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아젠다

우린 궤도에 오르지 못했고, 물은 아직 끓지 않았다

‘비트’ 서비스 종료에 대한 단상…작은 조직이 생존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2016.12.05(Mon) 13:38:28

‘비트’ 서비스가 종료됐다.

 

미투데이를 창업해 네이버에 매각한 박수만 대표를 비롯한 많은 쟁쟁한 분들이 치열하게 기획하고 운영해온 서비스. 누적 투자금만 100억 원이 넘는 서비스. 알토스 같은 훌륭한 투자사가 믿어준 서비스. 수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응원해온 서비스.

 

사진=비트패킹컴퍼니


이런 서비스도 망한다. 아무리 대표가 훌륭하고, 아무리 팀이 좋고, 아무리 대단한 주주를 모시고, 아무리 사랑받는 서비스를 가지고 있어도, 회사라는 건 허망하게도 쉽게 망하곤 한다. 그만큼 우리는 ‘빡센’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물론 그만큼 역동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매일매일 빡셈보단 역동성에 초점을 맞춰서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한다).

 

1년 하고 조금 넘게 ‘트레바리’를 운영해 오면서, ‘​굳이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뭔가를 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아 조금 더 했어야 했다’​였다. ‘​이 정도면 됐겠지’​ 싶은 것 중 제대로 된 건 거의 없었다. 한 가지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쓰지 않을 다른 10가지의 카드를 준비해 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한 개, 혹은 두세 개 정도의 카드만 준비해 놓으면, 언제나 현실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어려움을 가져왔다. 치열해도 망했다. 처절할 정도가 되면 그래도 좀 봐줄 만했다. 작은 회사가 생존해 나간다는 것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훨씬 훨씬 어려운 일이다.

 

회사가 아주 조금씩이지만 커져가면서,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어 나가는 건 훨씬 더 어려워졌다. 예전(이라고 해봤자 고작 몇 달 전이긴 하지만)에는 1의 성취를 만들어내기 위해 10의 노력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 10만큼 성장하려고 하니 100의 노력으론 안 된다. 200, 300까지는 해 줘야 될까 말까 한다. 아직 궤도에 못 올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확실한 건 몸이 무거워질수록 기지개를 켜는 것도 어려워진다는 거다. 아직 구멍가게 수준인데도 이렇다.

 

그만큼 돈을 번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돈을 ‘​쓰는 것보다 더 버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이 모든 어려운 과정을 거쳐내고, 마침내 ‘​궤도’​​에 올라탄 회사들을 보면 경이롭기 그지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 안정적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고, 처절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가끔은 덜 치열해도 되는 궤도 위에 회사를 올려놓은 사람들이 가면 갈수록 더 존경스럽다. 구성원들이 조금은 나이브하게 세상을 봐도 괜찮을 정도의 여유를 만들어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돈 외에 다른 것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려면 일단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피터 틸의 말은 기업을 통해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 땅 위의 수많은 기업가들을 우습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뜻을 가지고 있어도, 또 아무리 멋진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어도, 생존하지 못하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래도 우리는 멋진 곳으로 멋지게 달려갔더랬지’​​​ 같은 추억으로는 세상이 아니라 일기장밖에 못 바꾼다.

 

물은 100℃에서 끓는다. 물을 끓여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99℃나 70℃나 똑같다. 그냥 이 물은 안 끓은 거다. 얼마나 열심히 끓였는지도 안 중요하다. 얼마나 우아하게 끓였는지도 하나도 안 중요하다. 일단 물이 끓고 봐야, 과연 우리가 얼마나 바람직한 방식으로 물을 끓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물이 끓기도 전에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가 얼마나 아름답게 하고 있는데’​​​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건 프로답지 못하다. 물론 더 멋진 프로는 끝끝내 아름답게 끓여내는 사람이겠지. 트레바리를 예로 들면 실제로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만들어 내면서 돈을 버는 식으로.

 

비트 같은 서비스도 종료되는 세상이다. 작은 조직이 생존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했고, 물은 아직 끓지 않았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


[핫클릭]

· 대구 토박이가 느낀 진짜 ‘배신의 정치’
· ‘갤럭시 S7 게이트’? 일부 앱 오작동 단독 확인
· [독문서답] 타인의 상처 앞에 눈물 흘리는, 그게 진짜 남자
· [SNStar] ‘더 지적으로, 더 친하게’ 트레바리 윤수영 대표 인터뷰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