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 있다. 자신을 ‘일찍 일어난 벌레가 잡혀 먹힌다는 각오로 다가오지 않을 내일 보다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당장을 재밌게 놀고자 애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입 진보에서 벗어나야”한다며 정의당 ‘디스’하는 2016년 총선 정의당 비례대표 12번을 받았다. ‘인간실격패 알고 보니 부전승’이라는 술집 주인이면서 직접 소개한 직업은 스토리텔러란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풍자 포스터로 인해 벌금 30만 원을 부과 받은 일도 있다. 강드림. 5년 전 ‘꿈꾸며 살자며’ 그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그를 지난 10월 20일 그의 가게 인간실격패 알고 보니 부전승에서 만났다. 이날은 그가 가게를 정리하기 이틀 전날이기도 했다.
―자기소개를 한다면.
“32세, 직업은 기생. 술집을 운영하면서 글 쓰고 음악하고 때론 춤도 추고, 정치도 하고 다양한 ‘짓거리’로 대
중을 위로하고 또 그들로부터 일종의 적선으로 먹고 살아요. 그래서 직업이 기생인 거 같아요. 기생 혹은 광대”
―‘인간실격패 알고 보니 부전승’이라는 술집이라는 이름이 되게 특이하다. 어떻게 짓게 됐나.
“제가 6년 전에 쓴 단편소설의 제목이면서 무대입니다. 약간 ‘심야식당’과 유사해 보일 수도 있는데요. 보통 술집 사장들이 술집을 여는 목적은 이익 추구잖아요. 소설 속 술집 사장의 목적은 이익 추구가 아니라 이야기를 채집하려고 술집을 엽니다. 가게에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가 괜찮으면 그냥 술을 내어주기도 하는 등 이상한 술집 사장의 이야기인데요. ‘이걸 현실로 옮기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으로 5년 전에 창업을 했죠.”
“가장 큰 것은 우선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한국에서 글이나 음악 하면서 먹고 살 수 없으니깐 어떻게, 뭐 먹고 살까. 지금까지 해왔던 예술 활동을 계속 하면 더 지독히 가난하게 살아야 되고, 반대로 최소한의 삶을 위해 무언가를 하다가 여기에 신경을 너무 써버리면 예술 활동을 못하잖아요. 두 가지를 다 잡을 수 없을까? 지속 가능한 예술 그걸 하기 위해 어떤 것을 직업으로 잡아야 될까? 무슨 ‘메인 잡’을 뛰면서 예술 활동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까. 그게 술집이었던 거 같아요.”
―여기 가게를 운영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나요, 재밌는 얘기를? 술집 하신다고 하셨는데.
“영업이 끝나면 제가 매출 장부는 안 쓰는데 고객 장부는 써요. 누가 다녀갔는지 이름 프로필이 아니라 이미지를 스케치 하는 거다. 이 사람이 나한테 했던 이야기 혹은 내가 이 사람을 보면서 예측했던 이미지를 하는 거죠. 5년 했으니깐 얼마나 많을까, 지금 한 20권 가까이 될 것 같아요. 그게 이 가게를 하면서 가장 큰 자산이 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형편없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단편 소설 하나는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그걸 정리하면 소설이 될 것 같아요.”
―이 가게를 하면서 제일 좋았던,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예쁜 여자랑 술 먹는게 가장 큰 행복입니다.”
―그러면 제일 싫을 때는 언제인가.
“이야기하기 싫은 사람과 억지로 이야기 해야 되는 거…. 이야기하기 싫은 사람은, 미리 선을 그어버리고, 변화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하지만 존재만으로 피곤한 분들이 계시거든요.”
―술집을 하면서 돈은 좀 벌었나.
“전혀요.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막 친고객적이거나 친수익으로 가지 않아서요. 일례로 말씀드리면 첫 번째 가게가 주 2일, 금요일, 토요일만 영업했습니다. 주에 이틀을 쉬는 게 아니라 이틀만 영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월세 밀린 적 없어요. 홍대에서 주 이틀만 영업하면서도 먹고 살았다는 것이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서 수익을 많이 남길 수는 없죠. 월세 내고 가게 운영비용과 제 간단한 용돈 정도 벌었습니다”
―첫 번째 가게라면 이곳은 몇 번째 가게인가.
