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를 이 영국 땅에서 시청할 줄이야! 가끔 청문위원의 송곳 같은 질문에 쩔쩔매는 증인들을 볼 때는 해당 위원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하지만 그런 광경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언성을 높여가며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답은 판에 박힌 것뿐이다.
국회의원들이 이 청문회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것은 대략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국민적 관심사가 있는 문제에 관해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이 파악한 사실에 의거 증인(관련 공무원, 재벌 등등)을 질책하는 것이다. 전자를 위해선 제대로 된 심문방법을 알아야 하고, 후자를 위해선 위엄 있고 절도 있는 언어구사력이 있어야 한다. 나는 오늘 이 두 가지 중 전자에 대한 방법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문답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기에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수준이 높지 않다. 하기야 이게 어디 그 개인의 책임이겠는가. 우리 교육의 근본적 문제다. 우리는 의외로 논리적으로 글을 쓰고, 말하는 것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 2000년 전 그리스 소피스트들이 체득한 그 논리학과 수사학을 우리는 모른다.
이 문제는 변호사를 경험한 나로서는 지난 30년 동안의 숙제였다. 변호사 시절 적잖게 법정에서 증인심문을 했는데, 내 증인이 아닌 반대증인의 경우, 증인심문을 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반대증인이기 때문에 내 의도대로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심문방법에 따라서는 적잖은 소득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에 익숙지 않아서였다.
다행스럽게도 변호사 경험이 많아지면서 반대증인에 대해 어떻게 하면 소득 있는 심문을 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터득케 되었다. 오늘 그 방법을 공개하니 국회의원들은 참고했으면 좋겠다. 지금 청문위원들은 역사적인 청문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은 기간이라도 용의주도하게 질문해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밝혀보길 바란다.
1. 질문을 통해 상대가 즉석에서 항복하기를 기대하지 말라.
청문회 심문의 목적이 증인을 상대로 질책하는 것이라면 의원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기초로 따끔하게 혼낼 수 있다. 하지만 질의의 목적이 사실 발견에 있다면 상대로부터 항복받을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의원은 자기 질문에 대해 상대가 그것을 인정하고 즉각 잘못을 시인하길 바라지만 대체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단 몇 가지라도 상대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2. 질문 속에 의도를 보이지 말라.
원래 자기 증인은 질문을 하면 질문 의도대로 답이 나온다. 하지만 반대증인(청와대 공무원, 재벌 등등)은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에 의도가 담겨있으면 답은 그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상반된 답이 나오게 된다. 그러니 질문할 때 가급적 의도를 보이지 말라. 상대로 하여금 ‘저 질문 별 것 아니구나’ 생각하게끔 질문하라.
3.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 여부를 묻지 말고 그저 사실을 캐물어라.
애당초 제대로 된 답이 나올 수 없는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장관은 최순실과의 친분관계 때문에 장관으로 임명된 게 아닙니까?” 이런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장관은 없다. 이런 질문보다는 “장관은 최순실을 한번이라도 만난 사실이 있습니까?” 이렇게 묻는 게 좋다.
상대가 부인하기 힘든 사실, 제보가 있다면 그 제보에 입각한 사실을 물어보라. 단 이때는 제보가 있음을 알려주지 말라. 자칫 부인하면서 그 제보자가 누구냐고 되묻는 역공을 당할 수가 있다. 그저 상대가 질문을 받았을 때 ‘아 저 질문은 제보에 의한 것이군. 그러니 자칫 거짓을 말하면 위증 문제가 생기겠다’라고 스스로 생각게 하는 게 좋다. 그러면 최소한의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4. 어떤 사실에 대해 원하는 답이 나왔으면, 즉석에서 그 답변사실에 기초한 판단을 말하지 말라.
이런 상황이 제일 안타까운데, 상대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중요한 사실 하나를 답했다면, 그대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게 좋다. 그렇지 않고 즉석에서, 그 답변사실에 입각한 판단을 말하면, 상대방은 종전 답변이 착오에 의해 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주어 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판단은 질문이 다 끝나고 다른 자리(기자회견 또는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말하면 된다(꼭 질의시간에 자신의 판단을 말하려면 상대방을 자리에 돌아가도록 하고 마무리할 때 하라). 원하는 답변이 나온 상황에서 그것을 철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절대로 안 된다.
5. 위증이 명백한 경우 반대사실로 추궁하는 것을 삼가라.
4의 경우와 반대되는 경우인데, 어떤 경우는 의원이 가지고 있는 확실한 정보에 반하는 답변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때는 그 정보에 입각해 즉석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영악한 상대방은 그것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단번에 종전 답변이 착오에 기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답변을 정정한다. 이렇게 되면 위증으로 고발하기도 어렵다.
6. 사실관계를 추궁하려면 가급적 짧게 질문하고 상대의 답변을 명확하게 구하라.
어차피 진실게임을 하는 것인데 상대를 확실하게 몰아야지 도망갈 구멍을 넓게 열어주면 안 된다. 국회의원 상당수의 질문이 저게 사실을 캐는 질문인지, 그저 의견을 구하는 질문인지 알 수가 없다. 질문의 목표를 세우고 제발 연습 좀 하고 나와라.
7. 다음 사항을 항상 마음속에 다짐하고 숙지하라.
‘상대는 절대로 내가 원하는 답을 말하지 않는다. 상대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관계 하나만 얻겠다는 마음으로 질문을 하겠다. 청문의 성공 여부는 내 질문과 그 답변을 듣는 국민이 할 것이다. 청문회 스타는 국민이 판단해 인정해 주는 것이지 스스로 등극하는 게 아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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