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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노포열전] 대한민국 족발은 여기서 시작됐다, 평안도 족발집

2016.12.06(Tue) 11:43:40

사담인데, 며칠 전에 이 칼럼에 소개했던 ‘어머니대성집’에 갔다. 늦은 아침을 먹는데 아는 분이 앉아 있다. 반갑게 인사했다. 바로 장충동 ‘​평안도 족발집’​의 이경순 여사(84)다. 구면이다. 장충동에는 족발집이 많다. 그 원조 중의 원조가 바로 이 여사의 집이다. 안 그래도 이 집에 가면 ‘원조 중의 원조’라고 써놨다. 원조가 아닌데, 다른 집이 자꾸 원조라고 하니 그리 되었다고 씁쓸하게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요즘 외식업에서 가장 뜨는 게 족발이다. 프랜차이즈의 스타이기도 하다. 통계는 없지만 세계에서 우리가 제일 많이 먹는다. 오죽하면 족발 원조국 중 하나인 독일에서 수입을 하겠는가. 독일은 ‘학세’라고 하여 흔한 대중음식이다. 한번은 독일서 이 메뉴를 시켰더니 1인분에 족발 한 개가 턱 나와서 깜짝 놀랐다.

 

이 씨는 이북 사람이다. 47년도에 넘어왔다. 열두 살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동대문시장에서 옷 장사를 했다. 먹고살기는 힘들지 않았다. 명문 서울여상을 졸업했다. 졸업 후 회사도 다녔고 가정교사 일도 했다. 그러다 결혼했고, 얼떨결에 윗동서의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형님(이남용 여사·작고)도 월남민이야. 평안도 사람이지. 원래는 빈대떡집이었어.”

 

장충동 족발집의 시초인 평안도 족발집의 이경순 여사. 한창때는 하루에 백 개 넘게 족을 썰었다고 한다.


개업이 61년도다. 십 원짜리 빈대떡이 인기가 있었다. 원래 빈대떡은 이북 음식이다. 황해도에서는 막부치라고 불렀다. 빈대떡에 진로소주를 팔았다. 이십 원짜리였다. 얼마나 장사가 잘 되었는지 진로소주 부사장이 와서 감사 인사를 하더란다. 빈대떡만 해서는 남는 게 없었다. 60년대 말에 족발을 삶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외식 아이템인 족발 장사의 시초였다. 

“손님들이 빈대떡만 파니까 지겹다고, 다른 걸 하라고 하는 거야. 그렇게 시작한 게 족발이지.”

 

기억으로는 사백 원인가 했다고 한다. 한창 많이 팔 때는 백 개 넘게 족을 썰었다. 서울에 외식업이 흔하지 않던 때였다. 이 씨의 증언.

“당시 서울에는 서래관이라고 불고기 냉면집이 있었고 우래옥이 오두막집처럼 작을 때였는데, 참 많이도 다녔어. 불고기 하는 조선옥 그런 데 정도가 유명했어. 냉면 먹으러 많이 다녔지. 그때는 무법천지였어. 식당도 이름 없이 그냥 하는 데가 많았고, 세금 내는 집도 별로 없었고.”

 

장충동 족발의 비결을 물었다. 허탈(?)하다. 족발, 간장, 생강, 파, 양파. 끝! 한약재며 커피며 그런 건 안 넣는다. 족발이 좋으면 다 필요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맛의 비밀은 있다. 허영만 선생이 ‘식객’에도 쓴 얘기다. 족 삶은 물이다. 일종의 씨 육수다.

“어제 남은 육수에 물과 재료를 넣고 다시 삶는 거야. 그러니 우리 집 육수는 사십 년이 넘은 셈이지.”

 

장충동 족발의 비결은? 족발, 간장, 생강, 파, 양파. 끝! 족발이 좋으면 다 필요없다. 다만 전날 남은 육수에 물과 재료를 넣고 다시 삶아 맛을 유지한다고.


‘식객’에 얽힌 가슴 아픈 사연도 있다. 원래 이 집이 허 선생에게 소개된 건 고 박영석 대장 때문이다. 박 대장이 단골이었고, 취재할 수 있는 맛있는 족발집을 찾는 허 선생에게 소개했던 것. 알다시피 박 대장과 허 선생은 각별한 사이이고, 함께 히말라야 등반을 다니기도 했다.

“박영석이 아주 자주 왔어. 마지막 원정 떠나기 전에 우리 집에 들렀길래 족발을 한 접시 공짜로 줬던 게 마지막이네.”

박 대장은 알다시피 이제 우리 곁에 없다.

 

족발을 좀 먹는 분들은 앞다리를 찾는다. 살이 몰랑하고 촉촉하고 양도 많다. 더 비싸다. 그런데 족은 4개를 받는다. 뒷다리는 어쩌나. 이 씨의 설명은 이렇다.

“돼지가 발이 네 개인 걸 어떡해? 다 요리해야지.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몰라. 뒷다리도 얼마나 맛있는지. 미식가는 뒷다리를 찾는다고. 잘하는 집에서는 뒷다리를 시켜봐, 주인이 달리 볼 거요.”

 

이 씨가 알려준 한 가지 팁은 앞다리는 식었을 때, 뒷다리는 따뜻할 때 더 맛있다고 한다. 그것은 지방 함유와 앞뒤 족의 특질 때문인 듯하다. 앞 족은 살점이 많으면서도 쫀득한 콜라겐 함유량이 높다. 비계도 적당하다. 그래서 식어도 맛이 좋다. 그런데 뒷 족은 살코기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식으면 좀 딱딱해진다. 그런 까닭에 삶은 지 오래되지 않아 따뜻할 때는 뒷 족이 제법 맛이 좋은 것이다.

 

한 가지 더. 족발을 맛있게 삶는 법. 보통 족발 살점이 단단하니까 은근한 불로 삶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다르다. 시종 센불에 삶는다. 그렇게 해야 쫄깃하고 족발의 관건인 잡내를 없애기 좋다. 집에서 족발을 삶아먹으려면 간장, 생강, 파, 양파를 넣는데 생강을 넉넉하게 넣으면 냄새를 더 잘 없앨 수 있다.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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