“(홍대에서) 최고의 만족을 이미 누렸다고 생각해서 2년쯤 후에 일을 그만뒀어요. 또 너무 노니깐 루즈해져서 어떻게 하다보니깐 시작하게 된 곳이 신촌이 됐네요. 여기가 시즌 2고요. 시즌 2는 얼마 못 갔어요. 지겹더라고요. 술집에 허무함이 생겨서. 시즌2는 한 8개월 했나봐요”
―그럼 이곳은 시즌 몇인가.
“여기가 시즌 2면서 5에요. 3년 전에 제가 한 8개월 정도 하고 ‘아 이제좀 귀찮다’고 여기를 아는 동생들에게 맡겨놓고 저는 춘천에 가서 시즌3로 게스트 하우스를 했어요. 시즌4는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에 떡볶이 가게까지 합니다. 올 초에 제가 총선 출마와 재판 때문에 제주 일을 정리하고 기존에 운영하던 시즌2를 리모델링해서 지금의 시즌5가 된 거죠. 또 이것도 얼마 못가고 또 시즌6 하러 가요. 시즌6는 제주도. 시즌5는 이번 주 토요일이 마지막이에요.”
―시즌이 몇 까지 갈 것 같나.
“저는 평생 갈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시즌 한 10쯤 되면 ‘상상불가 정도의 사이즈가 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구상해봅니다. 제가 그만큼의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라. 그 정도 되는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몇 건씩 연락이 오고요. 저는 제 직업을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야기를 소설로 담을 수 있고 영화로 담아 낼 수 있고 드라마로도 담아 낼 수 있는 거잖아요. 사업으로도 담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내판에 ‘신청곡 따위는 안 받는다’고 써 있다. 그 스토리 중에 반 고객적인 요소도 있는 건가.
“예. 너무 손님들에게 맞춰주는 풍토에서 저항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고요. 신청곡을 틀어줘야 된다는 의무는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어폰이 있잖아요. 직접 듣든가 아니면 클럽을 가지, 여기는 술집인데요.”
―사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게 있다면.
“20,30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도 있고. 대기업이나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시해주고 싶어요. 제 콘텐츠의 가장 핵심적인 기재는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먹고 살자’, ‘싫은 거 억지로 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 하자.’ 떼돈을 벌자는 게 아니고 최저 시급 플러스 최소 문화비용 저는 이것을 200만 원 정도로 보고 있어요. 딱 그 정도 벌기위한 노동을 하되 재밌고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거여야만 한다. 이런 식의 사업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면 그 많은 20, 30대 훌륭한 인력들이 대기업, 공무원 등 한정된 출구로 몰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자영업자로 살아남은 비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저는 이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외로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던 거 같아요. 저는 외로움을 잡아갔던 게 주요했다고 봐요. 제가 술집, 게스트하우스, 떡볶이 가게를 하면서 항상 잡으려고 했던 건 외로움, 공허함이에요. 그걸 잡을 수만 있다면 저는 굶어 죽을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정의당 비례대표 12번을 받았다. 비결이 무엇인가.
“저는 정의당의 실책이라고 생각해요. 정의당이랑 사이가 안 좋습니다. 정의당에서는 저를 좀 무시하고 생략합니다. 제가 뭘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항상 갖고 있고요. 별로 사이가 안 좋습니다. 제가 정의당을 많이 ‘씹었’어요. 이 머리하고 제가 국회 가서 출마 선언을 했거든요. 진보 정당 출마 발대식이 되게 엄숙해요. 그 사람들은 몸에 밴 게 있어서요. 그런데 정치라는 게 국회의원이 300명인데요. 어떻게 5000만 국민을 나름 대변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다 똑같고 한결같을 수 있는지. 소위 ‘힙스터’나 프리랜서 예술가들 이런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는 없거든요. 어떻게 그 많은 국회의원들이 똑같은 머리를 하고 똑같은 정장을 입고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죠. 전 그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싶어요.”
―아무리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도 정치라는 게 어렵기도 하고 출마하는데 돈이 꽤 드는데, 출마까지 하게 된 계기가 있나.
