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감상하는 미술’에서 ‘생각하는 미술’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술 표현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을 그렸느냐’에서 ‘어떻게 그렸느냐’로 옮겨 갔던 것이다.
무엇을 그렸는지는 그림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내용을 찾아내면 이해가 되고 때론 감동받기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렸는지’는 표현 방식의 문제로, 관찰하고 왜 이런 식으로 그렸을까 하는 분석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즉 작품의 재료나 방법을 찾아내고, 이것이 이론적으로 타당한지 혹은 미술사적으로는 어떤 맥락에 있는지 등을 따져보는 것으로 현대미술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가 있다.
이처럼 미술이 특정 이야기(내용)를 포장하는 수단에서 벗어나 포장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포장술이 개발됐고, 그에 맞춰 포장의 방법과 사용한 재료를 설명하는 매뉴얼이 따라 붙게 되었다. 이 매뉴얼이 미술 평론이다. 따라서 현대미술은 매뉴얼을 모르면 이해할 수가 없게 됐다. 그만큼 현대 회화에서 재료나 이를 소화해 개발한 기법은 작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박현옥은 이런 흐름에서 주목받는 작가다. 그는 꽃이나 나무 등 회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해온 구태의연한 소재를 다룬다. 그러나 다양한 재료와 방법을 터득해 독자적 화풍을 보여준다. 현대 회화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방법론에 치중하지만, 그의 작품은 여는 현대미술과는 다르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감상이 용이하다.
그는 유채, 아크릴릭, 다양한 종류의 미디엄 같은 서양 회화 재료에 석채, 옻 같은 전통 회화 재료를 개방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꾸준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재료로 만들었고, 거기에 맞는 방법론을 개발해왔다. 그래서 박현옥식 꽃 그림, 소나무 그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작업을 보면 그린다는 것보다는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유채의 물질감이 강하게 보이는 꽃 그림은 물감의 두께와 재질감으로 꽃의 실제감을 표현한다. 밑그림 없이 조성되는 꽃들은 마치 조각가가 점토를 쌓아 올려 형태를 구축하듯이 그려진다. 그래서 즉물적 생동감을 준다.
이를 통해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작가는 ‘생명의 유한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 자라고 그리고 사라진다. 생명의 사이클은 자연의 질서를 유지하는 법칙인 셈이다. 그 속에 인간도 있다. 삶이라는 순간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박현옥은 유한한 생명의 순간을 강한 물질감을 통해 잡아두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재료의 성질을 활용한 물질적 회화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회화는 생의 빛나는 순간순간을 빚어내는 긍정적 메시지인 셈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