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에서 현재를 살아가지만 결코 시대에 뒤떨어져 있지 않고 오히려 누구보다 풍성하고 만족스러워하는 유럽의 도시들이 부러웠다면, 부산으로의 여행이 어느 정도 대안이 될 듯하다.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으되 여전히 현재에 살아 숨 쉬며 영원할 것 같은 도시. 어느 세대에게는 진한 향수로 남은 시절의 이야기와 그 어느 도시보다 빠르고, 화려하게 바뀌는 신도심의 이국적이기까지 한 풍경 등 부산은 긴 시간의 스펙트럼이 동일한 속도감으로 공존하는 곳이다.
한 겹 한 겹 쌓인 시간을 들춰보는 즐거움이 있는 부산의 원도심 가운데서도 오랜 세월 중심축이 되어 왔던 초량으로 산책을 떠났다.
초량의 역사와 마주한 첫 풍경, 차이나타운
부산 동구의 초량동은 부산 원도심의 여러 지역 가운데서도 부산의 성장에 구심점이 되었던 곳이다. 근대를 지나면서 경부선 철도가 연결될 당시 부산역이 이곳 초량에 세워졌고, 17세기부터 우리나라 최대의 왜관이 있었음은 물론, 개항기를 지나며 외국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무대이기도 했다.
초량에 오랜 차이나타운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1884년 청의 대사관이 초량에 세워지면서 그 주변으로 화상들이 속속 자리를 잡은 것이 지금의 초량 차이나타운이다. 부산시와 중국 상하이 시가 결연을 맺으면서 공식적으로는 이 일대를 ‘상하이 거리’라 부르기도 한다.
전 세계 차이나타운 어디든 입구에 세워져 있는 화려한 중국풍의 패루(정문)를 들어서면 길 좌우로 온통 붉게 단장한 간판과 등이 걸린 상점가가 펼쳐진다. 상점가들은 기념품이나 중국 식품을 팔거나 중화요리를 선보이는 곳들이 대부분. 간간이 가게 앞에 모여 앉은 이들이 나누는 중국어 대화도 거리에서 들을 수 있어 이국적인 정취가 제대로 스며 나온다.
이 거리의 중화요리점들 가운데서는 이미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곳들이 여럿 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자신이 감금된 곳을 추적하기 위해 군만두를 먹던 장성향을 비롯해 쫄깃한 만두피와 그 속에 가득 고인 육즙, 그리고 살짝 독특한 중화풍의 향채가 느껴지는 독특한 맛의 만두로 인기 있는 마가만두 등이 그렇다.
원래 차이나타운으로 오랜 시간을 견뎌온 거리지만, 이제 ‘외국인 거리’라는 좀 더 ‘글로벌’한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항을 통해 들어오거나 부산에 체류하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인들을 위한 식당, 의류점 등이 속속 화교들의 공간을 대신하고 터를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관광객과 선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 점점 ‘차이나타운’의 기세를 잃어가는 듯도 하지만, 여전히 화교 학교와 그 담벼락의 삼국지 부조 등이 이 거리의 전통을 말해주고 있다.
초량이라면 충분히 당연해 보이는 풍경, 근대문화유산
초량의 역사와 문화를 둘러보는 테마길인 ‘초량 이바구길’의 출발선상에 있는 초량교회와 백제병원, 그리고 남선창고 터 역시 이 지역의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으로 손꼽힌다. 이 중 초량교회와 백제병원은 설립 당시의 모습을 거의 대부분 간직하고 있어 그 독특한 건축 양식과 외관이 눈길을 끄는 곳들이다.
초량교회는 이바구길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언덕배기, 초량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다. 1892년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가 서당이었던 건물을 매입해 세운 초량교회는 부산 최초의 교회로,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지로도 인기 있다. 현대식 건물 일부를 증축한 것 외에는 한눈에 봐도 예스러운 기운이 스며 있는 벽돌식 교회 외관이 눈길을 끈다.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에도 활발히 개입했고, 특히 신사참배 거부에 앞장 선 곳으로 역사적인 의미도 깊다.
이바구길을 오르기 전 차이나타운에서 머지않은 자리에 옛 백제병원이 있다. 붉은 벽돌을 쌓아 5층 건물로 지어진 이곳은 1922년에 한국인이 설립한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 종합병원이었다. 이후 중화민국 영사관, 중화요릿집 등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일부 공간에 사무실과 상업 시설이 들어서 있을 뿐 대부분의 공간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주변의 현대식 건물에 둘러싸여 있어도 그다지 ‘튀지’ 않을 만큼 세련된 외관은 여전하다.
그 바로 옆에 한 대형 마트의 주차장이 있는데, 이곳은 남선창고였다. 1900년 지어진 부산 최초의 대형 창고인데, 북에서 배로 들여오는 물건들을 보관했다고 해서 북선창고, 명태를 보관해서 명태고방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단다. 근처 경부선 철도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인 부산역이 있어 철도를 이용한 수송에도 요긴하게 쓰였다. 지난 2009년 허물어지고 주차장이 되었지만, 지금도 주차장 한편에는 옛 창고의 외벽 일부가 남아 있다.
부산과 한국의 현대사의 이야기를 따라간 언덕배기, 초량 이바구길
부산은 대도시면서도 높고 낮은 산을 모두 끌어안고 있기에 유난히 터널도 많고 지역의 높낮이 편차도 심하다. 손수 운전을 하면서 부산을 다니다 보면 겨울에 어찌 오르나 싶은 아찔한 오르막내리막 길이 무시로 나타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길을 부산에서는 ‘산복도로’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가파른 지형은 어김없이 대규모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고 꽤 오래전에 그 규모를 갖춘 듯 보인다. 부산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매우 이색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부산 원도심을 대표하는 초량동 역시 이런 곳들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초량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부산에 도착한 뒤 거처할 곳을 찾아 산으로 잦아들면서 초량동의 비탈진 언덕배기에 터전을 마련하면서 만든 독특한 동네 분위기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그대로이다. 이 오랜 산마을을 따라가며 옛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지난 2013년에 만들어진 문화 체험길이 ‘초량 이바구길’이다. 이바구는 경상도 사투리로 대화 혹은 이야기를 뜻하는데, 초량동이 품은 역사와 사람들의 사연을 이야기 나누고 듣는 길이라고 풀어봐도 좋겠다.
이바구길이 시작되는 초량초등학교와 초량교회 사이에는 초량동 출신의 문학가와 정치가,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 등 기릴 만한 이들을 담은 거리 전시물과 초량과 부산의 옛 모습을 전하는 전시물들로 이바구길의 시작을 알린다. 초량 출신 혹은 초량에 거주했던 스타로 나훈아, 이경규, 박칼린 등을 소개하는 전시물은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윽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기를 죽이는 ‘168계단’과 초량의 역사와 주민들이 기증한 옛 물품 등을 전시한 ‘이바구공작소’, 초량에 머물며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삶을 산 장기려 박사의 기념 공간인 ‘더 나눔’ 등이 초량동과 부산의 현대사를 들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명소’들에 앞서 여전히 가파른 계단 옆에 지은 집에서, 언덕을 따라 이웃과 지붕을 층층이 이어가며 살아가는 초량 주민들의 삶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시간은 그 어떤 도시 여행보다 많은 생각과 푸근함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무엇보다 이 비탈진 마을이 부채꼴로 펼쳐지며 저 앞바다를 향하는 풍경은 초량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워질 충분한 이유가 된다.
남기환 여행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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