보 이미지를 통해) 삼성이 국가를 흔들 정도가 아니구나라는 이미지 어필에 성공했다”고 했다. 이 전문가는 시청자들이 이재용 부회장이 울먹인다고 느끼는 표정을 보고서,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이재용은 2000년대 초부터 PI(President Identity)팀을 운영한다는 소문이 홍보대행업계에 회자된 적이 있다. PI는 개인 이미지 관리 홍보를 말한다. 주로 영상과 스틸로 특정인의 호감도를 높이는 홍보 영역의 한 분야이다. 그러한 PI팀이 이번 청문회에 투입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이재용 부회장은 서울대, 일본 게이오대, 미국 하버드대 등의 학벌이나 세계적인 경영자들과의 교류에서도 보듯이 똑똑한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 미래전략실 최지성 부회장 ‘토사구팽’
그래서 어떻게 보면 바보스럽기까지 한 이미지 어필이, 최순실 게이트로 삼성이 이번 사태의 몸통일 수 있다는 국민들의 시각을 많이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는 가운데도 이 부회장은 조직 장악을 위한 삼성 내부를 겨냥한 메시지 전달을 확실히 하는 등 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전환했다는 평가도 있다. 울고 싶은데 뺨 맞았고, 손대지 않고 코도 풀었다는 식이다. 그 대표적인 게 그룹 미래전략실 해체 및 전경련 탈퇴 관련 발언이다.
미래전략실의 역사는 이병철 선대 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병철 회장은 비서실 조직을 만들기는 했으나, 자신을 보좌하는 기능을 넘지 않도록 했다. 이를 무소불위의 그룹 컨트롤 타워로 만든 이는 소병해 전 비서실장으로 평가받는다. 비서실 조직은 이후 삼성의 광폭적인 성장기에 삼성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지금 미래전략실장은 ‘이건희 사람’인 최지성 부회장이다. 최 부회장은 가전영업통이다. 이 회장은 3세로의 지배구조를 넘겨주는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정통성을 보완해주기 위해 그룹의 덩치를 더욱 키우는 것에 주력했고, 그 적임자로 전임자들과는 달리 관리통이 아닌 영업통을 그룹 컨트롤타워에 앉힌 것이다. 그러나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런 유고로 최지성 부회장의 주 임무는 그룹 위기관리가 되었으나 이런 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해 지배 구조를 확보한 뒤에 인적 쇄신을 위한 물갈이를 위해서는 옛날 경영 방식을 채택하는 최 부회장을 내보내야만 한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그룹 2인자에게 경영을 위탁한 것과 달리 직접 경영을 고집한다. 미래전략실의 해체는 이미 예견돼 왔다.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건이 삼성전자 마케팅 사업부문의 신제품 개발 독려 때문에 엔지니어부문에서 이를 수용하지 못해 일어난 것이고, 그 주동자로 삼성전자 마케팅 전문가인 최 실장이 꼽히고 있었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난 뒤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이양 과정에서 조직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자주 나왔다. 그 첫 번째가 2014년 말 실적부진 책임을 물으리라는 당초의 예상과 달리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수뇌진이 유임되었고,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 이후의 사고 원인이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은 채 완제품 교환 발표의 조치가 그랬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배터리 생산 공급업체인 삼성SDI의 국제적인 신뢰도가 추락해 버렸다.
# 이재용, 삼성가에서 가장 정치적 인물
이재용 부회장은 이병철 선대 회장, 이건희 회장과 비교, 정치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병철 회장은 1966년 소위 한비 사건 이후 경영에서 은퇴, 용인 한옥에서 보냈다. 이건희 회장은 정치적 쟁점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폐질환을 이유로 장기 외유에 나섰다.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는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더욱 바빠졌다. 그가 지배구조를 사실상 완성하는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 이전에는 대통령의 힘이 더욱 필요했다. 그는 대통령 곁에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대통령 역점 사업인 창조경제센터 설립식 등 독대든 아니든 이 부회장과 박 대통령은 주요 행사에 자주 등장한다.
삼성은 이재용-박근혜 사진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취임 초기만 해도 국민지지도가 높았던 박 대통령의 이미지를 경영 승계 정통성이 약한 이재용 부회장이 이용한 셈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삼성은 이제 이재용이 주인이구나’ 하는 의식을 갖도록 언론플레이에 총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12월 인천 송도 삼성 바이오 공장 기공식에 박 대통령은 6명의 각료를 대동하고 참석한다. 행사가 끝 난 오후에 각료 중 2명이 경질된다. 장관이 행사 도우미로 쓰인 것을 보면서 삼성의 힘을 실감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삼성이 사실상 박근혜 정권을 접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이때의 생각이 불행히도 맞아 떨어졌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의 설립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전경련, 대통령의 비선실세를 접촉하고 로비를 집행한 그룹 미래전략실은 삼성이 정권을 접수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졌고 이제 소용이 없어졌다.
# 홍석현과 이재용의 ‘buddy-buddy’
JTBC 손석희 사장의 브랜드 파워가 무섭다. 페이스북 등 SNS에는 그와 연관되어 JTBC 사주인 홍석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태블릿PC 입수 경위 보도가 기대에 미흡했음에도 문제되지 않았다. 손 사장의 브랜드 파워로 덮고 있는 분위기다. 홍 회장은 ‘중앙일보’와 손석희 브랜드를 중심축으로 하는 JTBC를 함께 보유함으로써 좌우 진영의 스펙트럼을 끌어안는 무서운 힘을 가지게 되었다.
중앙일보는 기사의 편집 방향과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사설과 칼럼을 통해 이미 좌우 균형을 가지게 되었다. 즉 탄핵 정국에서 홍 회장은 국민들로부터 언론인으로 가장 신뢰를 받는 손 사장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의 사주이며 그 자신이 박근혜를 대신하는 범보수 진영의 대통령 후보로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탄핵에 들어간 대통령과의 관계가 조명되는 게 부담스러워진 상황에서 홍 회장에게 의존하는 관계가 되었다.
탄핵 정국 중에도 촛불 민심은 여전히 일상적으로는 탄핵 심판을 결정할 헌법재판소를 주목하고 있으며, 능동적으로는 대통령을 넘어 기득권 세력 전체를 겨냥하고 있다. 촛불은 아직은 삼성을 향할 조짐은 없다. 그러나 특검의 수사 경과에 따라 촛불이 서초동 삼성 사옥으로 향한다면 이 부회장이 홍 회장과 손 사장에게 SOS를 칠지도 모른다.
심정택 ‘삼성의 몰락’ ‘이건희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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