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굴종하는 못난 검사들을 배출하는 것을 보면 사법시험 없애는 게 낫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최선의 답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같은 분을 보면 그런 생각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법시험이 워낙 어려운 시험이고 또 판검사는 사법연수원에서 사법시험을 합격한 사람들과 경쟁을 하여 승리한 사람이다 보니, 예전에 김두식 교수가 쓴 ‘불멸의 신성가족’ 속 표현처럼 “불경스러운 대중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쟁 끝에 마침내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면 국민이 위임한 검사의 권력을 마치 자기의 것인 양 착각하게 되고, 더 큰 권력을 위해 권력자에게 아부하게 된다. 분명 사법시험에 전혀 원인이 없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사법시험은 그 원인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나는 그 원인을 아래와 같이 생각한다.
첫째, 검찰은 오직 인사권을 쥐고 있는 청와대와 민정수석만이 견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집단이다. 이런 집단의 구성원은 “감히 누가 나를 건드려?”라는 사고에 잠기기 쉽다. 반면 권력에 취하면 더 큰 권력을 위해 청와대에 아부하게 된다.
둘째, 검찰은 법조일원화를 거부하고, “시민과 함께 호흡하고, 시민의 어려움을 아는 경력 있는 변호사” 대신 사법연수원 또는 로스쿨을 졸업한 신규 법조인, 그 중에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불멸의 신성가족’ 후보자만을 뽑는다(법원도 똑같지만 법원은 법원조직법이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경력자만을 뽑게 되어 있으므로 많이 좋아졌다).
셋째, 조직의 체면 때문에 과거사 사건이건 재심이건 절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도 않고 사과도 않는 조직이기주의 때문이다. 나는 사법권력을 법조 엘리트로부터 국민으로 가져오는 첫 번째 걸음으로 아무리 엘리트라도 오류를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 인지하여야 겸손해지고, 겸손해져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
원인을 이렇게 분석하면, 사법시험과 못난 검사의 인과관계는 지극히 약하고, 사법시험의 대체제로 도입한 로스쿨 역시 못난 검사들의 배출을 막는 방법으로 작용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검찰이 로스쿨 출범 이후 견제를 받기 시작했나. 아니면 신규 진입자 임용을 포기하고 법조일원화를 받아들였는가. 조직이기주의를 거두고 겸손해졌나. 로스쿨은 검찰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검찰의 변화는 검찰에 대한 견제, 감시, 민주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교만한 엘리트 검사의 끝판왕인 우 전 수석이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을까? 나는 평범한 집 아들인 우 전 수석이 어렸을 때부터 교만했을 것 같지는 않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승리하고, 승리하고, 또 승리하다보니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괴물’이 됐다고 본다. 스스로 오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을 것 같다.
그런데 로스쿨 시대는 어떤까. 로스쿨 시대는 자식을 대학원까지 보낼 자력이 있는 집 자제에게 유리한 제도다. 이런 집안 자제분들 중에서는 분명 철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 사는 사회에는 계급이 있고 존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괴물들이 많을 거다.
“부모 능력도 실력이야”라고 말했던 정유라의 발언을 생각해보자. 이런 사람들이 검사가 되면 우병우와 다를 것 같나. 오히려 더 심해진다. 그래도 우병우는 그나마 본인의 노력으로 된 ‘파벌학벌’이지, 부모님의 지위가 만든 ‘지위학벌’이 아니다. 파벌학벌을 지위학벌로 대체하는 게 개혁인가? 그냥 지배하는 사람이 바뀔 뿐이다.
나는 사법시험 존치론자지만 한편으로는 법조삼륜 중 시민과 가장 가까운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판검사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법개혁의 중심은 사법권력을 법조엘리트에게서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이는 검찰의 개혁과도 일맥상통하다.
그러나 법조일원화는 로스쿨에게 유리한 제도가 아니다. 법조일원화 하에서는 경력이 많은 사람이 판검사 임용에 유리한데 로스쿨 출신들은 사법시험 출신보다 경력이 짧다. 법원과 검찰 역시 아직도 엘리트주의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해 법조일원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검찰은 아직도 신규진입자를 뽑고, 법원은 몇 년 전만 해도 3년 이상의 경력자를 뽑는 제도를 ‘2년 반 선발, 3년 임용’이라는 기상천외한 탈법을 썼다. 이런 로스쿨과 법원, 검찰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는지 로스쿨 교수들 사이에서 ‘법조일원화’라는 단어는 쑥 들어간 것 같다.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로스쿨의 이득이지 사법개혁이 아니다.
자, 이래도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로 일원화하는 게 ‘못난 검사 방지책’이 될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김현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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