“퍼포먼스적인 성향도 조금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이 정도로 미워하고 조롱하고 있다. 이런거죠. 보통 ‘나는 니들이 싫어. 그래서 투표 자체를 안 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그들한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하거든요. 내가 같이 출마해서 저들을 우스운 사람으로 만드는 게 가장 큰 공격이라고 생각해요. 진보고 보수건 간에 저를 제 자유를 억압하고 이 세상을 재미없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저는 굉장한 분노가 있습니다. 난 되게 재밌고 발랄하게 살고 싶은데 내 세계관을 자꾸 막으려는 놈들이 있어요. 그들에 대한 분노, 혼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비례대표 12번 받은 게 놀랍다. 정의당이 열려있다는 뜻 아닌가.
“열려있는 척을 하고 싶었다. 그 상징적인 표현으로 나를 꽂은게 아닌가 싶어요. 선거 때 저를 부르지 않더라고요. 저는 혼자 선거운동 했어요. 홍대랑 신촌 돌아다니면서 혼자 버스킹하고 선거운동 했어요.”
―그러면 다음은 정의당으로 안 나가나.
“내년에 정의당 당대표 선거가 있습니다. 거기 고민하고 있습니다. 훨씬 스케일이 큰 거죠. 정의당의 당대표를 검토 중입니다”
―이런 계획을 이렇게 밝히셔도 되나.
“긴장해라 이거죠. 아니 그럼 내가 한다고 해서 뭐 나갈 사람이 안 나가고 이런 거는 아니죠. 저는 간보는 어법들을 안 좋아하거든요. 나갈 거면 그냥 얘기하지 만날 저는 국민의 뜻에 국민이 원한다면 이런 드립을 하잖아요. 정의당 당 대표 선거를 국민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겠어요. 관심 없거든요 사실 이렇게 얘기라도 해주면 ‘아 정의당도 당 대표 선거를 하는구나’ 감사해야 될 지경이죠.
―아 그래요?
“그니깐 훨씬 스케일이 큰 거죠. 정의당의 당 대표… 정의당의 왕을 뽑는 선거… 그거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런 계획을 이렇게 밝히셔도 되는 건가요?
“긴장해라 이거죠. 아니 그럼 내가 한다고 해서 뭐 나갈 사람이 안 나가고 이런 거는 아니죠.”
―그래도 보통 이렇게 당 대표 선거나 대권 이런 정도는 보통 미래는 모르는거다 라는 정도로 하잖아요.
“저는 그런 어법들을 안 좋아하거든요. 나갈거면 그냥 나가면 되지, ‘저는 국민의 뜻에’ ‘국민이 원한다면’ 이런 드립을 하잖아요. 그래서 ‘출마 준비 중입니다’라고 하는 식으로…. 정의당 당대표 선거를 국민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겠어요. 관심 없거든요 사실. 내가 이렇게 얘기라도 해주면 ‘아, 정의당도 당 대표 선거를 하는구나’ 하고 감사해야 될 지점이죠. 사람들이 정의당이 뭐 하는 곳인지 모르니깐 내가 이렇게라도 얘기해줘야 정의당에 대한 브랜드 가치가 생기는 거니깐…. 불쌍해서 해주는 거에요. 가끔 보면은 정의당 어지간한 국회의원보다 제가 좋아요가 더 많아요. 정말 한심한 경우죠.”
―만약에 진짜 국회의원이 되면 뭐 하고 싶나.
“국회의원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공동발의를 해야 되는데 제가 내는 발의를 쉽게 협조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국회의원 한번 된다고 해서 엄청난 변화가 나오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러 가지 논쟁거리를 저는 끊임없이 몰고 다닐 것 같아요. 가령 머리나 의상에 대해 걸고 넘어지겠죠. 왜 국회의원들은 꼭 2:8 가르마를 해야 되는 건가. 국회의원은 이런 머리를 하면 안되는 건가. 또 이런 식의 법안을 만들 것 같아요. 넘어져도 일으켜 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이요. 청년들이 도전하라고 얘기하지만 넘어졌을 때, 사회에 전혀 완충장치가 이뤄지지 않았잖아요. 우리 사회는 한번 넘어지면 끝이거든요. 청년에게 도전하라고 말하기 위해서 사회는 넘어져도 금세 일어나거나 다치기 않게끔 완충장치를 만들어 주는 게 일이라고 봐요. 저는 그런 쪽의 법안을 주로 발의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인간실격패 알고보니 부전승’ 강드림 인터뷰(2)로 이어집니다.
김태현 기자
toy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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